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88)표선면 토산1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88)표선면 토산1리
소출량 높은 토질을 역사적 풍요의 원천으로
  • 입력 : 2025. 05.09(금) 03: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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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유구한 역사를 지닌 마을이다. 주변 마을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은 이구동성으로 이 마을의 토질이다. 같은 작물에 자연환경적 요인이 동일하고, 노동력 투입 또한 대등해도 토산1리가 농업생산성에서 앞서는 것은 토질이 좋아 그렇다는 것. 수렵에서 농경으로 전환되던 시기, 이 섬에 살았던 선조들이 발견한 풍요의 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농업경쟁력은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위상이 강한 지역으로 성장했을 터. 고려 충렬왕 26년 탐라에 14개 군현의 하나로 토산현이 출현했다. 자치권에 가까운 호장세력이 이끄는 지역의 입지는 원 지배 탐라총관부 99년 동안에도 그대로 유지됐던 토산현.

토끼의 형상을 닮은 오름이 있어서 토산(兎山)이라고 했다. 흔히 알토산과 웃토산으로 부른다. 웃토산은 토산1리, 알토산은 바다와 잇닿은 토산2리다. 망오름에 올라 한라산을 바라보면 탁 트인 시원함이 절경이다. 완만한 분지 느낌을 주는 넓은 평지가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이 마을에서 자연이 주는 '평화'를 느끼게 된다. 역사적 토대가 두꺼우니 전설과 신화들이 누비이불처럼 촘촘하게 바느질된 스토리텔링의 보고이기도 하다.

김재근 이장

이 마을엔 사방으로 들어오는 길이 있다. 제주시에서 들어오는 방법은 정석비행장 쪽 길로, 서쪽으로는 신흥리 송천교를 건너면서, 표선에서는 가세오름 옆으로 들어온다. 알토산에서 올라오는 길은 토산봉(망오름) 옆을 끼고 올라오는 길이 있다. 토산1리는 망오름 북쪽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땅 면적 264.5㏊에서 농경지가 절반 정도 되는 224.3㏊이니 규모로 보더라도 전통적인 농업강세 지역이었음이 확인되는 것이다.

토산봉을 망오름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서쪽 봉우리에 봉수대가 있어서 외침을 대비해 망을 본다는 의미다. 옛날에는 동쪽으로 달산봉수와 서쪽으로 자배봉수와 응소했다고 한다. 정의현 소속 봉수 중에 소속별장 6명과 봉군 12명을 배치했다면 경계 요충지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이 소중한 역사문화자원이 방치에 가깝게 된 모습이 안타깝다. 북봉과 남봉 사이에 얕은 골이 파이고, 서쪽으로 침식된 말굽형 화구를 이루고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토산1리의 자랑은 거슨새미다. 마을 남쪽에 있다. 한라산 깊은 땅 속에서 바다 방향으로 내려온 용천수임에도 불구하고 역방향인 한라산 쪽으로 거슬러 흐른다는 것이다. 신비의 샘물이다. 어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용출량. 오랜 가뭄으로 인근 마을 샘이 모두 말라버리면 인근 마을에서 이 거슨새미에 물을 뜨러와 길게 줄을 섰다고 전해진다. 거슨새미에 얽힌 호종단 설화는 물혈을 지켜낸 제주인들의 생존 슬기를 간직하고 있다. 남쪽으로 500m 정도 가면 노단새미가 있다. 순리대로 흐른다고 해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고.

김재근 이장에게 토산1리가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간명하게 세 글자로 대답했다. "역사성"이라고. 탐라국이 열림과 함께 시작된 마을로 인식하고 있었다. 지형 자체가 해양세력의 노략지로부터 유사시에 방어를 할 수 있는 요새와 같은 장점이 있으니 설득력은 더욱 강화된다. 안전지대로써의 기능을 보유했기에 양질의 토양을 바탕으로 농경사회가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던 탐라국의 곡창지대.

이런 관점으로 바라보면 2000년 전부터 번창하던 곳. 토산1리의 역사를 모르면 섬 제주의 역사를 언급할 수 없다는 자신감이 주는 메시지가 강력하다.

가장 안타까운 현실이 있었다. 이 유서 깊은 마을에 대표적인 역사문화자원이라고 할 수 있는 토산봉수대가 복원이 되지 않아서 높은 역사적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어떤 상실감을 맛보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객관적 중요성으로 판단하더라도 토산봉수대는 위치적으로 반드시 복원이 됐어야 할 문화재사업이었다. 필자의 개인적 판단에서 오는 과도한 표현으로는 문화재행정의 직무유기에 가깝다. 지적만족도를 중요시하는 관광자원의 관점에서 이곳처럼 소중한 뷰포인트가 섬 제주의 동남권 바닷가 가까운 곳에 찾아볼 수 없기에 빠른 복원이 필요하다. <시각예술가>

햇살의 무게
<수채화 79cm×35cm>

5월의 햇살엔 초록 무게가 있다. 토산1리에서는 그렇다. 시간의 무게, 역사의 무게가 고스란히 간직된 이 마을의 오후. 내리쬐는 눈부심을 오롯이 받아내는 소공원을 바라보며 마을공동체의 심성을 느꼈다.

여기 언어로는 제밥낭이라고 하는 구실잣밤나무의 연령이 최소 100년은 살았을. 그 세월의 소중한 가치를 화단돌을 돌려서 귀하게 받들고 그 옆에 돌방아를 모셨다. 지금은 쓰임이 멈췄지만 저분의 고마움으로 오늘이 있음을 잊지 않으려는 무문공덕비(無文功德碑)이다.

전통적으로 농업경쟁력 높은 이 마을의 자부심이 서려 있기도 하다. 지금부터 시작될 뜨거운 태양빛에 그늘이 만들어지는 위치에 마치 제밥낭을 정자로 삼아서 편안함을 더했다. 빛과 그림자가 지닌 공간감이 의미하는 것은 장대저울과 흡사한 견해를 발생시킨다. 화면의 구성을 그러한 관점에서 제시했다. 햇빛의 무게를 장대저울에 달려면 이를 손으로 잡아줄 것이 필요하다. 그 역할이 구실잣밤나무요, 저울추가 돌방아다. 끊임없이 일조량을 측정하고 계시는 모습. 비도 중요하지만 적절한 일조량은 농업의 필수요소임을 어떤 염원 차원에서 설치미술처럼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휴식으로 생각했던 첫인상이 그리는 과정에서 오판이었음이 증명됐다. 아직도 돌방아는 못다 한 일을 계속하고 있으니까. 지금도 서 있다는 것은 아직 후손들의 미래를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어떤 소명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배경처럼 대로변에 늘어선 초록 잎사귀들이 5월 합창단이다.



한라산과 5월의 나무
<수채화 79cm×35cm>

계절의 여왕이라고 이르는 것은 꽃보다 나무에 있음을 보여주려고 그렸다. 토산1리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의 권위와 품격은 오후 5시에도 그 강렬함을 잃지 않는 눈부신 햇살 품은 저 나무가 알고 있다. 마을회관 옥상에서 그린 것이다. 이 마을에서는 제주어로 신낭이라고 부른다. 표준어로는 참식나무. 3층 건물 높이보다 크다는 것은 옥상에서 한라산을 배경으로 그리려고 해도 윗부분 밖에 그리지 못했음을 그림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산과 나무가 화면 속에서 일대일로 만났다. 한라산이 아무리 커도 멀리 있으면 줄어드는 것이 있고, 나무가 아무리 작아도 가까이 있으면 커가는 것이 있다. 화면 질량의 법칙은 그러하다. 저 나무에서 감동을 느끼게 된 것은 한라산 능선이 동쪽으로 뻗으며 달려가는 모습이 나무가 커서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오버랩되듯 보이는 것이다. 나무가 산과 이런 방식으로 교감하는구나! 이 비옥한 토양을 가진 마을에서 가장 부각시키고 싶은 것은 옹골찬 저 초록 나무다. 한라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시선의 흐름을 따라 펼쳐진 작은 능선들이 이곳의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장엄하다.

막힘이 없다는 것은 이 화면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토산1리의 시각적 이미지이기에 보유하고 있는 뷰포인트의 강점을 표현하려 한 것이다. 조그만 지대가 높은 곳에 오르면 시원함이 느껴지는 마을. 높낮이가 생성시키는 미묘한 시각적 효과가 풍성하다. 농경지가 많은 평평함 속에서도 위치 따라 광활한 시선을 보유한 마을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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