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연의 문화광장]지역에 있으면서 지역성에 고립되지 않는 방법

[이나연의 문화광장]지역에 있으면서 지역성에 고립되지 않는 방법
  • 입력 : 2017. 11.14(화)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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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주로 돌아왔냐는 질문에 말문이 막힌다. 내게 제주는 때가 되면 돌아와야 할 집이었기 때문이다. 제주를 떠난 건 시작부터 순전히 타의에 의해서였다. 더 좋은 교육을 위해, 괜찮은 돈벌이를 찾아. 제주에 직장을 얻어 돌아왔고, 이젠 일거리를 스스로 찾아 프리랜서로 활동한다. 그런 내게 왜 제주로 돌아왔냐고 물으면, 집이니까 집에 왔는데, 왜 집에 돌아왔느냐 되물으시면 집이라서 돌아왔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장금이같은 대답을 하게 된다. 제주에서 태어난 건 내 선택이 아니지만, 제주를 떠난 것도 내 선택과 절반은 무관했지만, 제주에 돌아온 것은 완전히 내 선택이긴 하다. 왜 고향에 돌아온 것이 특이한 일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내가 태어난 고향이 서울이 아니라 지역이고, 그 지역이 제주라는 특수한 곳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위치한 곳의 지역성에 대해 생각하는 장치를 외부에서 만들어줬다.

지역성에 대한 일반적인 분위기를 떠나, 전공 분야이자 활동 분야인 미술 쪽으로 범위를 좁혀봤다. 작품에 지역성을 담는다거나, 지역전시에 지역작가를 안배해야 한다는 얘길 들을 때마다 '지역성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서울이 아닌 곳이라는, 서울보다 한 단계 밑에 있다는 계급성을 이미 담고 있는 지역이라는 단어에 대해 끊임없이 곱씹어본다. 지역에서, 서울이 아님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지역만의 특색을 내세우는 전략을 찾으려 애쓴 지는 오래다. 특산품을 만들고 홍보하는 게 대표적 경우다. 그런데 예술도 특산물이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글쎄다. '씨위드' 2호에 '공간, 탈 중심화, 그리고 월 30만원의 레지던시 아티스트피에 대해서'라는 글을 쓴 강민형은 광주에서 '바림'이라는 공간을 운영하며 지역에서 활동하고 거주하면서 지역색에 얽매이지 않는 예술 활동을 실험한다. '지역에 있으면서 지역성에 고립되지 않는 방법을 찾아, 서울과 비서울의 계층적 격차 없이 예술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 그가 연구하는 주제의 '아름다운 결말이고, 아마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활동하고 싶은 지역에서 지역 홍보에 이용되지 않고, 특산품이 아닌 예술을 하려면, 작가에겐 어떤 여건이 필요할까? 서울이라는 공간이 서울 작가들에게 주어진 상이 아니듯, 지역이라는 공간도 지역 작가들의 죄의 대가는 아니다. 인생을 작업에 헌신하기로 결심한 이들이 예술가일 테고, 예술만 하게 해준다면 바라는 게 없는 이들일 텐데, 사회와 지역은 예술가에게 예술 빼고 원하는 게 너무나 많다.

거친 동네와 허름한 건물에서 기어코 살아남아 부동산값을 올려주고, 지역의 특산물이 될만한 작품을 제작해주고, 와중에 돈을 버는 일은 따로 해서 지역과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어야 하면서, 각종 기관의 예술과 연관한 프로그램에 온갖 방식으로 동원되고 이용된다. 이 모든 일들을 해내면서 순수하게 예술을 지켜내기란, 예술가로 살아남기란 불가능에 가깝고, 그래서 지역에 사는 우리 주변에서 예술가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 되어간다.

이 장애요소를 극복해 예술가로 살아남았다 치자. 생존과정에서 휘말린 일들에 이미 힘이 빠질 대로 빠져버린 예술가에겐 과연 예술적 에너지가 남아있을까? 그렇다면, 이 척박한 지역과 현실에서 예술가를 지켜내기 위한 대안이 있기는 한가? 이 대안 찾기에 대해선 다음에 좀 더 긴 지면에서 논해보기로 하자.

<이나연 씨위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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