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훈의 한라시론] 다섯 번째 명함

[진관훈의 한라시론] 다섯 번째 명함
  • 입력 : 2025. 07.31(목) 02:30
  •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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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다시 명함이 생겼다. 내 삶에서 다섯 번째다. 이름과 직함이 적혔다고 해서 명함(名銜)이라는 가로 90mm, 세로 50mm 4각의 종이는 단순히 정보 전달 수단을 넘어 그 사람의 이미지를 부각하는 역할을 한다. 고생 끝에 취직했고 이젠 어엿한 직장인이라는 자부심도 담겨있다. 그렇다고 자주 사용하진 않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쩌다 없으면 대답하기 번거롭다.

요즘이야 대학원 때부터 만들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사장이나 고위관리, 기자, 정기적으로 월급 받는 평생 직장인쯤 돼야 명함을 파서 다니는 줄 알았다. 물론 판매직이나 영업직은 입사 첫날부터 팀장이니, 과장이니 하는 대외전용 직함을 금박으로 새겨넣은 명함을 가지고 다니기는 했다.

지금의 명함과 비슷한 형태는 약 15세기경 명나라 관리들이 자기소개를 위해 '첩지(帖紙)'라는 작은 종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였다. 이후 중국에서 일본,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점차 전 세계로 퍼졌다.

학위 받고 대학 강사 생활을 8년 정도 하다, 남들보다 한참 늦은 40 초반에야 '어쩌다 공무원' 생활하게 되면서 처음 명함이 생겼다. '어공' 생활을 마친 후, 15년간은 직장 로고가 새겨진 두 번째 명함을 사용했다. 이따금 보직이 바뀌어 내용이 조금 바뀌기는 했지만 그래도 같은 명함이었다.

퇴직하고 나면 대부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굳이 명함이 필요가 없다. 사실 얼굴이 명함이다. 간혹 새로운 사람을 만나더라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터라 간단한 자기소개나 개인사 설명 정도로 본인을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명함이 없으면 자기소개가 애매해진다. 그래서 몇 가지 내용을 펜으로 수정한 전(前) 직장 명함을 주며 구구절절 말로 대신한다. 이때 잠깐 명함이 없어서 불편함을 느낀다. 그래서 외출할 때는 본업은 아니지만, 퇴직 후 참여하고 있는 기관이나 단체의 명함이라도 꼭 갖고 다닌다.

퇴직 후 여전히 겸임교수 생활을 하지만 이에 관한 명함은 따로 없다. 대신 제주문화유산, 특히 옛 화전마을을 답사하는 연구기관 소속임을 밝히는 세 번째 명함이 있다. 지난 13개월간 사회복지 현장에서 장애인시설을 운영했다. 이 네 번째 명함 뒷면에는 많은 후원을 바란다는 계좌번호가 적혀있다.

디지털 시대 들면서 스마트폰으로 교환하는 모바일명함이 생겼다. QR 코드나 NFC 기술을 이용해 스마트폰으로 명함 정보를 간편하게 주고받는 방식이다. 요즘은 명함을 따로 명함첩에 보관할 필요 없이 그냥 명함관리 어플에 저장하면 된다.

두 번째 명함 가지고 근무하던 때, 뜻을 같이한 고마운 분들과 함께 국책 사업 유치에 힘쓴 덕분으로 다섯 번째 명함이 생겼다.

어쨌거나 이번이 마지막일 듯하다. 그래서일까, 300g/m² 종이가 날 노려보며 한마디 한다. 영혼 없는 월급충(蟲) 노릇일랑 절대 하지 말고, 이젠 나잇값 하며 맡은 일 제대로 하라고. <진관훈 제주문화유산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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