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후 작가의 시(詩)로 읽는 4·3] (49)4·3별곡(윤봉택)

[김관후 작가의 시(詩)로 읽는 4·3] (49)4·3별곡(윤봉택)
  • 입력 : 2020. 03.05(목)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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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있음이 편안하였던 시절

이제 다시 살아 있음이

죄가 되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침묵 후에 말하려 하는 것은

그날의 고자질, 아픔, 총칼, 죽창이 아닙니다

묘비명 없이 시방도 저승길 가고 계실

나 설운님들에게 이승의 우리

이름으로

떠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일만 사천육백 일 동안 비겁하였던 거짓을

참회하려 함입니다

오 그리하여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되게

하려 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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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지난 시절 말하지 못한 금기(禁忌)의 시간을 참회한다. 그 말하지 못한 침묵의 내용을 말하는 것이 시인에게는 더 이상의 '고자질'이나 '아픔'으로 상징되는 '반목'이 아니다. 70여 년 간 4·3은 침묵, 금기, 왜곡에 포위돼있었다. 지금도 4·3은 '빨갱이 폭동'이라는 딱지가 떨어지지 않았다. 한국 언론은 한국전쟁 이후 현대사에서 인명피해가 가장 컸던 4·3을 제대로 기사화하지 못하고 있다. 4·3은 제주만의 역사로 갇혀있다. '총칼' '죽창'으로 상징되는 죽음이 아니다. 그것은 시인에게 4·3의 역사가 있은 후 '일만 사천육백 일 동안' 참아 왔던 아픔의 역사를 말하지 못했던 거짓을 참회하는 행동이 된다. 시인은 참회라는 형식의 내적 성찰을 통해 더 이상 "나와 너"가 아닌 "우리"라는 삶의 공동체 틀에서 살아가고 싶음을 이야기한다. 역사적 아픔을 딛고 사랑으로 기인한 더불어 사는 삶의 모습이 제주인의 정신이며 제주문학에 나타나는 작가정신이다. 원래 금기는 종교적 관습에서 어떤 대상에 대한 접촉이나 언급이 금지되는 일이다. 금지되는 것에는 행동과 말 양쪽이 포함된다. 터부(taboo,tabu)와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구기(拘忌)'라고도 하며, 우리나라의 민속 현장에서는 '가리는 일', '금하는 일' 등으로 불리고 있으며, 더러는 '지키는 일', '삼가는 일'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이러저러한 행동을 하여서는 안 되고, 무엇인가에 근접하거나 손을 대어서는 안 되고, 무엇인가를 입에 올려서는 안 되고, 또 어느 대상을 보거나 들어서도 안 되는 것이 금기이다. 그렇다고 금기가 언제나 기피나 회피 쪽에 일방적으로 치우쳐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부정한 짓을 해서는 안 될 경우 부정에 빠지지 않게 목욕재계하는 것은 좋은 보기가 될 것이다. 무엇인가를 하지 말라는 금령이 있을 경우, 하지 않음으로써 보장될 어느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행동하는 일이 우리의 민속 현장에서 쓰이고 있는 '지킴'이나 '가림'에는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속신앙에서 문제되는 '깨끗함'과 '더러움', '청정(淸淨)'과 '부정'의 이원론적 대립을 두고 볼 때, 금기는 더러움이나 오염 또는 부정에 걸리지 않고, 청정·맑음·깨끗함을 보장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종교적 오염에서 벗어나는 것이 곧 금기이다. 부정을 타는 것은 오염이다.(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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