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좀비딸
사랑이 뭐냐고 물어 본다면
  • 입력 : 2025. 08.11(월) 02: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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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좀비딸'

[한라일보] 좀비가 무슨 뜻인지를 사전에서 검색해봤다. '서인도 제도 아이티 섬의 부두교 의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살아 있는 시체를 이르는 말', 좀비. 지금은 수많은 컨텐츠에서 장르의 아이콘으로 소비되고 있는 이 기이한 생명체는 공포를 유발하는 기괴한 형체를 지닌 종 잡을 수 없는 행동을 일삼는 혐오의 대상이다. 그 누구도 좀비를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시대다. 좀비는 뱀파이어처럼 은밀하고 위험한 어둠의 존재가 아니며 처녀 귀신처럼 한 맺힌 사연을 들어봐야 할 것 안쓰러움을 품고 있는 존재도 아니다. 죽여야 할 죽은 것, 살아 있다고 믿고 싶지 않은 산 것 같은 것. 과연 누가 이런 좀비에게 측은지심을 가질 것이며 어떤 좀비가 인간을 매혹시킬 수 있을까. 불가능에 가깝다. 이토록 집요할 정도로 네거티브로 빚어진 존재가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필감성 감독의 영화 <좀비딸>은 어느날 갑자기 좀비가 되어버린 딸과 그를 돌보는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세상 마지막 남은 좀비가 내 딸이라니, 모두가 혐오해 마지 않고 색출해 처단하려는 존재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라니! 그야말로 망연자실,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다. 좀비가 되어버린 중학생 딸, 수아(최유리)를 지키기 위해 동물원 사육사로 일하던 아빠 정환(조정석)은 낙향을 택한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그곳에는 아직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았고 누구보다 이 위기의 부녀를 이해해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곳의 다른 지명은 가족이다. <좀비딸>은 한 줄 설명만으로도 정확하게 영화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영화다. 확실한 컨셉 무비이자 혼합 장르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 현실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재난 상황을 캐릭터 코미디로 돌파할 것이 틀림 없을 캐스팅까지 더해져 대중영화로서 진입장벽을 더욱 낮춘 케이스이기도 하다. 그런데 막상 웃음을 동력 삼아 걸음을 바삐 하던 영화가 멈춰 선 곳에서는 예상보다 무거운 질문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우리는 인생의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무엇으로 돌파할 수 있을까. 그것은 어쩌면 웃음일 수도 있을까. 고여가는 눈물은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까. 다소 헐거운 이음새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끝까지 질문들을 놓지 않는다. 놓을 마음이 없다.

누구나 갑자기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믿지 않으려 한다. 건강을 잃게 만드는 사고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또한 정상성에서 벗어난 삶을 잘 상상하려 들지도 않는다. 정상성이라는 말 자체가 가진 기이한 모순을 종종 깊이 의심하면서도. <좀비딸>은 대중 가족영화라는 안전한 틀 안에서 정상이라는 경화된 프레임을 벗어난 구성원을 어떻게 대할 수 있는지, 대해야 하는지를 모색하는 영화다. 물론 장르 영화로서의 전형적인 기법이 동원되었기에 좀 더 날카로웠어야 할 비감은 종종 축소된 채로 뭉뚱그려져 전시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좀비딸>의 이야기가 남긴 질문들은 웃음과 눈물에 묻히지 않은 채로 존재한다. 다수의 안전을 위해서라며 택했던 수많은 살처분들을 기억하게 만들고 소수자에 대한 크고 작은 혐오에 대해 무감해지는 현실을 또 한 번 돌아보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삶을 잠시 접어 두었던 이들의 페이지가 얼마나 무거웠을 지, 누군가의 멈춰버린 시간, 그 곁을 지킨 이들의 온기는 얼마나 따스했을지도 짐작하게 한다. 한바탕의 상념이 지나가고 나니 이제는 좀비가 그저 단순한 악의 덩어리, 혐오의 타자로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좀비딸>은 웃음과 눈물이 그친 뒤에도 여전히 우리가 나눠야 할 이야기들이 많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물어봐야 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이유를 알아야 납득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정확한 이유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누군가가 갑자기 아프게 되는 것도 그 영역 안에 있다. 이때의 유일한 치료제는 인과로는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의 지속이다.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명료한 답변을 내놓을 이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 질문의 답을 골똘히 들여다 보는 시간의 흐름 속에 사랑이 꿈틀댄다, 생동한다. 누군가와 누군가를 함께 살게 하는 힘의 모양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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