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광장]리더의 눈물
  • 입력 : 2015. 02.17(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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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선읍(英雄善泣)' 영웅은 울어야 할 때 운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는 목 놓아 실컷 울고 싶은 장소를 하나 추천하고 있다. 호곡장가이곡의(好哭場可以哭矣) 일명 호곡장(好哭場)이란 단어가 나온다.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 잔치를 위한 사절단을 따라 압록강을 건너 청나라로 들어갈 때 만주벌판을 처음 본 연암은 그 광활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고, 그 소감을 이렇게 외쳤다. "참으로 울기 좋은 장소로다. 한번 이곳에서 실컷 울어보고 싶구나." 이어 연암은 '울음론'을 펼친다. "울음은 슬퍼서만 우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감정인 칠정(七情)이 극에 달하면 모두 울음이 되어 나오는 것이다."

연암 선생의 말처럼 울고 싶을 때는 참지 말고 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차가운 가슴과 냉철한 이성으로 사는 것도 필요하지만, 눈물이 없다면 큰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남자는 쉽게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하는 분위기 속에서 실컷 목 놓아 울지 못했고 남들에게 눈물 보이는 것을 싫어하겠지만, 눈물은 금기가 아니라 리더가 갖추어야 할 당연한 감정인 것이다. 감동을 가슴으로 느껴보고 감정을 표현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려운 사람들의 감정을 알고, 공감하는 마음에서 흐르는 리더의 눈물은 따뜻함이 배여 있다. 많은 일을 계획하고 실천해 나가면서 머리가 복잡할 때는 언제 한 번 실컷 울어보는 것도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다.

꽃을 유난히 좋아했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유년시절 산동네에서 살던 때였다.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께서 나를 불러 밖으로 나가 봤더니, 길가 옆에 핀 작은 꽃을 가리키며 "이것을 보렴. 이 꽃이 너무 아름답지 않니?"라고 말씀하신다. 또 어느 날 밤엔 밖에 서 있는 나를 보시더니, "우리가 비록 산동네에서 살지만, 야경이 가장 멋진 집에서 살고 있지 않니?"라고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어머니의 아름다운 미소를 보았다. 아버지의 사업부도로 인해 한평생 고단한 삶을 살아오신 분이다. 그런데도 아버지께 불평 한번 하지 않으셨다. 어느 누구에게나 인자한 미소를 띠고 마음으로 안아 주셨다.

대학 강단에 있을 때, 학생들에게 "부모님이 물려주신 가장 큰 유산이 나에게 하나 있는데 그게 뭔지 아니?"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내가 말했던 답은 '가난'이었다. 눈물이 많았던 청춘시절. 남보다 가난했기에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고, 보다 힘겨웠기에 작은 것에서도 감사함과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어려움 속에서 겸손함을 배웠고 작은 행복으로도 큰 기쁨을 가지며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 주셨다. 나이가 들수록 혼자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걸어가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는 요즈음, 힘겨웠던 가난이 새삼 가장 큰 유산이 되어 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어머니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사의 눈물이 나네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가난했지만 함께 했던 시간들이 행복했습니다. 고단한 삶속에서도 제게 주신 그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 지금은 아니 계시지만, 당신이 주신 사랑을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나눠주며 살아가겠습니다. 제 지갑 속 한 장의 사진에 담긴 당신의 따뜻하고 인자한 미소를 잘 간직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를 미소로 남겨주신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려보며…. <박수호 스마일청춘 교육문화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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