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비 내리는 아침, 커피를 내리며 창밖을 바라본다. 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 사이로 누군가의 하루가 겹쳐진다. 누군가는 출근길을 서두르고, 누군가는 아이 손을 잡고 걸음을 늦춘다. 우리는 모두 다른 시간을 걷고 있다. 그 시간이 어딘가에서 스치듯 마주친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의 조각일지 모른다.
오랜 시간, 듀얼모니터와 복합기를 곁에 두고 교육 정책과 사람을 잇는 구조를 그려왔다. 그 공간은 하루의 시작과 끝을 담아내는 나만의 무대였다. 수치와 속도를 좇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설계해야 할 것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시간과 삶을 담는 그릇이어야 하지 않는가?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령 취업자는 700만 명을 넘어섰다. 경제활동인구 네 명 중 하나가 60세 이상이며, 청년 취업자의 두 배에 달한다. 숫자만 보면 활기찬 고령사회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생애 균형이 무너진 차가운 현실이 자리한다. 청년은 불안한 미래 앞에서 결혼과 출산을 미루고, 노인은 삶의 의미와 생존의 필요로 다시 일터에 선다. 이 풍경은 세대 간 연대라기보다 고립된 생존의 병렬 구조다. 우리는 언제부터 '함께'가 아닌, 각자의 시간을 걷게 되었을까?
최근 '노치원'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유치원 자리에 노인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는 흐름이다. 그러나 이를 단순한 시설 변화로만 보지 않고, 세대가 감정과 경험을 나누는 일상의 장으로 상상해 볼 수는 없을까?
우리는 흔히 '노인'과 '청년'으로 구분 짓지만, 그들의 삶 속에는 서로에게 필요한 에너지와 활력이 공존한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 다문화 학생을 돕는 은퇴 교사, 삶의 깊이를 전하는 어르신과 그 이야기에 영감을 얻는 청년. 그 안에는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는,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이 담겨 있다.
연륜이 생생한 질문과 만나 사유가 통찰과 지식이 되고, 경험은 다음 세대의 영감이 된다. 열정은 온화함을 닮으며 더 단단해진다. 그런 세대 간의 교차점, 그 조용한 전승의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사회를 상상할 수 있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 사회에서 연결은 곧 생존"이라 했다. 그의 말처럼, 불안정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제도보다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장면이 있어야, 그것이 현실이 된다. 우리는 익숙한 효율 속에 서로의 체온을 놓쳐버렸고, 고독은 관계의 밀도를 밀어냈다.
이제는 서로 다른 시간을 걷는 이들이 한 공간에 머물 수 있는 사회를 그려야 한다. 나이보다 마음으로 이어지고, 필요할 때 기꺼이 기대어도 되는 관계.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지만, 함께 머무는 자리는 사람을 다시 사람답게 한다. 따뜻한 상상력에서 새로운 사회의 온기와 서로를 포용하는 시간이 시작될 것이다. <양복만 제주영지학교장·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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