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왕벚나무의 선각자들

[한라칼럼]왕벚나무의 선각자들
  • 입력 : 2011. 04.13(수)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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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자생하는 왕벚나무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는 1962년에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이 해 국립과학관은 전문가들로 식물자원조사대를 구성하여 4월12일부터 19일까지 왕벚나무 자생지를 탐사했다. 말이 식물자원조사지 사실상 왕벚나무 자생지 찾기가 주 목적이었다. 조사단은 박만규 국립과학관장을 대장으로 하여, 홍원식 가톨릭의대교수, 부종휴 국립과학관촉탁, 김한화 가톨릭의대조교, 엄규백 서울대문리대강사, 박병주 과학관촉탁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 조사대는 당시 식물분류학분야에서 활발하게 연구 활동을 하면서 특히 왕벚나무에 관심이 많았던 박만규관장과 제주도에서 주로 식물채집을 통한 식물연구를 하고 있었던 부종휴 선생의 확신 때문에 출범할 수 있었다.

이 조사대는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첫 탐사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국내 학자들에 의해 왕벚나무가 처음으로 발견되는 순간을 같은 해 4월 19일자 동아일보 '일본국화 왕벚나무 원산지는 제주도' 기사를 통해 만날 수 있다.

한라산을 답사 중인 식물자원조사대는 등반사흘만인 지난 15일 하오 서귀포에서 횡단도로를 따라 사십리, 수악에서 백록담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정상을 향해 가던 중 해발 약 600미터의 혼합림 속에 자생한 왕벚나무 세 그루를 발견하였다. 박만규조사대장은 '우리 땅에 있는 것을 이제야 우리 손으로 찾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나 몇 해를 두고 이것을 찾아 헤맨 나로서는 역시 기쁜 마음을 누를 길 없다. 찾아낸 이상 앞으로는 하루바삐 천연기념물로 보호해야 할 것이며, 각국의 식물학자들에게 표본을 보내어 왕벚나무가 한국 제주에 자생한다는 산 증거를 보여야 겠다'라고 감격해 하는 내용들을 싣고 있다. 이곳은 현재 천연기념물 156호 신례리 왕벚나무자생지 일대로 추정되고 있다.

박만규 관장은 다음해 4월11일 천연기념물실태조사를 벌이던 중 추가로 3그루의 왕벚나무를 발견하였다. 나무둘레가 2미터16센티미터 수령은 50~60년생인데 현재 천연기념물 159호 봉개동 왕벚나무자생지 일대로 추정된다.

한편 제주도 출신인 부종휴선생은 이와 같은 왕벚나무 자생지 탐사가 성공할 수 있도록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 학자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소개한 사실 외에도 왕벚나무를 발견하거나 그 가치를 알리기 위해 발표한 논문과 보고서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부종휴선생이 서울대생약연구소에 재직할 당시인 1961년 4월4일 경향신문에 게재한 '한국식물의 개척자 타케(따께로 표기)신부의 생애와 업적' 제하의 칼럼은 그가 식물학분야에 얼마나 깊은 지식의 소유자인지를 엿볼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또 한 사람의 왕벚나무에 대한 혁혁한 공로자를 만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여기에서는 프랑스 출신의 타케 신부를 소개하고 있다. 이 신부는 25세에 한국에 와서 78세를 일기로 타계할 때까지 세계 여러 나라의 식물 연구가들에게 한국의 식물표본을 보내어 연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한 결과 많은 종들이 신종으로 명명되어 한국을 신종의 낙원이라고까지 알려지도록 하였다. 그러나 가장 통쾌한 업적은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도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표본을 채집했다는 점이다.

이 표본을 채집한 것이 1908년 4월14일이니 지금부터 103년 전의 일이다. 전 세계에 널리 심어져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왕벚나무의 세계화와 자원화는 이제 후배들 몫으로 남겨져 있다.

<김찬수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산림연구소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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