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지명이 뒤섞인 오름
[한라일보] 북돌아진오름은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에 있다. 네이버지도는 북돌아진오름과 괴오름을 같은 오름으로 표기했다. 그 동북쪽에 이웃하는 오름을 동물오름으로 표기했다. 카카오맵은 북돌아진오름을 단독으로 표기하고, 그 이웃하는 오름을 괴오름과 동물오름으로 표기했다. 그러니 괴오름이라는 이름만 북돌어진오름에 붙었다 동물오름에 붙었다 한 꼴이다.
제주도 발행의 '제주의 오름'이라는 책은 북돌아진오름과 괴오름으로 구분해 표기했다. 그러면서 괴오름에는 괴미오름, 동물오름, 묘악을 병기했다. 또 어떤 책은 북돌아진오름, 동물오름(독물오름)을 같은 오름으로 지칭하고, 궤물오름과 궤미오름을 하나의 오름이라고 표기하기도 했다.
이웃하는 두 오름에 대해 네이버지도에 북돌아진오름(괴오름): 동물오름, 카카오맵과 '제주의 오름'에 북돌아진오름: 괴오름(동물오름), '제주도 오롬 이름의 종합적 연구'에 북돌아진오름(동물오름, 독물오름): 궤물오름(궤미오름)… 어느 설명이 맞을까?
여기에 나오는 지명은 북돌아진오름, 괴오름, 동물오름, 독물오름, 궤물오름, 궤미오름 등 6개로 요약된다. 이 지명들이 2개의 오름을 지시하는데, 이들이 서로 조합하면서 여러 개로 분열했다.
북돌아진오름, 괴오름, 동물오름의 진정한 뜻은 무엇인가? 북돌아진오름, 괴오름, 동물오름은 왜 이렇게 헷갈리게 쓰이게 된 것일까?
'북돌아진오름'이란 북이 걸려 있는(돌아진) 모양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사실 이 오름은 '오름 나그네'라는 책에서 이 오름 이름을 괴오름이라고 하면서 '북돌아진오름'은 별명이라고 했듯이 불룩 튀어나온 형상이 특이하다.
궤물오름은 바위 마루 오름
이 바위는 마치 붉은 송이가 녹아 응집된 것처럼 보인다. 지질학에서는 '스패터'라 하고 이런 지질로 만들어진 화산을 '스패터 콘'(spatter cone)이라고 한다. 스패터 콘은 분출구 주변에 형성된 작고 가파른 화산 원뿔로, 화산활동 시 강력한 가스가 녹은 용암 덩어리를 분출시킨다. 이 녹은 용암 덩어리는 공기 중을 통과해 분출구 가까이에 떨어지면서 찢어지고 굳어진다. 아직 녹아 있는 용암이 이전에 분출된 용암 위로 쌓이면서 가파른 스패터 원뿔이 형성되며, 이를 '응결 집괴암'이라고도 한다. 북돌아진오름의 독특한 형태는 바로 이 정상에 크게 형성된 응결 집괴암 때문이다. 이 암벽은 높이가 보통 4~5m에 높은 곳은 거의 10m에 달한다.
우선, '북돌아진오름'의 진정한 뜻은 무엇인가? 이 말은 '북테르' 혹은 '북티르'라는 돌궐어에서 기원한다. '바위로 이뤄진 정상'(rocky mountain top) 혹은 '가파른 산'(steep hill)을 지시한다. 고대인들은 정상이 가파른 암벽으로 된 이 오름을 보고 '북테르오름' 혹은 '북티르오름'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것이 점차 그 본래의 뜻은 잊어버리고 '북'을 연상하면서 '북돌아진오름'으로 분화했다.
'괴오름'의 '괴' 역시 돌궐어에서 온 말이다. 이 말은 원래 '괴이', '궤이', '궤야' 등으로 발음되며, '바위'를 지시한다. 제주어에 흔히 '바위굴' 혹은 '바위 그늘'을 지시하는 '궤'라는 말은 바로 여기서 기원한다. '바위 오름'이란 뜻으로 쓴 것이다.
'궤물오름'과 '궤미오름'이라는 지명 역시 바위라는 뜻에서 분화한 말이다. 다만 '궤물'은 이 오름의 등성마루가 평평한 지형을 반영한 지명으로, '궤마루'에서 기원했을 것이다. '마루'를 축약형 '말'로 발음하다가 역시 연상작용으로 '물'로 굳어진 것이다. '궤미' 역시 '마루'가 축약하면 '미'로도 발음되는 경우가 많다. 역시 '마루'에서 분화한 말이다.
동물오름 높은 마루, 폭낭오름 낮고 평평
제주도가 발간한 제주의 오름이라는 책에서 괴오름이라고 표기한 오름은 여러 고전에서 괴수악(槐水岳), 묘악(猫岳)으로 검색된다.
지역에서는 고미악(高美岳), 고묘악(高妙岳), 고미악(古尾岳), 묘미악(猫尾岳)으로 채록된다. 이 지명들 모두 위가 평평한 바위 오름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을 한자로 차자한 것들이다. 간혹 '괴' 혹은 '궤'가 고양이를 닮은 오름의 모양이라는데 붙은 이름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고양이 묘(猫)'가 훈가자로 쓰인 것인데, 훈독자로 오독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물오름'이란 무슨 말일까? 북돌아진오름을 지시해 고전에서는 옹수악(瓮水岳), 옹수악(甕水岳), 동물악(東物岳), 독수악(獨水岳), 동수악(東水岳), 동물악(同物岳), 동물악(動勿岳) 등으로 채록된다. 옹수악(瓮水岳)과 옹수악(甕水岳)의 옹(瓮)과 옹(甕)은 모두 '독 옹'자이니 '독'을 나타내려고 쓴 훈가자다. 물(物)과 물(勿)은 음가자 즉, 마루의 축약형, 수(水)는 '물 수'자이니 훈가자 즉, 마루의 축약형을 쓴 것이다.
여기에 나타난 글자들을 종합해 보면 모두 '닥마루' 혹은 '닥말'을 나타내고 있다. '동물오름'의 '동'은 '독'의 변음이다. 본 기획 저지오름 편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저지오름은 '닥모루'의 뜻이고, '닥'은 '높은'의 고대어임을 밝힌 바 있다. '닥마루' 역시 높은 오름이라는 뜻이다. 이 지명은 인접한 '폭낭오름'의 대비지명이다. '폭낭오름'은 팽나무가 많이 자라는 오름이라는 뜻이 아니다. '폭' 혹은 '퐁'은 '작은'의 뜻, '낭'은 '낮'의 변음이다. 작고 낮은 오름, 특히 낮으면서 평평한 오름을 말한다. 그러므로 동물오름이란 높고 등성이가 평평한 오름이란 뜻이다.
북돌아진오름, 괴오름, 궤물오름, 궤미오름은 사실상 모두 같은 뜻이다. 정상이 바위로 된 오름이라는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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