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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마을 가치찾기] (9)백록담 정기 받은 토평동
물과 땅, 산과 바다 모두 들어있고 풍요로움까지…
조상윤 기자 doyoung@ihalla.com
입력 : 2020. 12.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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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여년전 묵은가름에 정착하며 시작돼
백록담 정기받고 남쪽 바다 검은여까지

말 진상·군사훈련 장소 등 옛지명 남아
산악인 오희준·나비학자 석주명 숨결도

한라산을 넘어가는 길, 양옆의 나무들이 앙상히 가지만 드러낸 채 겨울이 왔음을 알린다. 하지만 산을 넘어 남쪽에 다다르니 풍경은 달라진다. 초록 잎사귀의 귤나무에 주황색 귤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귤의 무게에 가지가 휘어진 채 담장 밖으로 꺾이듯 뻗어있는 나무들까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풍성하다.

바위가 검다하여 검은여라 불린 곳, 낚시 포인트로 유명하다

토평동은 서귀포시 북동쪽 4.5㎞에 위치한다. 서쪽에 동홍동이 위치하고 동쪽에 상효동이 있다. 땅이 평탄하고 기후가 온화해 감귤농사가 잘 된다. 주민 대부분이 과수원을 운영해 이 계절 여기에 오면 감귤이 꽃처럼 달려 있는 풍성한 감귤나무를 쉬이 볼 수 있다.

토평동의 역사는 약 4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김씨, 오씨, 정씨가 지금의 정방폭포 위쪽 묵은가름에 정착해 살며 시작됐다. 하지만 해안가에 위치해 자꾸 물에 빠져 죽는 이가 많아 마을의 터를 지금의 중산간지대로 이주했다. 이 곳에 오니 땅도 비옥하고 멧돼지 등의 사냥거리도 많았다. 그래서 이 곳을 돗드르(猪坪里)라고 했다. 이후 1925년 정의계 우면 토평리로 개칭하고 1955년 서귀읍 토평리가 됐다.

검은여 앞바다에서 바라본 풍경

토평동 15-1번지는 백록담이다. 한라산 정상의 기운을 내리받고 남쪽 바닷가 검은여까지 내리뻗은 지역이 토평동이다. 과거 산간에서 중산간을 거쳐 해안까지 가는 길이 멀어 가는 길마다 사연이 숨어있다. 여름철 날이 더운 칠월 백중 날 마을주민들이 물 맞으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쉬는 동산을 '쉬는 산'이라 하고, 거문여에서 삼성여고쪽으로 급경사를 이루는 언덕길인 동진모루는 소도 쉬어야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가팔랐다고 한다. 과거 말을 진상하기 위해 말을 모아 두었던 밭인 '몰진밧'과 나무를 실어 나르던 곳인 '화목골', 활 쏘는 군사훈련을 했던 '솔대' 그리고 물이 흙물이라 '토물'이라 불리던 식수처가 옛 지명으로 남아있다.

토평어촌계가 자리한 검은여(거문녀)는 서귀포시 칼호텔 남쪽 바닷가에 위치한다. 밀물에는 잠기고 썰물에는 드러나는 커다란 바위가 검은색을 띄어 검은여라 불린다. 과거에는 이 바위를 의지해 테우를 타고나가 낚시를 하고 해조류를 채취했다. 변변한 포구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던 시절에는 훌륭한 포구가 돼주었던 장소다. 지금도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서귀포 70경, 영천 9경에 속하는 절경이다.

여름이면 물맞이 장소로 유명한 소정방폭포.

검은여 서쪽 언덕에는 과거 호텔이 있던 곳에 커피숍이 자리한다. 그 곳에서 내다보면 검은여를 낀 일대의 바닷가가 한눈에 내다보인다. 관광객들의 포토존인 듯 사진을 찍는 이들이 많다. 그 곳을 지나 산책로로 들어서면 소정방폭포로 이어진다. 작은 물길이 언덕에서 바닷가로 치고 내려 폭포가 된 곳이다. 약 5m의 물줄기이지만 나름 폭포의 위엄을 갖추었다. 여름 백중날 더위를 식히기 위해 이 곳에서 물을 맞는 풍습이 있다. 지금도 여름 피서지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오희준 기념공원의 추모탑

토평사거리에는 오희준 기념공원이 있다. 토평동 출신의 산악인으로 남극점, 북극점 히말라야 8000m급 10좌를 정복한 세계적인 산악인이다. 아쉽게도 37세의 나이에 에베레스트 등반도중 눈사태로 사망했다. 그의 도전정신과 업적을 잊지 않기 위해 오희준기념사업회를 꾸리고 그의 고향인 토평동에 기념 공원을 만들었다. 그 곳에 가면 추모탑과 함께 그의 흔적을 기록한 패널 등을 볼 수 있다. 길을 가다 멈춰 이곳에서 젊은 산악인의 숨결을 느껴 봐도 좋을 것이다.

오희준 기념공원 맞은편에는 석주명 기념비가 있다. 나비학자로 유명한 석주명선생은 1943~1945년 이 곳 토평동 경성제국대학 부속 생약연구소 제주도 시험장에 근무했다. 석주명 선생은 이 곳에 머무는 동안 나비와 곤충은 물론 제주도 방언 등을 연구했다. 그 결과물이 제주도 총서 6권으로 제주학의 시초가 됐다.

석주명 선생을 기리는 기념비

'나비학자' 석주명 선생이 근무했던 경성제국대학 약학연구소의 모습. 최근 국가지정 문화재로 등록됐다.

석주명 기념비가 있는 사거리를 돌아 영천동 마을길 쪽으로 들어서면 제주대학교 아열대농업생명과학연구소가 나온다. 여기가 석주명 선생이 근무했던 곳이다. 다행히 최근 국가등록문화재 제785호로 지정됐다. 일제시대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옛 건물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건축사적 의미와 함께 석주명 선생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문화재 지정을 기점으로 활용방안들이 논의되고 있다는데 박제화 된 공간으로 멈춰있지 말고 의미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해 토평동의 명소가 돼주길 기대한다.

마을을 따라 영천이 흐른다. 물과 땅과 산과 바다가 다 들어있는 마을이다. 풍요로움이 오롯이 느껴지는 토평동이다. 풍성한 수확을 끝낸 농부의 마음처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토평동이 자연그대로 잘 남아있길 바란다.

<글·사진=조미영(여행작가)>

[인터뷰]김규완(토평동마을회 회장) “돈내코 산책로 조성해 일출명소로”

한라산 백록담에서 해안 절경의 검은여까지 토평동에 속한다. 날씨가 따뜻하고 온화해 감귤의 품질이 좋다. 그래서 80~90%의 토평동민이 감귤농사를 짓는다. 제주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지만 토평동은 큰 영향을 받지 않는 편이다. 과수원의 수익률도 좋고 살기 좋은 편이라 대부분이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다. 이주민도 많지 않고 있더라도 마을에 잘 흡수되고 있다.

나비박사 석주명 선생님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이 이 곳 토평동이다. 선생님이 제주에 계실 때 머물렀던 현 제주대 아열대농업생명연구소가 최근 국가지정 등록문화재가 됐다. 그리고 토평동 출신 산악인 오희준 기념공원이 있다. 그리고 토평초등학교는 배구명문이었다. 국가대표는 물론 프로선수로 뛰는 토평 출신 선수들이 많다.

돈내코 주변을 정비해 여름철 명소로 활성화시킬 예정이다. 현재도 여름이면 마을부녀회에서 식당을 운영한다. 산책로를 조성해 일출명소로 가꿔갈 생각이다.

토평공업단지가 조성된 지 30년이다. 침출수와 비산먼지 등의 환경오염의 요인들이 많은데 대책이 미비하다. 대규모 공업단지가 아닌 공업지역이라 별다른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행정의 적극적인 지도감독이 요구된다. 또한 헬스케어타운의 추진이 흐지부지 상태다. 빠른 매듭으로 지역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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