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1)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31)
  • 입력 : 2019. 09.26(목) 2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강준 작/고재만 그림

11-3. 삼미동 차이나타운



"3만 원 주고 빼앗아 45만 원에 중국에 팔아먹으면 이게 사기가 아니고 뭐여? 날 강도지, 경헌디 중국놈들은 그걸 5백만 원에 팔아먹고 있으니 속이 뒤집히지 않을 놈이 어디 있나?"




"그놈들에게 사기에 당했으니 잠을 잘 수가 없어. 그 땅이 무슨 쁘로작뜬가 뭔가 해서 토지 수용을 하려고 했을 때 우린 결사반대했지. 생각해봐, 조상 대대로 물려오면서 부쳐 먹던 밭인데, 그걸 팔아버리면 이 나이에 어디 가서 무얼 해 먹고 살 거여? 이 동네 사람들 모두가 그래. 그렇다고 금지를 많이 받은 것도 아니야. 나중 알고 보니까 지랄씬지, x도씨팔인가 허는 공무원 놈들이 헐값으로 후려쳐서 앗아갔어. 경허연(그래서) 길 닦고 전기 수도 깔고 똥물 내리는 관 설치해놓고선 몇십 배 남겨서 중국놈들신디 팔아먹는 거야."

그는 못내 분한 듯 목에 두른 수건을 당겨 코를 풀고는 눈가를 닦았다.

"얼마에 파셨는데요?"

삽화=고재만 화백

"겨우 3만 원 주고 빼앗아 45만 원에 중국에 팔아먹으면 이게 사기가 아니고 뭐여? 날 강도지, 경헌디 중국놈들은 그걸 5백만 원에 팔아먹고 있으니 속이 뒤집히지 않을 놈이 어디 있나? 우린 사실을 알고 죽자사자 땅 물리라고 항의를 했어. 경허난(그러니까) 현장책임자가 나타나더니 우릴 달래더군. 공사 다 끝나면 경비원, 관리원, 청소부, 잡역부들도 필요하니 땅 판 사람들 우선으로 채용해주겠다는 거야. 우린 그 말을 믿고 물러가 기다렸지. 경헌디 이제와선 무싱거옌 곧는지(뭐라고 하는지) 알아? 똥 싸러 갈 때 마음 올 때 마음 뜰리다고 취직허컬랑(하려면) 중국어를 배우고 오라는 거야.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이 나이에 중국어를 어떻게 배워. 망할 놈들. 우릴 날 구쟁기(생 소라) 똥으로 보고 또 속인 거야. 개자식들."

그는 식탁을 치며 끝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분통을 터트렸다.

"내 땅 내놔. 이 죽일 놈들아. 농약 먹고 죽으려 해도 조상님 뵐 면목 없어 못 죽는다 이놈들아. 아이고 분해, 아이고 원통해. 내 땅."



신문에 화교 기사가 실리고 난 뒷날 왕리화에게서 전화가 왔다. 용찬은 기사가 실린 신문을 은산에게 전했는데, 가족들이 돌려 본 모양이었다. 용찬은 그것으로 정색하며 돌아섰던 리화의 마음이 풀렸다고 생각했다.

"오빠 신문 잘 봤어요. 저도 잘 알지 못하는 역사인데 고마워요."

"고맙긴. 내 밥벌이가 그런 일인데."

"오빠, 언제 시간 좀 내줘요. 제가 한턱 쏠게요."

"그러지. 전화 반가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용찬은 마음이 캥겼다. 앞으로 화교들의 이야기를 계속 연재할 것이고 종국에 중국 자본의 실태를 파헤치다 보면 대룡여행사 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그러면 리화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질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전화를 끊고 용찬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리화가 전화를 걸어 온 것은 단순히 화해 차원일까? 아니면 앞으로 벌어질 기사의 내용을 예상하고 미리 입막음하려는 것일까?

한편으론 리화가 안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리화와 결혼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처갓집 덕택에 윤기 있는 삶을 살고 있겠지. 기자는 그만뒀을 테고. 대룡그룹의 임원이 되어 사업가로 변신했을 거라는 상상에 이르자 씁쓸한 미소가 나왔다.

리화 생각을 하면 뒤따라 떠오르는 얼굴이 해연이었고 그러면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할머니한테서 두 집안이 얽힌 과거사를 듣고 해연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용찬이 그랬듯 해연도 자신을 포기했을 거라고 판단했다.

사실 용찬은 그녀를 만나 설득을 하고 싶었지만, 마주칠 용기가 없었다. 막연히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란 기대로 생각마저 하기 귀찮았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시간이 흐른 후, 용찬은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적은 장문의 편지를 해연의 학교로 보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용기 내어 전화를 걸었으나 없는 번호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위기를 직감하고선 학교로 전화를 넣었더니 휴직서를 내고 학교를 떠났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 이후로 그녀의 소식은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다.



장종필은 신문기사를 보고 용찬이 제주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평상시, 제목만 훑고는 신문을 던져버리는 종필이었지만, 화교라는 단어가 시선을 끌었고 그 기사를 쓴 기자가 권용찬이라는 것이 반가웠다.

기자가 되었다는 소식은 리화를 통해서 전해 들었으나 줄곧 중국을 왕래하며 바빠서 연락 한 번 하지 못했다. 못한 것이 아니라 용찬에 대한 미안한 생각 때문에 하지 않았다. 리화는 만날 때마다 '용찬 오빠'를 입에 달고 다녔고, 질투심에서 밀레니엄의 분위기에 들뜬 리화의 순결을 빼앗은 것이 용찬에게 미안했다.

그러나 세상일이 다 그런 거 아닌가. 종필에게 여자는 매사 최우선이고 의리나 우정은 나중 일이다. 그래도 십여 년의 세월이 지났고, 이제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으니 다 용서가 되리라 믿었다.



"여! 친구 살아 있었네? 나 종필이야."

용찬이 전화를 받자마자 종필은 너스레를 떨었다.

"와 형. 이거 몇 년 만이야? 강산도 여러 번 변했겠구만. 결혼했다는 소식 들었는데 어찌 연락 안 했소?"

"마, 사정이 그리 됐다. 미안하다. 어찌 변했는지 얼굴 한번 보자."



"그들은 카지노, 부동산매매, 관광여행사, 면세점, 전세버스, 호텔, 식당 등 모든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어서 중국에서 관광객이 와도 제주도에 남기는 건 쓰레기와 똥물뿐이야."



약속 장소에 가보니 종필은 이미 소주 한 병을 비운 후였다. 종필은 일어서서 손을 내미는 용찬을 격하게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거리를 두고 용찬의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와! 기자 양반. 서울 물 먹더니 신수가 훤해졌네."

"형도 중국사람 냄새가 나는 걸."

둘이는 호탕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오면서 생각해보니 우리가 얼굴 본 지 10년이 훨씬 넘었더라구요."

"그리됐지. 너 군대 가기 전 대룡반점에서 본 게 마지막이었으니까."

둘이서 술잔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살아온 인생을 화두로 회포를 풀고 있었는데, 종필이 금산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자네 기자니까 대룡그룹 한번 취재해봐. 아주 제주를 날로 먹으려는 놈이야. 이 바닥 경제 질서를 완전히 뒤흔들어놓고 있다고. 아무리 돈에 환장해도 그래서는 안 되는 거야."

종필은 십여 년을 중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면서 쓴맛을 많이 보았다고 했다. 이력이 붙어서 그런지 과거의 무식하던 모습과는 달리 망치를 얻어맞은 쇳덩이처럼 단단해 보였다.

"대룡그룹은 중국 랴오닝 그룹의 자회사야. 랴오닝 그룹이 70%이상의 지분을 가지고 있지. 그들은 카지노, 부동산매매, 관광여행사, 면세점, 전세버스, 호텔, 식당 등 모든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어서 중국에서 관광객이 와도 제주도에 남기는 건 쓰레기와 똥물뿐이야."

종필이는 오랜만에 용찬을 만난 게 반가웠는지 입가에 게거품을 만들며 이야기했다.

"나도 중국 관광객의 여행 실태에 대해서 들은 것이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남는 게 없는 데도 행정당국에선 외국인을 유치해오면 인센티브를 준다는 거야. 일정 관광객을 모집해서 데려오면 왕복 전세 비행기 삯을 후불로 준다는 거지. 그렇다고 대룡여행사가 관광을 직접 뛰는 게 아냐. 중국 랴오닝여행사에서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모객을 해서 전세기를 띄우면, 항공료는 랴오닝에서 물고 대신 대룡여행사는 송객수수료를 보내지. 그리고 대룡은 육상 체재비 한 푼도 안 주고 하청 여행사들에 관광객들을 나누어 주는 거야."

"아니, 체재비 한 푼 안주면 어떻게 관광시키라는 거예요? 그래도 장사가 됩니까?"

"장사가 되니까 고맙다고 매년 떡값도 가져다 바치는 거지. 하청은 주로 조선족 여행사들이 받는데 단체 관광객들을 농원이나 수수료를 많이 주는 곳으로 끌고 다니지. 행정 당국에서 꼭 이런 곳은 다니라고 정해주지만 그냥 지나갈 뿐 별 소득이 없어. 정작 가이드들은 자기들이 계약된 점포에서만 쇼핑하라고 해. 싸게 판다고."

그 말을 듣자 용찬은 언젠가 다른 신문에서 보았던 기사가 생각났다.

"그렇더군요. 일전에 어떤 자료를 보았는데 중국인들은 씀씀이가 커서 한 사람이 평균 2백30만 원을 쓰고 간다고 하더군요. 아랍사람 다음으로 많이 쓴대요."

"맞아. 그러니까 여행사들이 달려드는 거야. 대룡은 당국에서 주는 인센티브 기 천만 원을 받고 송객수수료 물고도 호텔, 식당, 면세점, 전세버스로 남기니 가만히 앉아 돈만 세는 거지."

"그래서 한 달에 백 몇 십 회나 전세기를 띄울 수 있는 거군요."

"암. 솔직히 부러워. 나도 왕 씨 집안 덕 좀 보는 건데. 에휴 쓰가발."

종필은 아쉬워하는 표정이었으나, 술 한 잔을 목으로 넘기더니 금방 왕금산의 흉을 보면서 돌변했다.

"금산이 그 짱꿰 새끼가 제주도 땅 팔아먹는 앞잡이야. 꼴에 제주홍보대사라고 얼마나 설치고 다니는지."

"홍보대사요?"

"그래 도에서도 중국 사람들 끌어들이기 위해서 금산일 이용해 먹는 거지. 중국에서는 바지 사장이 나팔 불어주니 신나고."

"바지 사장이라니요?"

"말이 합작회사지 금산이 몫은 얼마 안 돼. 랴오닝에서 철수해버리면 금산인 쪽박 신세야. 그런 분수도 모르고 날뛰는 핫바지 새끼가 폼 재고 있으니. 나 원 참."

용찬은 그제야 대룡의 실체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 카지노도 그냥 먹은 거야."

종필은 술잔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불법적인 M&A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 설명해줄 테니 잘 들어. 금산은 어느 날 사업을 하는 화교 선배로부터 카지노 사업 제안을 받았지. 도박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을 끌어 모으면 카지노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거든. 금산은 랴오닝 그룹과 상의를 한 결과 손님을 모아 보내줄 테니 참여하라는 내시를 받았어. 그래서 사업을 하는 화교 열 명으로 컨소시엄을 만들어서 부실채권으로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A 업체를 헐값에 인수했지. 이 A 업체를 B라는 업체 이름으로 바꿔 재상장한 거야. 그리고 B 업체는 증권사에서 200억 원 대의 돈을 대출받아 카지노 운영권을 가지고 있는 C 업체를 인수했어. 그리고 C 업체는 다시 대출을 받아 D 업체를 사고 이를 팔아 카지노의 대출금을 청산했는데, 문제는 부채를 떠안은 B 업체야. 이를 다른 화교와 짜고 인수자로 내세워 B 업체를 매각한 후 부실대출액 떠안고 상장폐지 한 거지. 결국, 무자본으로 카지노 운영권을 손에 넣은 거나 마찬가지야."

<강준 작가 joon4455@naver.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3624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