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연작소설 '제주항'의 오경훈 작가(1944~2025). 그는 제주섬의 역사와 현실을 문학으로 담아온 작가였다. 올해 2월 세상을 떠난 그의 마지막 기록이 담긴 소설집 '가깝고도 먼 곳'이 최근 출간됐다.
이 소설집의 원고는 지난해 겨울 이미 출판사로 넘어가 있었다. 그러나 81세 나이에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이 책은 그의 유고집이 됐다. 이번 소설집에는 표제작을 비롯해 '열쭝이 사설', '사교', '실향', '마을제', '악마는 숨어서 웃는다' 등 단편 6편과 중편 '강정 길 나그네' 등 총 7편을 실었다.
"원한을 풀고 화해하여 다시는 이 마을에서 다랑쉬굴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소서. 후대 후생들이 다시는 이 일로 찌그럭거리고 토라지는 일이 없게 하시어 모두 발전에 힘을 모으게 하소서."('마을제' 중)
오래 전부터 제주4·3을 탐구해 온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도 4·3을 다룬다. 단편 '마을제'에서는 4·3의 참상을 알린 '다랑쉬굴 사건'을 마을 주민의 눈으로 되짚고, '실향'에서는 4·3으로 인해 뒤엉킨 가족의 수난이 세대를 넘어 계속되고 있음을 짚어낸다. 중편 '강정 길 나그네'는 4·3의 격랑에 휩쓸리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노인 '김석우'가 4·3때 누나를 총살한 전직 경찰의 장례식에서 겪은 이야기를 통해 4·3의 깊은 상처와 관련된 현실에서의 용서와 화해가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전한다.
해설을 쓴 김동윤 문학평론가는 "작가는 4·3의 문제를 과거의 특정한 사건으로 한정시켜 두지 않는다. 끊임없이 지금·여기와 소통하는 가운데 절실한 당면 과제로 오롯이 끌어온다"며 "마을공동체에 대한 확장된 인식을 통해 4·3 해석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고 평했다.
"그 때 우리들의 물놀이는 참으로 아름답지 않았던가. 결국 불행을 만든 원인으로 귀결된다고 해서 그 때의 그림이 지워지겠는가."('가깝고도 먼 곳' 중)
이밖에 노년의 일상과 성찰을 묵직하게 다룬다. 표제작인 '가깝고도 먼 곳'은 장애인시설에 봉사활동을 다니는 한 노인이 두 해간 돌보았던 스물한 살 '덕진'에게 했던 선의의 행위가 사고의 원인이 되면서 느낀 감정들을 담아낸다.
'열쭝이 사설'은 농장 일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통해 가련하고 나약한 존재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사교'는 실직 후 오랜 구직 활동으로 청소차를 운전하며 살아가는 '석주'라는 인물을 통해 불행과 죽음을 겪는 인생의 의미를 되새긴다. '악마는 숨어서 웃는다'는 2007년 9월 태풍 나리 때의 복개천 범람에 따른 참상을 재현하며 개발지상주의의 폐해를 지적한다.
제주 구좌 태생인 작가는 25년간 교사를 재직한 후 5년여를 기자로도 활동했다. 1980년대 '경작지대' 동인으로 활동하며 여러 편의 소설을 발표했고, 1987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했다. 첫 소설집 '유배지'를 비롯해 장편소설 '침묵의 세월', 연작소설 '제주항' 등을 펴냈다. 각. 2만원.
박소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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