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스튜디오126은 지난 8일부터 올해 첫 기획 전시를 진행 중이다. 참여 작가인 김지오, 김현경은 인간과 생명에 관한 본질적인 질문을 품고 작업의 중심이 되는 소재와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며 의미를 직조한다.
김지오는 소멸해 가는 문화, 대상, 존재에 대해 줍고 기록하며 그에 따른 실천을 가시화한다. 사라진다는 것은 단지 물리적인 소멸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억에서 멀어지는 일이며, 시대의 흐름 속에서 더 이상 불리지 않는 이름이 되는 것이다. 작가는 사라져가는 사진 암실, 그 어두운 공간에서 출발한다.
한때 감광과 인화의 마법이 펼쳐지던 장소는 이제 기능을 잃고, 기술의 진보 속에 남겨진 잉여의 흔적이 되었다. 작가의 시선은 그 '쓸모 없음'의 경계에서 다른 존재를 발견한다. 어둠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으려는 미시적 생명들, 벌레들이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틈과 벽, 오래된 장비 사이로 스며들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존재를 연장하는 그들의 몸짓에서, 또 다른 생의 서사를 읽어낸다.
작가는 벌레를 줍고, 관찰하고, 기록하는 행위를 통해 쓸모를 잃었다고 여겨진 장소와 존재들에 다시금 '보이는' 자리, '살아있는' 자리로의 회복을 제안한다. 어둠 속에서 스며드는 움직임은 사라짐과 생존, 유예된 시간 속에서도 계속되는 삶에 대한 조용한 증언이다.
자연의 순환과 물성에 대한 깊은 사유를 바탕으로 작업을 이어가는 김현경은 종이라는 재료를 통해 그 근원인 나무의 결과 숨결을 드러낸다. 물성에 대한 탐구와 시간, 자연, 생성과 소멸 같은 개념 또한 중요하게 작용한다. 종이를 단순한 표현 수단이 아닌, 자연의 흔적이 응축된 물질로 바라보며, 나무의 성장과 시간의 흐름, 생명의 리듬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작가는 종이 위에 새겨진 결을 따라가며, 그것이 품은 시간의 층위를 읽어내고 시각화함으로써,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일상의 재료 속에 깃든 자연의 본질과 조우하게 한다. 나무에서 종이로, 종이에서 다시 자연의 감각으로 이어지는 순환의 여정은 자신에 대한 내적인 성찰로도 연결된다. 얇고 연약한 종이 위에 새겨진 결은 곧 작가가 마주한 자연의 형상이자 내면의 세계이며, 그것은 관객의 시선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무용한 것들은 종종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이며, 심지어 불필요하다고 치부된다. 그러나 바로 그 무용함 안에 예술의 본질이 있고, 인간 존재의 회복이 있으며, 다른 삶의 가능성이 숨어 있다.
스페인의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Jose Ortega y Gasset)는 예술의 무용함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봤다. 두 작가는 쓸모의 기준 바깥에서 바라보는 시간을 통해 무용함 속에서 다시 쓰는 예술의 이유, 그리고 무용함 속의 여백과 침묵에서 삶의 방식을 찾고자 한다. <권주희 스튜디오126 대표·독립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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