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고 나니 남는 것은 책" 나이롱 책방 장효정 책방지기 [제주愛]

"비우고 나니 남는 것은 책" 나이롱 책방 장효정 책방지기 [제주愛]
[2025제주愛 빠지다/ 제주 이주 N년차 이야기] (10)장효정 나이롱책방 책방지기
서울서 디자이너 생활 정리하고 제주 내려와 책방 운영
초기 힘든 일도 많았지만 지금은 제주를 이해하게 돼
제주 이주를 생각한다면 고민하기보단 일단 도전해보길
  • 입력 : 2025. 09.09(화) 18:20  수정 : 2025. 09. 09(화) 20:40
  • 오소범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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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롱책방 장효정 책방지기.

[한라일보] 관덕로 8길 17. 작은 문을 열고 낡은 계단을 올라가면 책방지기의 세심한 손길로 가득한 나이롱책방을 만날 수 있다.

서울에서 디자이너로 일을 하던 장효정 씨(40대)를 처음 제주로 이끈 건 저렴한 항공권이었다. 아무런 생각도, 대책도 없이 서울로 돌아가는 표도 끊지 않은 채 무작정 걷기 시작한 효정 씨는 한 달 동안 제주를 돌아다녔다. 그때의 경험을 잊지 못해 3, 4년 동안 주기적으로 제주를 여행하던 효정 씨는 인생의 과도기에서 문득 물건을 정리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사용하지 않는 것, 필요 없는 것, 내 거 같지 않은 것들을 정리하다 보니 방 안 가득 쌓인 옷들과 액세서리들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책이었다.

그때 효정 씨는 내가 하고 있는 일 직업을 버리면 다음 직업은 책과 관련된 일을, 굳이 서울이 아닌 지금 제일 좋아하는 곳, 제주에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2018년 3월에 제주에 내려온 효정 씨는 그 해 9월에 제주시 삼양동에서 나이롱 책방을 오픈했다.

나이롱책방.

아무런 경험 없이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한 일이기에 '나이롱'이란 이름을 지었지만 그 안에는 '어떤 이로운 농담(那利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으로 가득한 책방에는 효정 씨가 직접 고른 책들이 낮은 눈높이로 비치돼 있다. 책 하나하나에는 직접 손글씨로 적은 짧은 리뷰들이 붙어 있어 선택에 도움을 준다.

제주가 좋아 내려온 효정 씨였지만 막상 책방 문을 열자 생활 공간의 제주를 실감했다. 효정 씨는 처음 제주에 정착했을 때를 떠올리며 "마냥 들떠만 있었다. 내가 제주에서 살기 시작하다니, 앞으로 되게 행복할 것 같고 밝은 미래만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책방을 시작하자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해야 했다"고 말했다.

연고지도 없는 곳에서 혼자 책방을 운영한다는 게 녹녹지 않은 일이지만 효정 씨는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효정 씨는 "어린애처럼 '나한테 이렇게 시련을 주다니 나 싫어'하고 돌아가 버리는 것은 너무 성숙하지 못한 태도로 나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했다. 새로운 시작을 했는데 이렇게 나약하게 물러날 수는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어느덧 제주살이 8년차가 돼 효정 씨는 제주 생활을 통해 본인이 성숙해졌음을 느꼈다.

효정 씨는 "처음엔 단순히 제주가 좋았지만 콩깍지가 벗겨진 후로는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살다 보니 제주를 이해하게 되면서 지금은 다시 좋아지는 과정"이라며 "제주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서 내가 거쳐왔던 서울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고, 태어났던 인천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효정씨가 쓴 책 메모.

책방 한편에는 책방지기의 서재가 마련돼 있는데 효정 씨는 이 중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추천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지중해 남쪽에 크레타를 배경으로 갈탄 광산을 운영하려는 주인공과 그가 고용한 일꾼 알렉시스 조르바가 함께 지내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책이다.

효정 씨는 "조르바의 삶에 대한 열정이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도 계속 이어졌던 것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툭툭 털고 일어나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며 제주 이주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같은 맥락으로 이런 말을 전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고민하기보다는 일단 제주로 와서 살아봐야 뭐든 알 수 있다. 어떤 마음으로 제주에 오는지는 사람마다 제각각 다르겠지만 제주가 좋다는 생각은 똑같을 것이다. 원 없이 제주를 느끼고 즐긴다면 제주를 떠나는 순간에도 미련이나 후회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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