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호의 구라오(古老)한 대국] (2)'구라오'-상고주의와 탁고개제

[심규호의 구라오(古老)한 대국] (2)'구라오'-상고주의와 탁고개제
여전히 막강한 옛 것의 힘을 빌어 현재를 바꾼다
  • 입력 : 2019. 03.20(수) 2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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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무와 변법자강의 교훈
현재의 개혁과 혁신 위해
오히려 옛 것서 근거 찾아
중국몽 상고주의와 상통
고대로 현재 재단 문제도
중국인에 거대한 억압기제


'구라오'한 문화는 단지 축적만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일통一統,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있어야 한다. 유가의 학설이 기둥을 맡고 도가와 불가의 학설이 대들보가 되었으며, 법가의 사상이 지붕과 벽이 되었다. 특히 유가는 한나라 동중서董仲舒의 제안을 받아들인 무제의 '독존유술獨尊儒術(오로지 유가의 학설만 존중한다)'을 통해 국가 이데올로기로 확정되었다. 유술은 오상五常과 오륜五倫, 사유四維와 팔덕八德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도덕규범을 완성하면서 황제부터 일반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행위와 관념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적어도 2000여 년 전에 거의 완정한 형태의 사상, 관념, 이데올로기 체제가 갖추어져 중국문화는 조숙함으로써 더욱 '구라오'하게 되었다.

문화의 조숙성, 통일성, 완정성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상고주의尙古主義로 이끈다. 상고주의는 말 그대로 옛 것을 숭상한다는 뜻인데, 숭상에서 그치지 않고 아예 모범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통적인 관념 가운데 하나이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는 서사시 '테오고니아(신들의 계보)'에서 역사를 황금시대, 은의 시대, 청동시대, 영웅의 시대, 철의 시대로 나누고 현재를 뜻하는 철의 시대에서 고대 찬란하고 행복했던 황금의 시대로 회귀할 것을 주장했다.

중국인들이 2000년에 걸쳐 쌓아올렸다는 만리장성.

중국 상고주의의 발단은 춘추전국시대에서 비롯된다. 특히 공자는 스스로 하상주 삼대의 전통을 계승하는 역할을 맡았다. "나는 옛 것을 전하여 기술할 뿐이지 새롭게 창작하지 않았으며(述而不作) 옛 것을 믿고 좋아하였으니 사사롭게 비유하자면 노팽에 견줄 수 있다." '술이' '중용'은 한 술 더 떴다. "요와 순임금을 조종으로 삼아 전술傳術하고 문과 무왕을 본받았다."(30장) 물론 그는 단순히 옛 것에 얽매인 것이 아니다. "옛 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안다(溫故而知新)." '위정' 전통에 대한 맹종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서 대안을 추구했다는 뜻이다.

이러한 상고주의는 유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묵자는 하夏의 옛 이야기(대우大禹) 속으로 들어가 자신들의 주장을 증명하고자 했으며, 노자는 아예 결승結繩문자를 사용하고, 갑옷과 무기는 물론이고 배와 수레도 사용하지 않는 국가 이전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시대로 돌아가고자 했다.

이는 상고하기 어려운 옛날의 전설이나 신화를 빌어 자신의 사상적 연원의 장구함을 뽐내거나 사상의 합리적 연속성을 증명하기 위함이자 현실에 대한 비판과 대안 마련에서 비롯된 것이다. 왕망王莽의 신新(8~23년)나라가 나라 이름과 달리 상고주의에 충실하여 '주례周禮' 등 유교 경전을 근거로 하는 개혁 정치를 단행하는 등 주나라를 본받으려고 했던 것도 연장선상에 있다. 당나라 고종의 황후로 690년 황제의 자리에 올라 15년간 통치했던 여제 측천무후의 나라 이름은 아예 주周였다.

이렇듯 옛 것을 빌어 현재를 바꾸려는 것을 '탁고개제托古改制'라고 한다. 개혁을 하려면 그냥 하면 되지 왜 굳이 옛것에 기탁하는가? '구라오'한 옛 것의 힘이 여전히 막강하게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말 외세의 막강한 화력 앞에 속수무책일 때 당시 지식인들은 양무洋務, 즉 서양 따라잡기 운동을 첫 번째 카드로 꺼내놓았다. 하지만 서양의 과학과 기술을 총동원하여 만든 북양함대가 청일전쟁에서 일본함대에게 궤멸되면서 그다지 좋은 패가 아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 카드가 바로 변법자강, 즉 법(제도)을 바꾸어 스스로 강해지자는 것이다. 강유위, 담사동, 양계초, 엄복 등이 주장하고 광서제가 받아들여 변법을 강행했지만 결국 서태후를 위시로 한 수구세력에게 막혀 103일 천하로 끝나고 만다.

공자 초상. '공자개제설孔子改制說'은 중국인들의 '구라오'한 문화와 심성을 상징한다.

실패의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청조 과거제도의 핵심인 팔고문 철폐와 지방 서원을 학당으로 바꾸자는 주장만으로도 '구라오'한 문화기반을 흔들어 가열한 반대에 직면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강유위가 공자도 당시 제도를 개혁하면서 요와 순임금에게 가탁했다는 '공자개제설孔子改制說'까지 꺼내놓으면서 '탁고개제'에 열을 올렸던 것이 아니겠는가? 현재의 개혁과 혁신을 위해 오히려 옛 것에서 근거를 찾는 것, 이는 중국인들의 '구라오'한 문화와 심성을 상징한다.

상고주의는 지금도 여전하여 현재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통문화에 대한 계승 발전 및 선양과도 연결된다. 시진핑 주석은 2013년 8월 19일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 선전宣傳사상공작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중화문화의 옥토에 뿌리를 내려 중국인민의 바람을 반영하고 중국과 시대발전의 진보라는 요구에 적응하면서 깊고 두터운 역사적 연원과 광범위한 현실적 토대를 지니고 있음을 분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중국공산당의 공식 이념이 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중화문화의 옥토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발언은 고대 문화전통과 현대 문화현실을 접목시켜 새로운 대안으로 삼고자 한다는 점에서 상고주의와 일맥상통한다. 이런 면에서 "문명의 계승과 발전이 없다면, 문화의 선양과 번영이 없다면 중국몽中國夢의 실현도 없다."는 그의 발언을 이해할 수 있다.

공자 학당의 학과목 육예(六藝).

상고주의는 자신의 전통문화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의 발현으로 미래의 희망을 담보하기도 하고, 전통문화의 장점을 되살려 국가나 민족의 특색을 재현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역으로 그것은 현대가 고대에 의해 지배당하고, 모든 근원을 고대에 두며, 이를 통해 현재를 재단하기도 한다. 당연히 퇴행적이고 보수적이며 폐쇄적이다. 진보와 개혁은 이로 인해 공공의 적이 되고, 심지어 변법자강운동에서 희생된 무술년(1898년)의 여섯 사람(무술육군자)처럼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게다가 상고주의의 핵심인 유가의 학술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류자이푸(劉再復)가 '전통과 중국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국의 전통문화는 도덕주의의 색채가 농후하여 거의 모든 것이 도덕의 범주로 귀결된다. 세상의 모든 도덕이나 종교의 도리가 그러하듯이 권선징악, 인과응보, 자업자득, 상선벌악賞善罰惡을 마땅한 이치로 제시한다. 하지만 현실은? 선악이 전도되어 가치판단조차 흔들거리며, 선을 행하고 오히려 악보惡報에 허덕인다. 이러한 현실에 직면하여 공자나 맹자는 여전히 수신을 주장할 뿐이다. 너만 잘하면 된다는 뜻이다. 그럴까? 도가 없으면 어떻게 하지?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않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않는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나타나고, 도가 없으면 숨어야 한다. 나라에 도가 있을 때 가난하고 천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나라에 도가 없을 때 부하고 귀한 것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태백')

그러면 뭘 먹고 사나? 안빈낙도安貧樂道하라! 너무 멀다. 하여 백성들은 생존의 기교에 능하여 냉담하고 이기적이며 허위의식으로 무장하게 된다.

또한 유가의 도는 수신과 치국 사이에 간극이 너무 뚜렷하다. 오죽했으면 양계초가 "우리 국민이 가장 결핍되어 있는 것은 바로 공중도덕이다."고 했을까. 수신에 치중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치국평천하를 위함이다. 하지만 누가 치국평천하를 하는가? 대다수 백성들은 생계를 유지하기조차 힘들다. 그런 그들에게 여전히 수신에 힘쓰라고 한다. 무엇을 위해서? 조숙하고 노련하며, 완정한 중국문화는 이렇게 오래되고 천천히 늙어가면서 중국인들의 관념과 심성에 거대한 억압 기제가 되었다. <심규호·제주국제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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