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깊고 느리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사진

[책세상] 깊고 느리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사진
임종진의 '당신 곁에 있습니다'
  • 입력 : 2020. 02.28(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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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그에게 옳은 사진
결과보다는 찍는 과정 중요


초상권이라는 말이 흔해진 건 그리 오래지 않다. 허가없이 촬영되거나 공표하는 일에 대개 무심했다. 온힘이 빠지도록 물질을 마치고 나온 검은 고무옷 입은 제주 해녀들에게 망설임없이 카메라를 들이댔던 시절이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스스로를 '사진치유자'라고 규정하는 임종진씨는 그같은 초상권보다 더 깊숙이 들어가 인간의 존엄을 묻는 사진을 고민한다. 누군가의 고단한 삶을 위한다는 사진들이 사실은 그들의 힘겨운 생에만 집착했던 건 아닌가 하는 반성이다. 나와 '그들'을 '우리'의 범주 안에 넣고 싶었고 현상보다는 사람을 우선해 보고 싶었다. 나의 사진이 내가 아닌 '그에게 옳은' 사진이길 바랐다.

북한과 이라크 현장을 취재하던 사진기자였던 그가 어느 날 신문사를 그만두고 가장 가난한 나라인 캄보디아로 떠났던 이유다. 그는 그곳 국제구호기관에서 일하며 무료 사진관을 열었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서는 아픈 사람들의 곁에서 '사진 치유' 작업을 시작했다.

그가 글을 쓰고 사진을 담은 '당신 곁에 있습니다'는 그같은 여정을 풀어낸 '사진 치유 에세이'다. 긴 시간 헤매며 찾아낸, 하고 싶은 사진의 방향성을 독자들과 나누고 있다.

그에게 사진은 결과가 아니라 '찍는 과정'이다. 한 장의 사진을 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하기 위해 찍는다. 가난한 이들의 빈곤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이 웃는 귀한 존재임을 사진으로 말하려 한다. 장애인에게서 장애만 바라보는 것 역시 차별의식을 확산시킨다고 했다.

어떤 경우에는 일부러 사진을 찍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도 그는 아쉬울 것이 없다. 기본적으로 사진은 '나'라는 존재와 대상으로서 '너(또는 사물)'라는 존재가 서로 마주함으로써 이미지로 구현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그는 결정적 장면을 포착하는 맛보다는 같은 시공간에서 천천히 유영하듯 머물고 있을 때가 훨씬 더 즐겁다는 걸 알게 됐다. 사진을 더 잘 찍기 위해 향했던 낯선 나라는 그를 오히려 셔터를 누를 일이 줄어든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그는 오늘도 천천히 깊고 느리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사진을 꿈꾼다. 소동. 1만6500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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