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소설가 김애란이 다섯 번째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를 펴냈다. '바깥은 여름' 이후 8년 만에 선보이는 단편집이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발표한 7편의 단편들을 엮었다. 표제작을 비롯해 '홈 파티', '숲속 작은 집', '좋은 이웃', '이물감', '레몬케이크', '빗방울처럼'이다.
그간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등 주로 청년세대가 머무는 다양한 거주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 온 작가는 이번에도 '공간'을 소재로 풀어낸다.
홈 파티가 열린 우아한 집, 값싼 물가에 한 달 여행을 누리게 해 준 해외의 단독주택, 정성스레 가꾸고 사용해 왔지만 새 집주인을 위해 떠나야 하는 전셋집, 회사를 관두고 그간 모은 돈으로 문을 연 책방 등 이러한 공간들은 단순한 이야기의 배경에 머물지 않는다. 공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돈과 이웃'에 대한 이야기는 경제적 격차와 계급 갈등, 상대적 박탈감 등 우리 사회의 단면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복합적인 감정을 안겨준다.
소설집에 가장 먼저 수록된 '홈 파티'는 배우 이연이 '사회적 주류'가 모인 홈파티에 참석한 이야기를 그린다. 낯선 공간에서 만난 삶의 기준이 다른 이들의 대화를 바라보며 이연은 임원 연기를 위해 섣불리 타인을 판단하는 대신 '최대한 저 사람들처럼 생각하자, 저 사람들 입장에서 느끼고 즐기자'라고 다짐했지만 '한마디'에 무너져버린다.
"살면서 어떤 긴장은 이겨내야만 하고, 어떤 연기는 꼭 끝까지 무사히 마친 뒤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걸, 그건 세상의 인정이나 사랑과 상관없는, 가식이나 예의와도 무관한, 말 그대로 실존의 영역임을 알았다."('홈 파티' 중에서)
'좋은 이웃'은 아파트 전셋집에 사는 중년 여성 주희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상황 속에서 새로운 집을 구해야 하는 그는 윗집에 이사 오는 신혼부부가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것을 보고 '내 집'을 마련한 것이라고 짐작하며 박탈감을 느끼고, 이후 그런 자신의 모습에 실망한다.
표제작 '안녕이라 그랬어'는 아픈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남자친구와도 헤어진 채 고향에 내려온 은미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홀로 원격 영어 과외를 받던 그는 강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안녕'이라는 말의 의미를 돌아본다.
"이제 나는 헌수도 없고, 엄마도 없고, '다음 단계'를 꿈꾸던 젊은 나도 없는 이 방에서 '너한테 배웠어, 정말 많이, 정말 많이 배웠어'란 가사의 노래를 듣는다. 보다 정확히는 네가 아니라 너의 부재로부터 무언가 배웠다고."('안녕이라 그랬어' 중에서)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삶은 언제나 뒤늦은 깨달음의 형태로 다가온다"고 전했다. 문학동네. 1만6800원.
박소정기자 cosorong@iha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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