[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53)서귀포시 대정읍 일과1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53)서귀포시 대정읍 일과1리
'태양의 열매 열리는 마을' 공동 생산·판매로 기지개 켜다
  • 입력 : 2015. 08.18(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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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에서 모슬봉 방향으로 바라본 마을 전경(위)과 염전으로 사용하던 해안가 갈대밭에서 일과1리 방향으로 바라본 모습(아래).

옛 이름 '날외' '날대' 등 대정현 시절 유명한 염전 마을
서림유원지 '제주 3대 수원지' 밭농사 중심 1차산업 발전
젊은 농사꾼 공동체로 마을 상생… 행정 무관심 아쉬움
농촌·자연·전통문화 아우러진 관광 발전… 기대감 높아



지명은 많은 것을 응축시키는 기억 장치다. 옛 이름 '날외'라고 불렀던 마을. '날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태양을 지칭하는 고어 '나래'의 변음이기도 하다. 날대의 명명동기에서부터 역으로 생각하면 일과1리의 지명유래가 흥미로워진다. 대정현 시절, 이곳은 유명한 염전이 있었다. 마을 어르신들이 어린 시절 들었던 이야기로는 귀하디귀한 날대소금을 지게에 지고서 제주 전역을 다니며 팔았다고 한다.

향토연구가인 정성필(73) 어르신의 설명을 들어보면 더욱 구체적이다. "일염(日鹽)은 뜻 그대로 태양에 의해 건조응결된 것입니다. 소금은 태양의 열매라는 뜻으로 변화시켜 열매를 뜻하는 '외'로 '鹽'자를 바꿔 부르기 시작하면서 마을 이름을 날외라고 부르다가 온전한 한문으로 표기하려니 열매'果'를 붙여서 일과리가 됐다고 합니다." 바다와 태양이 해변에서 만나 소금 알갱이라는 곡식의 알곡과 같은 열매를 맺는다. 너무도 시적인 발상이다. 일과리는 '태양의 열매가 열리는 마을'이라는 뜻에서부터 시작됐다. 장수원 조간대와 잇닿은 일주도로 안쪽에 갈대밭으로 남아있는 곳이 염전 지대였다.

서림연대에 올라 바라본 일과1리 현무암 해변 풍경.

옛날에는 숲으로 우거져 있었던 곳이라 서림이라 불렀던 마을 지명으로 인하여 연대 이름도 서림연대. 그 위에 올라가 바라보면 해안가 검은 곡선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화산섬 제주의 면모를 물씬 풍겨나게 한다. 동쪽에 모슬봉을 거느리고 북쪽에 가시오름을 끌어안아 서남방으로 비옥한 농경지를 가진 마을. 해안가에는 지천으로 용천수가 솟아나서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래서일까? 남방식 고인돌의 형태를 지닌 지석묘가 있다.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길게는 신석기시대, 짧게는 탐라 초기부터 이곳을 터전으로 삶을 영위하던 세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날외'라고 부르다가 1900년에 일과리와 동일리로 분리되고, 그뒤로 일과리는 일과1리와 일과2리로 분리됐다고 한다.

지금은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일반인의 이용이 대부분 제한되고 있지만 일과1리에 속한 대수동 서림수원지는 제주의 3대 수원지의 하나로 꼽힌다. 가뭄 대비용 농업용수를 위해 수원지로 개발되기 전까지 하루에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양이 무려 2만 5000㎥였다고 하니 도대체 어떤 지질학적 특징이 이런 방대한 양의 물을 땅 속에서 솟아나게 하는 것일까. 유난히 지명에 물 이름이 많다. 구늪통, 능갱이물, 다지물, 서림물, 언물, 연듸못, 큰서림물 등. 서림수원지는 단순하게 자연의 혜택 정도로 지나갈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다. 땅 속에 간직된 수자원에 대한 자료를 후대에게 전하기 위해서라도. 일과1리는 주민 수 535명 정도의 작은 마을에 속하지만 경제활동 측면에서 바라보면 밭농사를 중심으로 축산 농가를 비롯해 수산업 종사자까지 1차산업이 고르게 발전하고 있는 곳이다.

강승진 이장

강승진(57) 이장은 "이러한 특징적인 요인들을 강점으로 살려서 마을 이름을 걸고 청정 먹거리 유통 시장에 뛰어들고자 합니다. 상대적으로 젊은 층이 많다는 것은 이러한 도전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해녀들의 작업도 활발해 우리 마을에서 생산되는 농수축산 관련 품목들만 가지고도 다양한 루트를 개척한다면 구색장사 측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날외'브랜드를 창출할 수 있으리라 자신합니다." 문제는 열악한 마을 자금 상태였다. 가능성이 충분하다 하더라도 마을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증폭시키는 자부담 정책. 마을회가 가지고 있는 재산이 전무 하다시피 한 마을들은 '가장 큰 부담이 자부담'이라는 쓰디쓴 탄식을 쏟아내고 있느니.

문대혁(55) 어촌계장이 구축한 희망에서 일과1리의 밝은 미래를 본다. "해안가 경관을 발판으로 관광 관련 시설들을 마련한다면 방문객들에게 제공 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청정농수산물이 준비돼 있습니다. 마을 결속력을 에너지원으로 경쟁력 강한 마을로 성장할 것입니다." 일주도로에서 서림연대로 들어가는 능갯물 인근 시유지를 임대해준다면 도전의 날개를 펼치겠다는 포부였다. 작지만 강한 마을을 꿈꾸는 이면에는 다양성에 기반을 둔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태풍 때면 월파피해로 도로기능이 마비되는 장수원길.

행정적 지원을 통한 자생력 만들기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현실도 엄존하고 있었다. 장수원길이라고 하는 일주도로에서 서림연대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태풍이 불면 바닷가 돌덩이들이 엄청난 파도에 밀려 길을 막아 도로 기능이 마비되는 경우가 많아 3년 전부터 행정관청에 호소를 하고 있지만 예산타령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 동네 어르신들의 단정적인 쓴 소리는 이렇다. "작은 마을이라 무시하는 것이다." 일주도로 공사 과정에서 도로 높이를 높이기 위한 방벽 성격의 토목적 구조가 파도의 힘을 바로 옆으로 쏠리게 만든 것은 아닌지 실태파악부터 해야 할 일임에도 나서서 민원을 해결하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으니 마을 주민들은 자괴감에 빠지는 것이다. 도시지역에 나가서 멀쩡한 곳을 뜯어고치는 모습을 볼 때 울화가 치민다는 이 곳 청년들의 심정을 직시해야 한다.

남방식 고인돌 형식을 취하고 있는 지석묘(도지정 기념물 제2-42호).

많은 농경지가 외지인에게 팔려나간 현실에서도 올해부터 새로운 희망의 밭을 갈기 시작 했다고 한다. 16명의 젊은 농사꾼들이 프로근성을 가지고 토지를 임대해서라도 시설작목반을 만들어 공동생산 공동판매 형태의 당찬 도전에 나선 것. 마을 어르신들이 나서서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마을공동체의 미래가 걸린 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행정에서 자부담 능력이 모자란 마을들을 위한 맞춤형 정책을 추진해준다면 일과1리와 같은 여건을 가진 마을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태양의 열매마을'엔 매일 새로운 해가 뜬다.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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