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39)서귀포시 대정읍 영락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39)서귀포시 대정읍 영락리
한적한 분위기 물씬… 체험관광요소 풍부한 제주섬의 ‘보배’
  • 입력 : 2015. 05.12(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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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두미오름에 올라서 마을회관 방향으로 바라본 전경(위). 포구 하나 없이 갯바위들로 이뤄진 바닷가 모습.

드넓은 농경지를 만들어 낸 대정천이 굽이 돌아가는 곳
제주섬 다른지역 마을과 달리 대정읍 각 마을은 평지에 조성
마을 바닷가 ‘검은갯바위’ 많아 해녀가 있어도 포구는 없어
독특한 어로방식, 문화로 발전 도·정부, 지역문화 보존에 둔감



점질토양이 드넓은 농경지를 만들어낸 사이로 대정천이 굽이돌아 가는 곳이다. 섬 제주의 다른 지역에 비해 평지를 이루는 인근 마을들. 무릉리와 산양리, 조수리, 신도리의 물들이 이 대정천으로 흘러 들어와서 바다로 나간다. 농지침수를 방지하기 위해 하천정비 사업을 하기 전에는 생태계가 살아 숨 쉬던 곳이다. 그 당시엔 대정천 물을 길어다가 생활용수로 활용했다.

700ha가 넘는 마을 면적의 70%가 농경지. 풍부한 농경지를 바탕으로 주민생활 공간은 넓게 뿌려진 형태를 취하고 있다. 독고동, 사통, 삼통, 중동, 하동 5개 지역이 모여 영락리를 형성한다. 멀리서보면 언덕처럼 보이는 해발 42m 돈두미오름에 올라서 바라보면 한반도의 어느 평야지대 마을과 같은 느낌을 준다.

농업경관자원이라고 할 수 있는 수통밭.

좌군욱(79) 노인회장이 들려주는 설촌 유래는 조선왕조 말엽 대정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가파도에 임금에게 진상할 목적으로 흑우들을 방목하였다. 그 소들을 진공우라 불렀다. 바다로 가둬진 천연 목장이니 관리에 용이하였기에 선택된 흑우 전용목장. 19세기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침탈이 시작되면서 가파도 인근 해역을 지나가다 상륙하여 흑우들을 무차별 강탈해가니 싸울 능력이 없는 대정현감은 진공우의 보호를 위하여 당시에는 드넓은 목초지였던 영락리 지역으로 이동시켰다. 흑우들을 관리하기 위하여 함께 이주한 백성들에 의하여 촌락이 형성되고, 목축지역을 개간하여 농토로 만들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번창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백성의 안전을 책임질 능력이 없는 명의 속국 조선의 관리들은 백성의 안위보다 임금이 먹을 소를 걱정하는 것이었으니, 쓰디 쓴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홍종환 이장

평범한 농촌마을 같지만 영락리의 속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깊은 잠재력이 숨어있다. 단순하게 농촌에 존재하는 특징적인 환경과 공동체적 요소를 뛰어 넘는 그 무엇이 있다. 바닷가의 독특한 형태가 빚어낸 모습이다. 2.5㎞에 달하는 해변 모두가 검은 갯바위로 이뤄져 있다. 제주어로 '덕'이라고 불리는 지질자원이다. 두터운 용암이 바다와 만나 절벽보다 낮은 형태에서 풍화를 계속해 온 모습. 이름도 정겹다. 목저문여덕, 한양괴, 전세비, 고냉이돌, 높은덕, 고래통 등. 그래서 영락리에 해녀는 있어도 포구가 없다. 조상 대대로 배를 댈 수 있는 자연적 여건이 없는 관계로 포구를 보유하지 못한 바닷가 마을이다. 해안도로를 가다보면 낚시꾼들이 유난히 많이 보이는 것이 낚시터로 가장 각광을 받는 곳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아이러니다. 배를 댈 수 없는 곳이 가장 좋은 낚시터라니. 이런 바닷가 환경은 놀라운 어로방식을 탄생시켰다. 자리돔을 잡기 위하여 덕이라고 하는 갯바위에서 직접 자리 뜨는 그물을 만들어 자리를 잡는 것이다. 덕자리 뜨기라 부르는 방식. 테우를 보유 할 수 없으니 테우에서 자리를 뜨는 방식을 차용하여 갯바위에서 도르래를 단 굵은 대나무를 사용하여 사람의 힘으로 자리를 뜨는 것이다. 지금도 그 방식을 계승하여 자리돔을 잡고 있다. '덕자리잡이 뜸질보존회' 멤버(?) 만도 43명이 된다. 홍종환(57) 이장의 주장은 이렇다. 심각한 문제는 행정에서 이러한 독특한 자원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후대에까지 전승되도록 하는 움직임이 없다는 것이다. 마을 발전전략에 농어촌 체험을 중심에 두고 있는 영락리의 입장에서 '덕자리 뜨기'야 말로 바닷가 자원이 지닌 경관적 가치에 독특한 어로체험을 통하여 경쟁력을 확보 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문화재 행정이 문화재청 기준표 등을 이유로 이를 해당 사항이 아니라고 한다면 주민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정이 되는 것이다. 신속하게 제주인의 무형문화자산으로 '덕자리 뜨기'가 지정된다면 마을만들기를 통한 주민소득 증대에 큰 토대가 되는 일이 될 것이다.

덕자리잡이 뜸질보존회 회원들이 자리돔을 잡는 모습.

마늘, 양파, 양배추를 중심 소득원으로 하고 있는 농촌마을이지만 마을만들기를 통한 농어촌복합 체험프로그램 개발에 마을공동체가 똘똘 뭉쳐있다. 수 없이 많은 교육과 함께 마을만들기를 위한 의식개혁 차원의 회합을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영락리 곶자왈 체험 공간과 바닷가 덕자리 체험공간을 너른 농경공간을 중심으로 연결하여 마을 전체가 하나의 체험지역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뚜렷하게 알려진 관광지 하나 없는 곳에서 마을이 지닌 농업자원과 해변지형이 만들어낸 독특한 어로방식을 결합하여 체험관광으로 승부를 내겠다는 배포에 찬사를 보내게 된다. 신원준(49) 청년회장의 결기에 찬 표현이 있었다. "출향 젊은이들이 돌아와 함께 살아 갈 수 있는 마을이 되기 위해 어떤 일이든 다 하겠다." 노인 인구가 반이 넘는 농촌 현실에서 3대가 함께 살아가던 모습이 참된 복지공간이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으니. 송순여(53) 부녀회장이 83세가 되는 30년 뒤 좌군욱 노인회장은 109세가 되어 있을 것이다.

양파수확 작업하는 농민들.

30년 뒤 영락리는 농담처럼 던지는 소리로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농삿일을 기계에게 시키는 자동화마을'이 되어있을까? 고된 농사일로 평생을 살아오다 보니 다음 세대가 영락리 마을공동체를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도시생활보다 좋은 환경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새겨들었다. 이구동성으로 주택여건의 개선 없이는 인구 감소를 막을 수가 없다고 탄식하고 있었다. 활로는 마을기업화를 통한 수익창출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영락리에서 만난 주민들의 공통적인 말버릇이 있었다. 대화 중간 중간에 '우리가 하기 나름'이라는 표현. 가슴 뭉클 한 감동이었다. 주민들 사이에 견고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직감 할 수 있는 증표였다. 자발성이 성공 열쇠다. 자물쇠를 풀 수 있는 결속 자원을 가진 영락리다.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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