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균의 특별기고] 임피제 신부님 전상서

[김도균의 특별기고] 임피제 신부님 전상서
  • 입력 : 2018. 06.07(목)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신부님 안녕하셨습니까? 지난주에 신부님 묘소에 들렀는데 신부님께서 즐겨 찾던 물가 산책길도 신부님이 평생 오르던 언덕길도 그리고 목장에서 만든 아이스크림 맛도 그대로였습니다.

저는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장으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신부님 비자 때문이 아니고 신부님께서 '명예국민증'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하려고 합니다.

신부님 생일 하루 전인 엊그제 정부과천청사에서 신부님에 대한 명예국민증 수여식이 있었습니다. 법무부 장관께서 유가족인 조카와 신부님의 옛 동료인 마이클 신부님께 명예국민증과 기념동판을 전달해 드렸습니다. 신부님 생전에 우리 국민으로 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지만 이제라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제주 땅에 편히 쉴 수 있게 돼 얼마나 다행이고 영광인지 모르겠습니다.

신부님은 1954년 4월 바람 부는 어느 봄날 조그만 목선 타고 제주항에 도착하셨지요. 아무런 준비 없이 옷가지 몇 벌만 챙긴 가방만 들고 파란 눈에 키 큰 스물여섯 아일랜드 청년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제주를 오셔서 평생을 제주와 함께 한 것도 모자라, 사후에 당신의 시신도 제주에 묻어달라고 하셨는지요.

4·3이니 6·25니 하는 것들을 기록으로 역사로 배운 우리들에게는 당시 제주의 황폐한 모습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도 가지 않습니다. 일할 곳도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병들어도 치료할 곳이 없는 하루도 살기 힘들 제주 땅에 신부님은 운명처럼 와서 64년을 오롯이 제주와 함께하다가 제주에 첫발을 디딘 그 달인 지난 4월 23일 90세로 운명하셨습니다.

돼지 한 마리로 시작해 우리나라 목축업 메카로 성장한 이시돌 목장 한 소녀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시작해 세계의 명품인 된 한림수직, 농촌 자립형 성공모델 한림신협, 무료진료 병원에서 노인복지의 끝인 호스피스 병원 등 신부님의 활동과 업적은 너무나 잘 알려진 성공사례라 제가 일일이 설명 드리지 않겠습니다. 모두들 신부님의 업적을 자랑하고 내세울 때 신부님은 항상 "이것들은 내가 한 일이 아니다. 착하고 성실한 제주 사람이 협동해 이룩한 우리가 한 일이다"라고 하셨죠.

고국의 가족과 친구들로 시작해서 선교단체, 국제기구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자립을 위해 1달러에서 미국의 대규모 옥수수 원조까지 받아냈습니다. 그런 신부님의 진심은 제주 사람 깊이 다가갔고 목장에서부터 호스피스 병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성공한 '맥그린치모델'이 되고 '내생적 개발'이라는 제주의 정체성을 만들어냈습니다.

여기에서 다 할 수 없는 신부님의 감사함에 대한민국 정부는 작은 보답으로 명예국민증을 드렸습니다. 외국인으로서는 신부님이 네 번째로 명예국민증을 받았습니다. 월드컵 4강 신화의 히딩크 감독, 소록도 나환자를 위해 평생 봉사한 할매 천사인 마리안느와 마가렛뜨 간호사, 그리고 이시돌 임피제 신부님입니다.

이 국민증은 힘든 시절 신부님과 함께한 착하고 성실한 제주인과 신부님의 지원요청에 당신이 쓰던 물레까지 기꺼이 보내주신 신부님의 어머님과 친지들, 신부님의 인류애적 봉사에 전폭적인 지원을 보내준 골롬반 선교회와 제주사람을 위한 기술교육과 무상진료로 헌신하신 수녀님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기적을 기억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드리는 사랑입니다.

전 한 번도 신부님을 뵌 적이 없지만 신부님을 이제 우리나라 신부님으로 기억하겠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 신부님 묘소에 조그만 기념비 하나 새겨 찾아가겠습니다. 제주막걸리도 한 병 들고요. 그럼 신부님 그때까지 편히 계십시오. <김도균 제주출입국·외국인청장>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4889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