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우리는 예술이 단순한 미학적 향유를 넘어, 첨예한 정치적 담론의 장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현대 예술에서 다루는 정치적 주제는 매우 다양하며, 사회의 변화와 갈등을 반영해 끊임없이 진화 중이다. 사회적 불평등이나 인권의 문제, 전쟁과 폭력, 환경 및 기후, 권력과 감시와 검열, 대중문화와 소비사회 등은 현대 예술의 주요한 표현 대상이다.
과거에도 예술은 권력의 찬양 도구였거나 은밀한 저항의 수단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예술은 더 직접적이고, 대중과의 소통에 적극적이다. 성차별과 젠더 문제를 다루는 퍼포먼스에서 빅데이터와 가짜 뉴스에 이르는 정치적 주제들은 예술계의 풍경을 바꾼다. 예술가들은 이제 더 이상 '상아탑'에 갇혀 있지 않다. 그들은 가장 첨예한 사회 문제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캔버스와 조각, 사진, 비디오,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와 실험적인 방식으로 '외침'을 새기고 있다. 앤디 워홀, 장미셀 바스키아, 아이 웨이웨이, 뱅크시, 게릴라 걸즈, 바바라 크루거, 쉬린 네샤트, 한스 하케, 올라퍼 엘리아손, 마우리치오 카텔란, 백남준 등은 예술계에서 낯선 이름이 아니다.
물론, 예술의 정치적 개입은 언제나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예술은 예술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한다"는 순수 예술론자들의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또한, 특정 정치적 메시지가 과도하게 주입되면서 예술의 본질적인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예술이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거나,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특정 이념만을 옹호하는 데 사용될 때, 예술이 가진 가장 중요한 힘인 '다양한 해석과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킬 수도 있다는 지적은 여전히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에서 예술과 정치의 불가분한 관계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대중은 단순히 정보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감각적인 경험과 감정의 공명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자 한다. 예술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강력한 역할을 수행한다. 추상적인 언어로 전달하기 어려운 사회적 고통과 부조리, 그리고 희망을 예술은 감각적이고 압축적인 언어로 전달하며 대중의 마음을 움직인다.
오늘의 예술가들은 사회의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고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내는 '선지자'의 역할을 자처한다. 그들의 작품은 때로 불편하고, 때로는 논란을 일으키지만, 건강한 사회가 필요로 하는 비판적 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예술이 일방적인 선전 도구가 되는 것을 경계하고, 다양한 관점과 목소리를 포용하는 '열린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유지하는 것이다.
현대 예술은 자신의 작품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토론을 유도하며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강력한 도구로 다가온다. 예술의 외침이 작은 울림이 아니라, 거대한 사회 변화의 파동을 일으키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김영호 중앙대 명예교수·미술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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