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우의 한라시론] “역설적이지만…”

[강종우의 한라시론] “역설적이지만…”
  • 입력 : 2020. 09.24(목) 00:00
  • 강민성 기자 kms6510@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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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지만 코로나19 시대에 연대하는 방법은 모두가 흩어지는 것입니다."

지난 8월 말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이 브리핑 말미에 던진 화두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필자는 뒤통수를 된통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정신 차리라는 따끔한 충고처럼 들렸다. 자신만이 아니라 감염에 취약한 이웃을 위해,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지금은 잠시 흩어져야 한다고.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야말로 진정한 연대라고.

문재인 대통령이 "연대와 협력만이 코로나19 극복의 답"이라 설파할 때만 해도 그저 가슴 쓰린 정도였다. 왠지 사회적 경제가 그토록 추구해 왔던 핵심가치를 도둑맞은(?) 심정이랄까. 지난 반년 사회적 경제는 대체 뭐 했냐는 자괴감이 앞섰다. 다들 각자 살아남기에도 빠듯하고 벅차지 않았던가. 갑작스레 어둡고 긴 터널에 갇혀 꼼짝없던 상황이라 어쩔 도리 없었다며 달래볼 따름… 속 좁은 애 마냥 괜히 여러 사람 타박이나 해댔다.

다른 전염병과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코로나 역시 치료제가 개발될 것이다. 어쩌면 또 다시 기억 속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더 이상 우리가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 부질없는 노릇이다. 질주해오는 열차를 막아서곤 "나 돌아갈래"라 아무리 외쳐본들. 박하사탕의 설경구처럼.

코로나19는 우리 사회 모든 부문에서 새로운 대응을 강요한다. 심지어 개개인의 생활마저 바꾸라며 압박한다. 이제 우리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구조와 일상의 변화를 견뎌내야 한다. 가령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엄중한 순간에는 흩어져서 모이는 새로운 연결에도 적응해야 한다. 이렇게라도 비대면 네트워킹, 혹은 커뮤니티 같은 것들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차라리 불편을 즐기는 편이 낫다. 거북스러워 꺼려했던 마스크도 이제 매일 쓰고 다니는 마당에.

코로나가 남긴 또 하나의 시그널. 공장도, 자동차도, 심지어 사람들마저 모두 다 멈춰선 팬데믹에 내몰리고서야 얄궂게도 '코로나의 역설'을 마주했다. 그제야 맑은 하늘과 푸른 강물을, 우리가 사는 지구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바로 볼 수 있지 않았던가?… '역설적이지만'코로나야말로 우리 스스로 자초한 재앙이다.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파괴가 기후위기와 함께 부메랑처럼 휘몰아쳤던 것.

"…어떻게 감히 하늘의 푸르름과 땅의 따스함을 사고 팔 수 있습니까? 우리 소유가 아닌 신선한 공기와 햇빛에 반짝이는 냇물을 당신들이 돈으로 살 수 있단 말입니까? 하지만 그 욕심은 땅을 모두 삼켜버릴 것이고 우리에게는 결국 사막만 남을 겁니다."

200여 년 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인디언 추장의 연설문 한 구절. 시간을 거슬러 오늘 우리에게 보내는 계시록 같다. '집콕'하는 김에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어보길 권한다.

'느우렁 나우렁 몬우렁(느나몬)' 필자 유일의 건배사다. 너를 위해 나를 위해 모두를 위해… '우렁'은 위해의 제주어다. 친구한테 건네 듣곤 곧잘 써버릇한다. '느나몬'제주, 앞으로는 불편을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오늘을 살아가는 동시대의 우리만이 아니라 내일을 살아가야 할 다음세대를 위해서라도. <강종우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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