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한라일보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복어'-1

[2014한라일보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복어'-1
  • 입력 : 2014. 01.03(금)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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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느러미가 반쯤 타들어 가고 있을 때, 밤색 코트를 걸친 여자가 들어왔다. 대각선에 앉은 청년들은 취한 듯 기우뚱한 몸으로 열빙어의 배를 뒤적여 알을 꺼냈다. 접시 한쪽으로 눈곱 같은 알들이 무덤처럼 쌓이는 게 보였다. 치지직~ 기름 튀는 소리를 들으며 여자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는다. 술집 안을 훑어보던 여자는 추운 듯 몸을 떨더니 비어있는 옆자리에 앉았다. 까맣게 탄 복어의 지느러미가 빙글빙글 돌며 잔 속으로 내려앉자, 현은 부스럼처럼 떠 있는 재를 후~ 불어 홀짝였다. 주인은 어묵 국물의 불을 조절하며 잘 익은 어묵들을 한쪽으로 몰아 놓았다. 뜨거운 수증기가 뭉클거리며 구름처럼 솟아올랐다. 일본풍의 노래가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가슴팍을 간질이는 가수의 목소리를 들으며 옆에 앉은 여자가 연화였으면, 하고 바랐다. 여자가 코트를 벗느라 탁자가 흔들렸다. 그 바람에 가라앉았던 복어의 탄 지느러미가 뱅그르, 잔 속에서 회오리쳐 올랐다.

현은 연화를 찾고 있다. 그것은 간절함에서 점점 무력한 기다림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술집 안은 왁자하기도 했고 어떤 순간은 정적이 흘렀다. 고요한가 하면 누군가 와장창 술잔을 쏟았고 소란한가 하면 순식간에 적요해졌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순간들이 절실해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로 퍼져 나가는 파장과 미세하게 울리는 진동. 서로에게 일렁이는 감정의 파도가 눈앞에 보이는 듯 현은 그 이어짐과 끊어짐의 순간들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어떤 장면에서는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곧 자신은 그것들의 언저리만 거닐 뿐 한 번도 그곳에 닿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곤 했다. 사소한 순간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그 찰나의 컷들을 파일박스에 꽂아 두고두고 간직할 수 있다면…. 현은 술잔 아래로 금이 간 부분을 엄지손가락으로 훑어 내렸다. 누군가 하품을 하자 옆 테이블에서 연달아 하품을 하며 멋쩍은 듯 웃었다. 돌아보니 열빙어의 배를 가르고 알을 소복이 모으던 청년들은 보이지 않았다.



연화…. 처음 본 그녀의 손을 기억한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검은 손. 이른 저녁, 현이 카운터에 앉아 밖을 보고 있을 때, 용과 그녀가 들어왔다.

-쥐꼬리맹키 받아오는 기! 됐다마!

낯빛이 검고 목덜미에 살집이 많은 남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서며 누군가에게 소리쳤다. 얼굴을 구기며 뒷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안 들어오나!

3초쯤. 말총머리를 한 자그마한 체구의 여자가 들어왔다. 달걀말이랑 맥주. 남자는 그를 향해 빠르게 주문하고는 다시 여자에게 윽박지르듯 말했다.

-약값이 더 든다 아이가!

여자는 남자의 말을 듣고 있지만 듣고 있지 않았다. 듣지 않는 귀. 맥주를 내어주자 남자가 급하게 술을 마시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연기가 여자 쪽으로 향하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입술 한쪽 끝에 덜렁이는 담배를 물고 다른 쪽 끝을 벌려 말을 뱉었다.

-마시라.

여자는 차가운 컵을 무심코 잡았다가 놀란 듯 손을 떼었다. 그 순간 현은 푸른 바다를 유영하는 복어를 보았다. 검은빛의 복어. 검푸른 색의 까칠한 껍질을 뒤집어쓴 통통한 복어가 바다 속에서 펄떡이는 모습을 숨죽여 바라보았다. 퉁퉁 붓고 멍이 든 여자의 손으로 자꾸만 눈이 갔다. 남자가 달걀말이를 다 먹을 때까지도 여자는 검게 부푼 손으로 맥주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때 가게 안으로 들어오던 단골손님 하나가 복어요리가 되는가 묻자 남자가 과장된 몸짓으로 현을 돌아보았다.

-복어도 하나?

-그냥 하는 말이에요. 저쪽에. 한 마리 기르고 있거든요.

남자는 구석에 놓여 있는 작은 수조를 보고 반색했다.

-금 마, 진짜 맛나게 생깄네!

▲그림=고보형 화가

여자와 현의 눈이 마주쳤다. 표정없는 얼굴은 황량한 폐허를 떠올리게 했다.

그 후로도 여자는 남자와 함께 왔다. 주로 남자가 지껄였고 여자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한 손으로 다른 손을 주무르거나, 천장에 달린 TV를 멍하게 바라볼 뿐 남자의 이야기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남자는 가끔 탁자를 내리치며 웃기도 했지만 여자는 한 번도 웃지 않았다. 돈. 사내. 힘. 섹스 따위의 단어들을 뱉을 때마다 남자의 목소리엔 힘이 실렸다. 남자는 매번 말하는 사이사이 수조 속 복어를 가리키며, 저그 이제 먹으면 안돼나? 마, 오늘은 그냥 먹어 치삐자! 농담을 했지만 다른 손님들과는 달리 정말로 먹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아이가 떠난 뒤로 현은 복어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에게 복어라는 놈은 물고기가 아닌 죽음. 생물의 이미지를 넘어서는 영원의 존재였다. 끔찍했던 그 날 이후, 시퍼런 칼로 손목을 내리치려고 몇 번을 시도했지만 결국 현은 하지 못했다. 대신 아파트를 팔고 한 평짜리 방이 딸린 작은 가게를 얻어 술장사를 시작했다. 감옥이라도 되는 양 자신을 그곳에 묶어둔 채 살았다. 얼마 뒤 손님 하나가 바다낚시를 하고 오는 길이라며 가게에 들렀다. 뜨끈한 국물과 데운 술로 불콰해진 손님은 돌연 낚시 통을 그에게 열어 보였다.

-글쎄, 이런 놈이 잡혔어! 손질도 못 하겠고. 자네나 하라구.

손님은 청색 바탕에 은백색의 줄이 있는 까치복 한 마리를 풀어놓고 사라졌다. 복. 어. 거대한 복어가 데룩데룩 눈알을 굴리며 휩쓸고 지나는 환영이라도 본 듯 현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왔다. 새벽이 올 즈음 간신히 용기를 내어 들통 속을 들여다보았다. 팔뚝만 한 녀석은 현이 심장에서 흐르는 피를 닦으며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헤엄치고 있었다. 다음날 그는 수조를 사서 까치복을 집어넣었다. 너와 나는 이제 함께 사는 거다. 현의 방만큼이나 작고 텅 빈 수조에서 까치복은 노란 지느러미를 펄럭였다. 손님들은 그가 복어를 키우고 있다는 데 재밌어했다. 더러는 시원한 지리로 먹으면 맛있겠다고 했지만 거지반 농담이었다. 왜 이런 걸 키우는가 물었지만 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은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 결국엔 대면해야 하는 공포. 대답이 필요 없는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영업이 끝나면 불 꺼진 가게에 앉아 작은 새우나 물고기 따위를 수조 안으로 넣어 주었다. 수조 안의 조명이 물을 투과해 가게 안으로 춤을 추듯 흐리게 퍼졌다. 물 위를 일렁이며 불빛을 가르던 복어는 현이 넣어주는 것들을 날름날름 먹어 치웠다. 혹여, 본래의 독을 잃지 않도록 주의했다. 새벽마다 수산시장에서 그날 쓸 재료들을 고르는 틈틈이 녀석에게 줄 갓 잡은 새우와 물고기를 사왔다. 배를 불려 가며 먹어대는 놈의 통통한 청색 배에 칼을 꽂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다. 날카로운 이빨을 바각바각 갈며 괴로움에 헐떡이는 복어를 떠올릴 때면 소름이 돋았다. 방에 들어가 자리에 누우면 바각바각~ 바각바각~ 이빨 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현은 매일 밤 복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잠이 들었다.

그에게 복어라는 놈은 물고기가 아닌 죽음

생물의 이미지를 넘어서는 영원의 존재였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쉬는 날이었다. 테이블이 4개뿐인 작은 가게는 아무리 천천히 치워도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마른 걸레질까지 끝낸 후 맥주를 따랐다. 복어가 느리게 헤엄치는 것을 바라보면서 아담한 체구의 여자를 떠올렸다. 듣지 않는 귀와 검은 손을 지닌 폐허 같은 여자…. 여자. '여자'라는 존재를 떠올려 본 것이 언제였는지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복어가 방향을 바꾸기 위해 꼬리지느러미를 비트는 것을 노려보며 막 두 번째 맥주를 땄을 때, 문이 열리고 여자가 들어왔다. 현은 놀라 벌떡 일어섰다. 휘청, 헛디딘 층계참처럼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당황하던 현은 숨을 고른 뒤 컵을 내고 맥주를 따랐다. 여자는 자리에 앉아 차가운 컵을 검은 손으로 꽈악 감아쥐며 말했다.

-뜨거워요….

-네?

-얼음물을 만져도 뜨겁게 느껴져요.

여자는 검푸른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샴푸독….

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고개만 끄덕였다.

-차가운 걸 만지면 타는 듯이 느껴지거든요.

팅팅 부어오른 그녀의 손은 여전히 성난 복어처럼 보였다.

-저쪽, 시장 안에 있는 미용실에서 일해요. 한번 오세요.

여자는 연거푸 맥주를 들이켰다. 얼마나 마셨을까, 돌연 밝아진 표정으로 현을 보고 말했다. '연화. 연화라고 불러요…. 그리고 그 돼지 같은 남자는…. 용.' 그러더니 갑자기, '용! 용이래 용!'이라며 깔깔대기 시작했다. 고장 난 장난감처럼 웃음을 멈추지 못하던 그녀는 비틀거리며 수조 앞으로 다가가더니 스위치를 내린 듯 한순간에 뚝, 웃음을 멈췄다. 조용히 복어를 바라보던 연화는 수조에 손을 대고 복어가 움직이는 데로 조금씩 따라 움직이며 말했다.

-맛과 독…. 복어는 그걸 함께 가지고 있잖아요? 재밌어….

연. 화. 현은 나직하게 이름을 되뇌어 보았다. 연~. 낮게 숨을 머금었다가, 화아~. 내뿜는 듯한 발음이 그를 설레게 했다. '화아'하고 숨결을 내뱉는 순간에는 마치 천사의 입김을 쐰 듯 현실감이 사라졌다. 현은 여러 번 그녀의 이름을 되뇌어 보았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 앉은 연화는 벌건 얼굴로 술을 마시며 또다시 웃어댔다. 고장 난 웃음. 그것은 자신 안에 있는 웃음이나 즐거움 따위들을 일부러 입 밖으로 쫓아 내고 있는 듯 비장한 웃음이었다.

-맛과 독, 독과 멋…. 아하하…. 웃겨! 삶과 죽음, 선과 악, 별거 아니네! 사랑과 증오. 하루 종일 할 수도 있겠어. 하하하….

<송민성>

▶6일자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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