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광장]소통의 패스워드

[한라광장]소통의 패스워드
  • 입력 : 2015. 02.10(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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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우리는 소통으로의 과제와 마주하게 된다.

가족과의 소통, 친구와의 소통, 회사 동료와의 소통, 상사와의 소통,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마주치게 되는 불특정 다수와의 소통,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통까지. 소통으로의 수많은 갈림길에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잘못된 소통의 엇갈림은 때로 오해를 낳고 그 오해는 불신과 단절로 이어져 되돌릴 수 없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이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 역시 누군가와 소통할 때가 아닐까.

쳇바퀴처럼 같은 패턴으로 돌고 도는 일상 속에서, 고인 웅덩이처럼 스스로의 심연이 보이지 않을 때, 어깨에 내려앉은 보이지 않는 책임의 짐이 유독 버겁게 느껴질 때, 자신에게 처방하는 인공호흡조차 지쳤다고 느껴질 때면 사람들은 누군가를 찾고 위안을 받고자 한다.

가장 큰 상흔을 남기는 것도 사람이나 치유를 하고 희망을 주는 것 역시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쓰라린 이별을 해도 우리는 꿋꿋하게 또다시 사랑을 하고, 가족을 이루며 먹고 살기 위해 일하지만, 그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 노력하며 사는 것이다. 사랑하고자 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와 소통하고자 한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소통의 길은 더욱더 다양해졌다. 눈을 마주 보고 손을 맞잡지 않더라도 쉴 새 없이 문자를 나누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부터 각종 사건·사고들, 그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까지 실시간으로 SNS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문명의 발달이 진정한 소통의 창구로 이용되는 것이 아닌 수많은 페르소나를 생성한다는 데 있다. 소통의 길은 다양해졌으나 진정한 '소통'의 의미 자체가 아득해져 버린 느낌이다. 소통의 기본적인 방식인 생각, 언어, 행동은 모두 사라지고 복잡하게 형성된 길 위에서 정제되지 않은 언어만이 난무하여 집단 공동체가 아닌 집단 이기주의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요즘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는 뉴스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노래가사가 절로 입 밖으로 새어 나오곤 한다.

출발한 비행기도 회항시킬 수 있고 힘없는 아르바이트생 정도는 얼마든지 무릎 꿇릴 수 있는 소위 힘 있는 자들의 온갖 갑질들. 인양을 둘러싼 제2의 국면으로 접어든 세월호, 의사전달의 능력조차 생성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에게 폭력으로 군림하는 선생님. 속 타는 국민들의 사정은 아랑곳 하지 않는 정부의 온갖 세금 인상. 바뀐 연말정산으로 인하여 사라진 13월의 보너스. 결국, 이 모든 사회현상 또한 소통의 결핍으로 인한 결말이 아닐까.

가진 자들은 그들만의 세상에서 소통하고 정부는 침묵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문명의 혜택으로 세상은 더 넓어졌으나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간의 소통은 단절되어 '인간적인' 삶의 세상은 오히려 점점 비좁아지고 있다.

저마다 심중에 명확한 소통의 패스워드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그건 불가능한 꿈이니 우리는 우리가 찾을 수 있는 패스워드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만 한 가지만 잊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너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사력을 다하여 이야기하고 그것을 밑거름으로 행동하는 것. 너무도 쉬운 것 같으나 현재 우리 모두가 망각하고 있는 것. 바로 '진심' 말이다. <김윤미 서귀포시 귀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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