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의 문화광장] 호암 양창보, ‘바람의 섬과 붓끝 사이’ 개인전 단상…

[양건의 문화광장] 호암 양창보, ‘바람의 섬과 붓끝 사이’ 개인전 단상…
  • 입력 : 2025. 07.08(화) 02:30
  •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한라일보] 예술가를 아버지로 둔 자식들의 삶에는, 하나의 몸으로 두 인생을 살아야 하는 태생적 책무가 주어지는 듯하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영원하다고 했던가! 그러나 제주 미술계를 대표했던 한국 화가 호암 양창보(1937-2007)도 점차 세상에서 잊혀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인터넷 시대 이전의 인물들은 기억 소멸의 속도가 더욱 빠르다. 이에 유족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수년 전부터는 호암을 추모하는 영상 시리즈를 제작하며 호암의 기억을 놓지 않으려 했었다. 영상의 반응은 고무적이었으나 "호암의 그림을 직관할 공간은 없는가?"라는 한 댓글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또 다른 과제가 생긴 것이다.

함박눈이 거세게 흩날리던 지난겨울의 어느 날, 제주미협 송재경 회장과의 만남이 있었다. 서울 인사동에 있는 '제주 갤러리'를 제주미협에서 위탁 운영하고 있는데, 초청 기획전의 형식으로 호암의 개인전을 추진하고 싶다는 것이다. 유족 입장에서 감사한 일이고, 망설임 없이 흔쾌히 동의했다. 이후 갤러리 측에서 '제주의 자연을 대하는 호암의 심상'을 전시 주제로 잡았다는 계획서를 보내왔다. 호암의 예술 인생을 펼친 아카이브 전시가 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여러 현실적 조건은 제주 갤러리의 기획이 정답이었다. 다만 제주시청 창고에 보관 중인 '북제주군 10경 병풍'이 이번 전시에서 꼭 공개됐으면 한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지난 5월 23일, 미술계는 물론 건축계 여러분들의 축하 속에서 개막식이 열렸다. 2011년 제주도립미술관에서의 유작전 이후, 14년 만의 개인전이다. 초청 인사들의 축사가 이어졌고, 특히 호암의 서울미대 동기였던 '심재영 명예교수'(추계예술대)의 학창 시절 추억을 소환하는 말씀은 감동적이었다. 전시장에는 '제주의 자연과 호암'이란 주제에 맞는 산수화 위주의 그림들이 걸렸다. 관람객들은 1980년대 갈필에서 2000년대 발묵의 시대까지 화풍의 변화를 감상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그림마다 들어있는 조각배나 청송이 호암 자신을 그린 것이라 이해한다면 제주섬에서 호암의 삶을 보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전시장 한 벽면을 가득 채운 '북제주군 10경 병풍'은 예상대로 압권이었다. 전시가 끝나면 다시 창고에 묻히게 될 운명의 작품을 기념하려는 관람객들의 인기 포토존이 됐다.

이제 성황리에 4주간의 전시가 막을 내렸다. 이번 전시는 오롯이 화가로서 호암을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고 평가된다. 변종필 미술비평가는 지역 작가의 연구가 소홀하고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들여다볼 전시의 부족을 미술계의 문제점으로 지적하면서, 이번 전시를 통해 호암의 독자적인 화풍과 조형 탐구를 재발견했고 지역 작가를 넘어 현대 한국화의 주요 작가로 재평가될 필요성을 제기했다. 전시를 총괄했던 제주 갤러리 정현미 큐레이터의 서문처럼, 호암은 여전히 바람 부는 섬 제주에서 오늘의 우리에게 붓끝으로 말을 걸고 있다. <양건 건축학박사·가우건축대표>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314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