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33)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33)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한라산서 우도까지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오름 왕국'
  • 입력 : 2015. 03.24(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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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봉 정상에서 바라본 우도와 일출봉(위), 그림같은 종달리 마을(아래).

동검은이·용눈이·지미봉 등 오름정상서 보는 경관 '으뜸'
조상 대대로 이어온 생업터전 마을소유 인정 않고 국유재산
패총·소금밭·자연자원 풍부…마을전체를 관광상품으로
주민들 다시 한 번 기지개



지미봉 정상에 올라서 바라보면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이 있구나!"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온다. 누가 봐도 사람 살기 좋은 터전. 종달리 패총 유물 등으로 판단해도 기원전 1세기 이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되는 전설은 진시황제가 세상을 떠나기 전이다. 내용은 이러하다. 만리장성까지 쌓으며 외적의 침입을 방비하였지만 걱정이 가시지 않게 된 연유는 지리서를 펼쳐보니 진나라 동쪽 바다에 떠있는 섬 제주라는 곳에 혈들을 통하여 영웅호걸이 쉴새없이 나오게 되어있었다. 이에 놀란 진시황은 고종달이라는 풍수사를 불러서 제주도 물의 혈을 끊으라고 지시한다. 좋은 샘물이 없으면 인걸이 못 나올 것이기 때문. 고종달이 배를 타고 가장 먼저 들어와서 종달리 물징거 물의 혈을 끊어버렸다. 전설에 등장하는 사람의 이름과 같아서 스토리를 엮었겠지만 진시황도 무서워하는 어떤 존재가 있었음을 암시하면서 자긍심을 부여하려던 제주 선인들의 지혜가 녹아있다.

아름다운 종달리 포구.

전설은 그렇다 치더라도 전해지는 설촌의 역사는 은월봉을 중심으로 '대머들', '넙은드르', '송곽' 등지에 조그만 촌락을 이루고 살았던 선민들이 생활에 불편을 느껴 지금부터 800여년 전 지금의 '안카름' 지역으로 이주하여 제2의 설촌을 이뤘다고 한다. 이후에 '큰동네(두문포) 동산동네(새밧디) 전수물동네, 석화동 지역으로 옮겨와 현재의 마을 구조를 형성하게 된 것. 종달리라는 이름은 제주목의 동쪽 끝 마을이라는 의미로 붙여졌다는 것이 마을 어르신들의 공통적인 설명이다.

오름을 지경으로 살피면 거미오름(동검은이)에서 시작하여 손지오름, 용눈이오름, 윤드리오름(은월봉)을 지나 시흥리와 반반 경계를 이루는 두산봉까지 내려와 바닷가와 가까운 지미봉에 이르기까지 길게 뻗어 내렸다. 어느 오름에서나 절경을 감상하게 된다. 그 중에서 용눈이오름과 지미봉은 단연 으뜸이다.

지금은 갈대만 무성한 옛 소금밭.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다운 풍광과 다양한 자연자원을 이용해 관광 관련 생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많을 것으로 보이지만 정반대에 가깝다. 게스트하우스, 카페, 팬션시설 대부분이 외부에서 들어와 장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주민 소득의 대부분이 농수산 분야에서 창출되고 있었다.

541세대 1252명의 주민들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마을공동체 발전을 위한 사업 추진이라고 했다. 답보상태다. 이유는 바닷가에 인접한 사업성 있는 토지들이 대부분 한국자산관리공사가 관리하고 있는 국유지라서 그렇다고 한다. 조상 대대로 종달리 주민들이 생업을 해온 바닷가 땅들이 국유지라는 명칭으로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활용 할 수 없게 되어있는 상황. 제주의 마을공동체문화와 괴리가 발생한 것이다.

특정한 개인 소유 땅이 아니면 '마을주민 전체가 공유하는 땅'이란 인식이 있어온 것이 사실이다. '종달리 바당'이라고 하면 물결치는 바닷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바닷가 모든 해안선을 의미하는 것이 제주사람들의 보편적 생각이었으나 국가는 이 당연시 해온 문화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법과 행정을 가지고 역사적으로 보장되던 마을공동체의 행복추구권이 심각하게 박탈당한 상태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김성익 이장

김성익(47) 이장은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1차적으로 해안가에 있는 2500평을 임대해서라도 마을 수익사업을 하려고 하지만 제주도내 행정기관에서는 국유지라는 이유로 자신들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발뺌 만 합니다." 비단 종달리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여타 마을에서도 공통적으로 입는 피해이기에 민선6기 제주도정이 중앙정부와 싸워서라도 특단의 대책을 가지고 개선방향을 마련해야 할 일이었다. 마을사업을 위해 우선권을 가지고 임대도 못하는 제주바닷가 땅들. 무엇이 이런 참담한 현실을 가져왔는지 주민들은 "제주도가 힘이 없어서 이런 것 아니냐"며 굴종을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임정순(57) 부녀회장에게 100억이 주어지면 마을 발전을 위해 가장 시급한 어떤 일을 하고 싶은 지 물었다. "공동주택을 지어서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들에게 무상으로 임대하고 싶어요." 미래에 대한 걱정의 정점에 초등학교가 있다. 생명력이기 때문. 주민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는 "졸업해서 동창회를 하면 열 명은 모여야 할 것 아니냐?" 중학교를 가기 전에 다니는 학교가 아니라 인생을 함께 살아갈 친구들이 만나는 곳이라는 사려 깊은 생각이었다.

지미봉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종달초등학교 정문.

채석유(67) 수리계장의 생각은 "이렇게 가다가는 결국 돈 많은 사람들이 모두 해먹는 세상으로 끌려들어가는 것 아니냐." 마을공동체가 오순도순 모여서 서로서로 형제들처럼 살아온 그런 마을이 와해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목청이 높아지고 개인의 욕심은 마을공동체의 공익 밑에 항상 있어왔던 아름다움에 대한 붕괴를 우려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마을사업들을 통해 경제적인 힘을 보유해야 하겠다는 절실함과 함께. 종달리는 마을 전체를 하나의 관광상품으로 만들어서 제공 할 수 있는 다양한 여건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줄지은 오름에서부터 해변 자원까지 잠재력이 엄청난 곳임에는 틀림이 없다. 족쇄를 풀어줄 노력이 먼저다. 지역적 특성을 살리는 핵심 방안은 주민들이 가지고 있으니까. 가장 큰 문화적 자원은 소금밭의 역사다. 제주 소금 생산 1번지였던 그 전통방식은 무형문화재임이 분명하다. 충분히 자원화 가능한 일. 취락구조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올레 동선을 지녔다. 이러한 풍부한 마을 자원을 관광산업과 연계하지 못하도록 국가가 옛날 전설 속의 고종달 역할을 하고 있는 형국을 떠올리게 되니 서글프다.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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