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출신 경제인 스토리] (1) 문봉만 ㈜원우ENG회장

[제주 출신 경제인 스토리] (1) 문봉만 ㈜원우ENG회장
"모지직하게 하라… 아내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 되고 싶어요"
현대중공업 품질보증부 과장 출신, 노천 공장에서 창업
IMF 위기 7000만 원으로 재기… 가족과 함께 난관 극복
"로봇·외국인이 노동 대체… 기업 여건 고려한 정책 필요"
  • 입력 : 2025. 06.30(월) 03:20
  • 부미현 기자 bu8385@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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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봉만 (주)원우ENG 회장이 기업 성장 과정을 회고하고 있다.

[한라일보] 한라일보는 제주 출신 기업인들의 활약상을 시리즈로 보도한다.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대한민국의 기틀을 만들어온 제주 출신 기업인들을 조명하고, 국내외 환경변화로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 경제가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그들의 경험과 조언을 듣기 위함이다. 그 첫 번째로 경북 경주에서 1989년 건설기계 부품 제조업체를 설립해 지금까지 한 길을 걸어오고 있는 문봉만 ㈜원우ENG 회장을 소개한다.

문 회장이 설립한 ㈜원우(ENG)는 임직원 180명을 두고, 경주시 외동읍에 소재한 6만 1157㎡(1만 8500평) 규모의 자체 공장에서 중장비 부품을 생산해 대기업에 납품하는 건설기계 부품 제조업체다. 문 회장은 원우ENG와 함께 렉셀코리아, 모던파이어니어도 운영 중인데 세 곳을 합치면 코로나 이전에는 연간 550억원가량, 현재는 35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원우ENG는 2023년 무역의 날에 국무총리 표창을 받는 등 견실한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문봉만 회장과 아내 오정희(오른쪽) 대표.

문 회장은 제주시에서 나고 자랐고 제주제일고등학교와 인하대학교 금속공학과를 졸업했다. ㈜원우ENG를 설립하기 전 첫 직장은 현대중공업이었다.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 품질보증부에서 7년 동안 근무했고, 과장 직급까지 올랐습니다. 많은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가 창업을 하게 된 것은 1986년 현대중공업 말레이시아 가스 생산 설치 공사 현장에 파견된 뒤 얻은 자신감 때문이었다. 당시 현장 파견은 선박에서 1년을 머무르는 고된 일이었다. 1년 동안 뭍에는 한 번도 발을 딛지 못했다. 집과 연락이 닿지 않는 통에 아내가 회사로 찾아가 생사를 확인한 적도 있었다.

"배에서 생활하는 동안 이발도 못하고, 일만 하다가 집에 돌아가니 아내가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저를 포함해 그 때 불평하는 직원은 없었습니다. 이 일을 하면 국가에 충성하는 거라고 생각할 때였지요."

당시 그의 나이 33세였는데, 열악했던 파견 근무는 그에게 자신감과 도전 의식을 부여하는 계기가 됐다. 나만의 일을 해보자고 결심했고 회사에 사표를 내고 창업 구상에 나섰다. 결국 건설기계 제품을 사업 분야로 삼고 1989년에 사업자 등록을 했다. 굴삭기 CWT, 지게차 프레임을 제작해 처음 납품한 것이 그해 12월이었다.

"창업 당시 자본도 공장도 없어서 노천에서 천막을 치고 기술 하나로 중장비 부품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으로 만든 크레인이 성공적으로 작동이 되면서 이후 주문이 이어졌고, 2년 정도 지나 현재의 공장 부지에 다른 사람이 짓다가 중단한 공장을 인수하게 됐지요."

그의 회사는 주요 거래처인 현대중공업에 건설장비 부품 붐(BOOM), 암(ARM), 카운터웨이트(CWT) 등의 특수장비장치를 납품하고 있고, 전진중공업에 콘크리트 펌프카 메인프레임, 펌프카 주요 부품 등을 제공하고 있다. 또 하역용 그라브 버켓, 준설용 버켓 및 설비도 주요 생산품이다. 1만 8500평 규모의 공장은 제관공장, 프레스 및 레이저 절단공장, 자재보관 및 야외조립장, 제관 및 판금공장, 펌프카 제관 및 절단 공장 등이 조성돼 있다.

그는 제주 어른들에게서 자주 듣곤 했던 "모지직 하게 하라(근성을 가지고 끈기있게 하라는 뜻)"는 얘기를 기업 경영 철학처럼 삼고 있다. 제조업은 근성을 가지면 해 낼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분야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 번은 주요 거래처였던 대기업 관계자가 타 업체가 납품한 생산 물품에 대해 불량 여부를 확인해달라고 의뢰를 해왔습니다. 살펴보니 잘못 만들어진 것이었고, 우리 손으로 제대로 고쳐서 3~4일 만에 선적 기일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어떤 일이든 맡기면 해내는 곳이라는 인식을 주게 되더라고요."

회사는 나날이 성장했다. 그러나 순항할 것만 같았던 대한민국에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그의 시련도 시작됐다. 외환위기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여럿 쓰러뜨렸다. 그의 회사 역시 당시 주요 거래처 중 한 곳이 부도를 내자 함께 고꾸라졌다. 망한 회사를 되살려내는 일은 뼈를 깎는 고통과 다름없었다. 인터뷰 도중 문 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두 번 왈칵 눈물을 보였다.

"IMF 전 70~80억 매출을 올렸는데, 하루아침에 남아있는 돈이 7000만원에 불과했습니다. 그 돈으로 남아있는 직원들에게 쌀을 사라며 40~50만원씩 줬지요. 그 때 쌀농사가 풍년이어서 그나마 쌀값이 비싸지는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겨울이 되면 나무를 주워 땔감으로 몸을 데운 뒤 일을 했고, 그렇게 남아있는 돈을 아껴 자재비만 지출하면서 힘들게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부도까지 갔던 회사를 천신만고 끝에 다시 살리는 데에는 가족의 힘이 컸다. 2001년까지 교직에 있던 아내는 학교를 그만두고 회사에 합류했다. 아내의 교사 봉급이 이미 회사의 부채 때문에 절반씩 압류되던 때였다. 당시 아내는 "죽으나 사나 회사에서 함께 하겠다"며 문 회장 곁을 지켰다.

회사를 다시 일으키는 일등공신이었던 아내인 오정희 씨는 지금 원우ENG의 대표를 맡고 있다.

IMF 때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었던 그의 아들 역시 그에게 큰 힘이 되었다. 울산 지역 고교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 1등을 한 수재였던 아들은 현재 카이스트 교수로 재직 중인 문일철 박사다. 그는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나와 미국 카네기 멜런 대학교에서 5년 만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교수 요원에 이어 정교수가 됐다. 카이스트 인공지능대학원, 안보융합연구원, 항공우주학과, KI로보틱스 겸임교수이기도 하다.

"대기업 거래처에서 제 아들 얘기를 듣고 저와 회사에 대해서도 더 신뢰를 하게 된 점도 없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딸도 힘든 환경에서도 학업을 충실히 해 회계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자녀들이 큰 힘이 됐습니다."

IMF라는 큰 파고를 견뎌낸 그는 은행 대출에 의존하지 않고, 회사의 수익은 다시 공장에 투자하며 견고한 기업체로 회사를 성장시켰다. 얼마 전에는 정부 지원 20억원을 포함해 150억원을 투자해 대규모 로봇 시스템도 갖췄다.

최근 국내외 여건 탓에 건설경기가 매우 침체한 상황에서 그의 업계도 마찬가지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되도록 부채나 어음 없이 회사를 운영하면서 극복해 내고 있다. 2020년에는 125t 초대형 굴삭기 프레임을 개발하는 성과도 냈다.

"부채가 없으면, 이자 싸움만 해도 경쟁력을 갖추게 됩니다. 빚을 내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 힘든 시기에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스스로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겨야 합니다. 특히 국가 차원에서 너무 쉽게 창업에 접근하도록 했을 때 은행 빚이나 국가 지원에만 의존하게 돼 살아도 산 것이 아닌 허약한 기업을 양산할 수 있습니다."

문 회장은 점차 로봇이 인력을 대체하고, 또 내국인 노동자를 외국인 노동자가 대체하는 변화하는 환경에서 정부가 기업인들의 여건을 고려한 정책을 펴주기를 바랐다.

"용접 공정은 매우 뜨거운 열을 이겨내야 하므로 로봇을 많이 쓰게 됩니다. 로봇은 한 대가 여러 사람의 일을 해내니까 생산성이 훨씬 좋습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쓸 수도 있지요. 정부가 근로자들의 근로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추진하는데, 기업의 입장에서는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로봇을 더 활용하는 방향으로 몰리게 된다는 점도 고려해 주었으면 합니다."

사회 각 분야에 접목이 가능한 AI(인공지능)에 대해서도 정부 차원에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게 문 회장의 견해다.

"살아남으려면 다른 나라와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미국과의 관세 흥정도 잘 해야 할 것입니다."

제주 출신 기업인들의 모임인 재외제주경제인총연합회(제경련) 2대 회장을 맡고 있는 문 회장은 고향 사랑을 전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서울=부미현기자 bu8385@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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