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어쩔수가없다
당신 얼굴 앞에서
  • 입력 : 2025. 09.29(월) 02:00  수정 : 2025. 09. 29(월) 13:36
  •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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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쩔수가없다'

[한라일보] '어쩔 수가 없다'는 문장은 '다른 방도가 없다'는 말이다. 어떤 것을 포기하되 또 어떤 것은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의 시작에 놓이는 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포기하더라도 해야 할 것이 있는 이들이 한숨처럼 내뱉고 이를 앙 다물며 시작하는 주문이다. '그래…나는 더 이상 어쩔 수가 없다, 이것이 나의 끝이고 시작이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는 네 명의 인간과 두 마리 개로 구성된 단란한 가족의 가장 만수(이병헌)가 목가적인 풍경의 자택 정원에서 가족들과 바베큐 파티를 한 뒤 모두 포옹을 하고 아름답게 물든 하늘을 올려다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다 이루었다'고 말한다. 제지 회사를 20년 넘게 다닌 그가 만든 울타리 안의 행복이 손에 잡힐 정도로 가까이에 있다. 다 이루었다는 말은 더할 나위 없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만수의 울타리 안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변함이 없어야 한다. 구성원의 수, 그들의 관계, 외부로부터의 침입 등 안정과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것에서 무사해야 한다는 말이다. 관객에게도 보이는 것처럼 이 행복은 경제적인 뒷받침과 무관하지 않다. 별장에 가까운 집, 취미 활동을 여유롭게 즐기는 일상, 게다가 첼로를 연주하는 딸까지 '있는 집'이 아니면 얻기 힘든 것들이 만수가 꾸린 가정 안에 있다. 그런 그가 갑자기 해고를 당한다. 해고의 사유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즉 어쩔 수가 없다는 일방적인 통보다. 단단하게 쌓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모래성이 파도에 쉽게 무너지듯 만수도 순식간에 무너진다. 지금의 행복을 만든 과거의 루틴을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택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경직되어 있다. 가족과 일을 오래 사랑한 그가 선택한 방법은 해고 다시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일이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바꾸는 방법은 늘 무리수일 수 밖에 없다. <어쩔수가없다>는 무리수를 두는 만수의 뒤를 따라가며 그가 하는 선택들을 지켜본다. 당연히 영화도 만수를 도울 수가 없다. 어쩔 수가 없다.

'만수는 대체 왜' 라는 물음이 영화 내내 이어진다. 그는 포기한 뒤 극복하고 도전하는 일반적인 과정을 따르지 않고 그저 복귀하려 한다. 무대가 끝나서 조명이 꺼지고 음향도 없는데 생목으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처럼 처연하고 처절하게. 대체 왜 그렇게 까지 할까라고 내내 생각하던 물음이 영화의 엔딩에 이르러서야 풀린다. 사랑했던 것들 앞에 망연자실하게 주저 앉고, 서 있는 이들을 보면서 알게 된다. 가정을 지키고자 안달복달하던 미리(손예진)와 만수가 끝내 맞닥뜨리는 상황들이 엔딩에 이르러 연이어 펼쳐진다. 만수와 미리의 딸 리원(최소율)은 자폐성 장애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어린이인데 첼로 연주 실력이 뛰어나지만 첼로 선생님을 제외하고 그 누구에게도 연주를 들려주지 않는다. 만수의 폭주 위에 세워진 무덤 위의 평화 속에서 리원이 그토록 원하던 반려견 시쿠와 리쿠도 울타리 안으로 다시 돌아오고 리원은 시쿠와 리쿠 앞에서 첼로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미리는 딸의 연주를 방문 앞에서 들으며 주저 앉는다. 그토록 원했던 딸과의 교감이 선 너머에서 초대 받지 않은 관객의 입장으로 이루어질 때 미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만수는 이제 인간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 제지 공장으로 복귀한다. 사랑했던 일로, 공간으로 돌아왔지만 반기는 이 하나 없다. 그가 사랑한 나무들은 창백하게 종이로 변하고 있다. 핏기 하나 없이 죽음으로 향하는 영안실의 풍경에 다름 아니다. 나무와 종이를 사랑했다고 믿는 만수의 뜨거움은 그 안에서 서글프게 냉각된다. 과거를 품고 미래를 마주한 만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쩔수가없다>는 슬프고 쓸쓸한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재능과 성능이 다르고 사랑과 연민이 다르다는 것을 기어코 알아챈다고 해도 무슨 별 다른 수가 있을까. 차선에 놓인 사람들의 최선은 자조적일 수 밖에 없다. 잘못된 걸 알면서도 액셀을 밟는 만수와 만수가 저지른 사고 현장을 수습하는 미리를 보면서 사랑했던 이들 앞에서 자신이 망가지는 것 쯤은 아무렇지 않다고 믿던 이들은 내내 가슴이 철렁했으리라. 우리가 망가지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은 늘 사랑했던 이들의 얼굴 앞에서 였다. 돌아오지 않을, 보상 받을 수 없는, 타협이 불가능한 그래서 소진되었을 때는 정말로 어쩔 수가 없어지는 그런 사랑이라는 연료. 연소에서 진화로 기어코 불씨마저 차갑게 식히는 영화의 엔딩을 보며 고개를 떨궜다. 할 수 있는 말은 제목을 다시 읊조리는 것 뿐.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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