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이름엔 상흔 담겨지명 변경 논의 시작해야
[한라일보] "제주는 더 이상 변방이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제주'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고려 숙종 10년인 1105년, 탐라국이 고려에 복속된 후 고려 정부가 붙인 이 이름은 '건널 제(濟)', '섬 주(州)'는 '물 건너 있는 섬', 중심이 아닌 변방이라는 뜻이다. 지금껏 우리는 중앙이 내려준 이름 아래 살아왔다. 이 이름에는 제주의 역사와 정체성이 없다.
제주는 단순한 섬이 아니다. 고대 탐라국은 삼국보다 앞선 독립된 문명과 국가 체계를 갖춘 주체적인 나라였다. 삼성혈에서 솟아난 고씨, 양씨, 부씨의 개국신화는 단지 전설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제주가 가진 창조와 자주의 정신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러나 탐라는 역사 속에서 사라졌고, '제주'라는 이름 아래 수탈과 억압의 시간들이 이어졌다. 고려 시대에는 중앙의 말을 기르는 목장으로, 조선 시대에는 유배지로, 그리고 200년간 출륙금지령으로 고립되며 수탈과 착취가 계속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군사기지로 이용됐다. 제주는 늘 이용당했고 침묵을 강요당했다. '제주'라는 이름엔 이 모든 상흔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왜 여전히 '제주'라는 이름을 사용해야 하는가. 제주도정은 '다함께 미래로, 빛나는 제주'를 외치고 있지만, 그 이름이 품은 역사적 무게는 여전히 '변방'을 향하고 있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그 지역의 정신, 정체성, 미래에 대한 방향을 상징하는 징표다. 과거 중앙이 부여한 이름을 우리가 스스로 바꾸는 행위는, 자주적 정체성을 회복하는 상징적 선언이 된다.
나는 이 자리에서 제안한다. 이제 우리는 '탐라'라는 이름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영훈 제주도지사 역시 "탐라개벽 신화에 내재된 창조 정신으로 제주의 미래를 새롭게 열겠다"고 강조했다. 탐라라는 이름에는 제주가 스스로 창조하고 개벽했던 원초적 정신이 담겨 있다. 더 이상 제주는 '누가 만들어준 땅'이 아니다. '우리가 일군 땅'이라는 인식이 절실하다. 그 상징이 '탐라'다.
물론 지역명을 변경하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다. 행정 절차, 법적 검토, 도민 공감대 형성 등 복잡한 과정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우리가 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래 세대가 여전히 '제주'라는 이름을 아무 생각 없이 물려받게 두어서는 안 된다. 그 이름에 담긴 수백 년의 통제와 억압의 기억을, 우리 세대에서 끊어야 한다.
이제는 도민 모두가 나서야 한다. 단지 이름을 바꾸자는 것이 아니다. 제주의 정체성을 되찾고, 중심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자는 것이다. '탐라'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변방이 아닌 중심이 될 수 있다. 도의원으로서, 이 변화의 시작을 도민과 함께 만들어가고자 한다.
더 이상 남이 정한 이름 아래 머물지 말자. 우리가 선택한 이름으로 세상을 향해 당당히 말하자. "여기는 더 이상 물 건너 섬이 아니다. 여기는 탐라다."
<김대진 제주도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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