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81) 제주시 삼양동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81) 제주시 삼양동
선사유적 상상력 자극… 그들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갔을까
  • 입력 : 2016. 03.22(화)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지금은 허물어진 옛 포구와 해안선 풍경(위). 화력발전소와 원당봉, 검은모래해변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이미지(아래).

삼화지구 아파트단지 건립 등 급속한 도시화 물결
치병 장소였던 검은모래해변 관광자원 활용 축제화
애향심과 외부인 품는 포용력 공존 마을발전 동력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정도로 보자면 섬 제주에서 이곳만 한 지역이 없을 것이다. 기원전 1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대단위 촌락을 형성하고 살았던 유적지가 2002년에 복원이 완료되어 당시의 생활 모습이 그대로 느껴지는 삼양동선사유적지 사적공원에 들어가면 '이들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이주해 갔을까? 아니면 지금도 삼양동 주민들 속에는 저 곳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의 유전자가 흐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거세게 밀어닥친다. 모래사장을 끼고 솟아나는 풍부한 용천수와 옆에 큰 오름과 조금 올라가면 우거진 숲이 있어서 수렵과 어로, 농경을 영위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였을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보물 제 1187호 원당사지 5층 석탑(지금은 불탑사에 있음)에 얽힌 사연이다. 고려에서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갔다가 황후의 지위에까지 오른 기황후가 황태자를 얻기 위하여 세워서 공물을 올렸다는 이야기다. 당시에 삼양1동 지역에 해당되는 원당봉 서쪽에 살던 주민들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지명들이 뒷받침되어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웃모실, 정세미, 곱은터, 묵은터 등에는 토기 조각들이 발견되어 사람들이 살았음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사적 416호 삼양동 선사유적지 사적공원에 복원된 주거지.

삼양동은 옛 지명으로 설개(삼양1동) 가물개(삼양2동) 버렁(삼양3동) 도련드르(도련1동) 맨돈지(도련2동)이 합쳐져서 인구 1만6000명이 넘는 지역이 되었다. 설촌의 시기와 사연이 각기 다를 정도로 독자적인 마을공동체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재에는 삼화지구라는 아파트 단지와 같은 주거형태의 변화를 통하여 정주 여건이 급속하게 도시화 되어가는 도농복합마을이다. 바다와 인접하여 대대로 어로활동에 종사하는 인구가 많았다. 검은 모래를 특징으로 하고 있는 삼양해수욕장은 마을의 상징과도 같다. 검은모래해변이라는 명칭을 부여해 여타 하얀 백사장 해수욕장과 차별화에 성공한 사례. 옛날부터 삼양 검은모래에서 찜질 하는 것은 신경통과 관절염, 피부염, 무좀에 효험이 있다고 하여 여름이면 많은 외지인들까지 찾아와 치병의 장소로 삼았던 곳이다. 여름이면 일거양득을 노리는 방문객들로 북적인다. 검은모래해변축제는 이러한 독특한 관광자원을 가지고 지속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명품축제이기도 하다. 바닷가에서 솟아나는 용천수가 풍부하기로 삼양동을 이길 수 있는 마을이 흔치 않다. 해수욕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바닷물 온도보다 낮은 시원한 담수로 몸을 행굴 수 있는 여건이 제공되는 것이다. 삼양 검은모래 해변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독특한 요소이기도 하다. 수도가 보급되기 전까지는 마을 공동체가 생활용수로 사용했던 물이다.

삼양동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검은모래해변은 차별성을 가진 관광자원이다.

필자에게 제주에서 가장 매력적인 산책로를 뽑으라면 주저 없이 원당봉 산책로를 선택할 것이다. 불탑사와 문강사, 원당사 세 사찰을 품은 오름의 중턱에서 한 쪽이 터진 분화구의 형태를 한 바퀴 도는 코스는 묘한 신비감을 자아낸다. 바다와 해안선 그리고 멀리 한라산까지 조망하며 느끼는 산행의 맛까지 즐길 수 있으니까. 김하종(78) 노인회장은 삼양사람의 장점과 특징을 이렇게 밝혔다. "무척 애향심이 강하고 전통적으로 외부에서 들어와 사는 주민들에 대하여 포용력이 강합니다. 지금 이렇게 급속도로 삼양이 번창한 것은 이러한 삼양동 주민들의 성품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외부에서 들어와 사람들이 많아야 원래 살아온 사람들에게도 여러 가지 면에서 도움이 되고 마을도 발전한다는 공감대가 원래부터 있어왔다는 이야기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주민들보다 외부에서 들어와 삼양동 주민이 된 인구가 많아 3대 7 비율에 육박하는 현실에서도 삼양동 주민이라는 자긍심이 온전하게 공유되는 것은 이러한 개방적 마인드가 융합을 이끄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고수민 주민자치위원장

고수민(58) 주민자치위원장은 삼양동 주민들의 자치역량과 관련 이렇게 말했다. "인구 2만 명 시대를 앞두고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다양한 자치프로그램을 통하여 5개동 주민들이 지금처럼 화합된 모습으로 문화와 복지를 증대시키는 주체가 되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삼양동이 가지고 있는 자원들을 공유하고 발전적 방향을 모색해야할 시대적 책무를 서로 느껴나가고 있습니다." 과거의 삼양동과 미래의 삼양동 사이에서 진취적인 오늘을 살아가는 결의가 강하게 분출되고 있었다. 김명금(62) 부녀회장에게 삼양동 주민을 위한 사업비 100억이 주어진다면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 돈을 기금으로 새마을 부녀회 중심으로 행정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노인들을 위하여 급식 지원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부녀회원들이 봉사활동에 나서다보면 많은 독거노인들이 자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외지에 있거나 돌볼 여력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이웃의 사연을 잘 알고 있는 주민 스스로가 나서서 돕는 일을 하게 된다면 행정이 법규 중심으로 하게 되는 복지정책에 보완적 기능을 담당하게 될 것이니까요." 복지 사각지대라는 것이 어떻게 발생되는 것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이웃과 이웃들이 공유하고 있는 정이 얼마나 소중한 공동체복지의 길을 열 수 있는 지 극명하게 파악하고 실천 전략을 짜고 있는 것이다.

원나라 기황후가 아들을 얻기 위해 건립했다는 전설이 서린 보물 1187호 불탑사 오층석탑.

문준식(74) 도련2동 노인회장에게 30년 뒤 2046년의 삼양동 모습을 그려달라고 했다. "우선 5개 동이 함께 사용하는 체육관이 있을 것입니다. 인구는 15만 정도가 되는 소도시 정도로 발전해 있을 것이고, 고등학교와 대학이 있는 그런 발전된 모습으로 변해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60년 전 대부분이 초가집이었던 시절과 현재를 비교하면 그렇다는 자신감이었다. 삼양동은 역사적으로 독특한 결속력을 가장 큰 자긍심으로 대물림하며 살아온 마을이다. 외부에서 들어와 살아가는 주민들 또한 그 마음가짐의 일원이 되어간다면 지역공동체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 또한 향유하게 될 것이고.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1173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