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봉과 말미오름은 같은 뜻
[한라일보]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산1-5번지 일대다.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말산(末山), 1653년 탐라지 등에 두산(斗山) 등으로 표기했다.
지금까지 검색되는 지명들은 두산(斗山)에 봉(峰)과 악(岳)이 붙은 두산봉(斗山峰), 두산악(斗山岳)이 한 가지이고, 발음은 같지만 한자가 다른 두산봉(頭山峰)이 또 한 가지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말산(末山)과 여기에 봉(峰)과 악(岳)이 덧붙은 말산봉(末山峰), 말산악(末山岳)이다. 그 외 한자로 표기된 지명 중 마악(馬岳)이 있다.
나머지는 말미, 말미오름, 멀미, 멀미오름, 말산봉 등으로 한자 지명인지, 순우리말 지명인지 애매해 보인다. 곡식을 되는 말에 곡식을 가득 담은 형상이라 하여 본디 말뫼라 불렀다는 것이 민간에서 말하는 설명이다.

두산봉. 말미오름이라고도 하며, 위가 평평한 오름이라는 뜻이다.
우선 두산(斗山)의 '두(斗)'는 '말 두'자다. 여기에 '미'가 덧붙은 형태다. 훈 '말'을 나타내려고 빌려 쓴 글자다. 그러므로 이 지명을 소급하면 '말산'이라 했다는 것이고, 이 지명은 더 소급하면 제주의 고대어는 개음절을 썼으므로 '마르+산'의 구조라는 걸 알 수 있다. 이후에 나오는 여러 지명에서 '말미'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산'은 '미'와 대응관계다. 따라서 '마르+산'은 '마르+미'의 구조이며, '미'라는 말은 '마르'의 축약형이므로 이 말은 다시 '마르+마르'의 구조다. 고대인들은 이 오름이 평평하다는 뜻으로 그냥 '마르'라 했다.
'말산(末山)'은 '말(末)'이 '끝 말'자지만, 글자의 발음만 취한 표기다. 이걸 훈가자 차용 방식이라 한다. 역시 '마르+미'의 구조면서 '마르+마르'로 소급된다. '두산(斗山)'과 똑같다. '마악(馬岳)'의 '마(馬)'는 '말 마'자다. 한자 뜻으로는 '말(馬)'을 지시하는 글자이지만, 여기서는 그 훈 '말'이라는 발음만 취했다. 훈가자 방식이다. 역시 '마르+마르'의 구조다. '두산', '말산'과 그 뜻이 같다.

지미봉. 위가 평평한 오름이라는 뜻이다.
지미봉, 등성이가 평평한 오름
두산봉(頭山峰)의 '두(頭)'는 '머리 두'이다. '머리'라는 발음은 '마르'의 변음이다. '두산', '말산', '마산'과 같은 뜻이다. 나머지 말미, 말미오름, 멀미, 멀미오름, 말산봉 등도 이와 같은 이치다. 말미오름, 두산봉, 마악, 말미오름, 멀미오름 등은 모두 같은 말로서 '마르'를 지시한다. 즉, 평평한 오름이라는 뜻이다.
인근에 지미봉이 있다. 이 오름의 지명에 대해서는 이미 다룬 바 있다. 이 오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432년 세종 14년 편찬한 세종실록지리지일 것이다. 여기에는 지말산(只末山)으로 나온다. 이후 지미산(只未山), 지미산(指尾山), 지미봉(指尾峰), 지미산(地尾山), 지미망(指尾望), 지미봉(指尾烽), 지미봉(地尾峰) 등 여러 표기가 등장한다.
이 지명은 지말산(只末山)과 지미산으로 나눌 수 있다. 지미산은 다시 지미산(只未山), 지미산(指尾山), 지미산(地尾山) 등으로 표기됐다. 이 표기들은 어떤 특정한 뜻을 표현했다기보다 발음을 한자로 표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말산(只末山)은 좀 이질적이다. 이에 대해 어느 연구자료에는 지미산(只未山)의 오기라 했다. 천만의 말씀이다. 당시까지는 지미산 혹은 지미봉 등 그 어떤 형태의 '지미'라는 지명이 출현하기 전이다. 그런데 어떻게 지미산(只未山)이라고 쓴다는 것이 그만 깜박하여 지말산(只末山)으로 썼다는 것인가.
'지미산'의 '미(未, 尾)'는 한자의 뜻이 중요한 게 아니라 훈의 음만 빌려 쓴 것이다. 이는 바로 '마르'를 쓰려고 한 것이다. '마르'의 축약형이 '미'다. '지말산'의 '말(末)' 역시 '마르'를 쓰려고 빌려온 한자다. 이 오름이 평평해서 고대인들은 '마르'라 불렀다는 증거다. 두산봉도 지미봉도 고대인들은 그냥 '마르'라 불렀다.
다만 지미봉의 '지(只, 指, 地)'는 지미봉 편에서 '작은'의 뜻이라고 해독했으나, 이는 잘못임을 밝히고 여기서 수정한다. 이 글자들은 모두 '마르 지(旨)'의 변형임을 밝힌다. 저지오름, 문도지오름, 월랑지 등의 '지', 좌보미의 '좌(자)', 남조순오름의 '조(자)' 등에서 볼 수 있었다. 결국 지미봉이란 '마르+마르'의 구조로서 '마르'라는 뜻이다.

손지오름. 오른쪽 정면에 보이는 좁고 평평한 오름이다. 김찬수
고대인에게 지명은 일반명사
손지오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산 52 일대다. 1872년 제주삼읍전도 등에 손악(孫岳)으로 나온다. 이후 지명들을 포함해 보면 손악(孫岳), 손자봉(孫子峰), 손지봉(孫支峰), 손지악(孫枝岳) 등 4개로 정리된다. 이 오름의 지명에 대해 산의 지세가 한라산과 닮은 데, 그 손자뻘에 해당하는 작은 오름이라는 데서 붙인 것이라는 설이 널리 유포되어 있다. 코미디를 하는 것도 아니고 우스운 이야기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어느 연구서에는 일찍부터 '손지오름'으로 부르는데, 이 4개의 지명에 등장하는 '손(孫)'은 '손자'의 제주어 '손지'를 나타내기 위해 빌려 쓴 차자라 했다. 좀 유식하게 하자면 훈독자 표기라는 것이다. 이런 설명은 우선 이 오름의 지명 '손지오름'의 '손지'란 '손자(孫子)'라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손지봉(孫支峰), 손지악(孫枝岳)의 손지(孫支), 손지(孫枝) 등은 음독자 '손'과 음가자 '지'를 결합한 형태라 설명했다. '손자(孫子)'라는 뜻을 가진 '손지'를 한자로 표기하기 위해 동원된 글자라는 설명이다. 역시 빗나간 설명이다. '손(孫)'이란 좁다는 뜻의 '솔'을 표현하려고 빌려온 글자다. '솔'이란 '좁다'의 뜻으로 '너르다'의 대가 되는 말이다. '손'은 '손자'가 아니라 '솔'의 관형어다. 손지오름은 한라산의 손자뻘이 아니다. 좁고 평평한 오름이라는 뜻이다.
두산봉, 지미봉, 손지오름 등의 지명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대인들은 현대인처럼 지명을 고유명사로 쓴 것이 아니라 일반명사로 썼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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