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친오름을 내려가는 길목에 억새가 피어 있다. 사진 정은주
절물에서 장생의숲길까지…안갯속 신비로운 생태 여정숲에서 작은 생명들과 조우
[한라일보] 지난 10월 25일 '2025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가 아홉 번째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번 코스는 절물자연휴양림에서 시작해 장생의숲길과 한라산둘레길 9구간을 거쳐 노루생태관찰원까지 이어지는 여정이었다. 가을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아침, 절물자연휴양림에서 탐방이 시작됐다.
절물자연휴양림은 전국에 있는 46개 국립자연휴양림 중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곳으로 곰솔과 울창하게 자란 삼나무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1970년대 초에 산림녹화 사업이 시행되면서 봉개동 주민들이 직접 심은 나무들이다. 당시 우리나라 산림은 황폐했지만 대대적인 나무 심기 운동으로 지금과 같은 울창한 숲이 조성됐다고 한다. 안개가 흐르는 숲길은 그야말로 운치가 넘쳤다.
가장 먼저 까마귀가 우리를 반겼다. "예부터 까마귀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요. 사실 까마귀는 먹이를 잡기 위해 나뭇가지를 도구로 사용할 정도로 똑똑하답니다. 동물의 사체를 처리하는 청소부 역할도 하고 있고요. 알고 보면 우리 생태계에 꼭 필요한 새이죠." 길잡이를 맡은 김정수 자연환경해설사가 오해하기 쉬운 까마귀에 관한 편견을 바로잡았다. 까마귀 종류가 많다 보니 '까마귀'란 이름이 붙은 나무들도 제법 있다고. 까마귀베개나무는 작은 빨간 열매가 베개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이 외에도 까마귀쪽나무, 까마귀밥나무 등 다양한 식물들이 까마귀란 이름을 품고 있다.

깊은 숲속 삼나무길 정취가 운치 있다.

내장산띠달팽에 대해 설명하는 김정수 자연환경해설사.
어느새 생이소리질에 접어들었다. 제주어로 '생이'는 새를 뜻하고 '질'은 길을 가리킨다. 길을 걷는 동안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정수 해설사가 "제주를 상징하는 새가 무언지 아세요?" 묻자 누군가 "큰오색딱따구리"라고 대답했다. "맞습니다. 큰오색딱따구리는 나무에 구멍을 뚫거나 먹이를 찾을 때, 그리고 서로 신호를 주고받기 위해서 딱딱딱 소리를 내죠. 오색딱따구리와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배에 까만 세로 줄이 쭉쭉 그어져 있는 것이 다르답니다."
물기를 머금은 숲은 생동감이 넘쳤다. 흩뿌려지듯 내리는 빗속을 걷다 보니 달팽이들이 자주 보였다. 제주는 습한 환경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달팽이가 큰 편에 속한다고. 마침 굵은 나무둥치에 달라붙어 있는 충무띠달팽이가 눈에 띄었다. 몇 걸음 더 옮기자 나뭇가지 사이에 자리 잡은 내장산띠달팽이도 볼 수 있었다. 전라북도 내장산에서 처음 발견돼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무엇보다 엷은 크림 빛을 띤 패각(껍질)이 자랄수록 마치 단풍처럼 점점 붉게 물든다는 게 신기했다. 자웅동체인 달팽이들이 서로 암수 역할을 분담하며 짝짓기를 한다는 사실도 새삼 놀라웠다.

가을비에 젖은 장생의숲길.

참가자 단체사진
데크 길을 벗어나 족은대나오름(작은절물오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족은대나오름은 높이 657m로 큰대나오름(큰절물오름)보다 약 40m 낮다. 빨갛게 익은 팥배나무 열매가 마치 레드카펫처럼 깔려 가을 정취를 물씬 풍겨내고 있었다. 안개가 짙게 끼어 주변 경치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오히려 신비로운 분위기를 마음에 품고 내려왔다. 큰대나오름에 올라서도 여전히 안개 때문에 시야가 제한적이었다. 날이 맑았다면 한라산을 비롯해 크고 작은 오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을 테지만 그럼에도 시원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 기분만큼은 상쾌했다.

사진 왼쪽부터 내장산띠달팽이, 민달팽이, 충무띠달팽이

한라돌쩌귀
장생의숲길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깊은 숲속에 서정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길은 조금 질퍽했지만 발걸음은 오히려 가벼웠다. 건강하고 장수하기를 바라는 의미가 담겨서인지 숲 전체가 힐링 에너지로 가득했다. 숲길을 걷는 동안 먹구름이 걷히기 시작하더니 빗줄기도 점점 잦아들었다. 희뿌연 안개마저 사라져 가고, 점점 또렷해지는 풍경을 부지런히 눈에 담았다.

곰의말채나무 열매자루

까마귀베개나무 열매
장생의숲길과 한라산둘레길이 연결되는 길목에서 도시락을 펼쳤다. 깊은 숲속, 청량함이 감도는 쉼터는 소진된 에너지를 보충하기에 충분한 장소였다. 재충전 후 길을 나설 땐 오히려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이 됐다. 삼나무 숲길에 발을 들이자 풍경이 또 달라졌다. 두꺼운 이끼 옷을 입은 삼나무 숲은 자연의 명작이나 다름없었다. 마지막 구간인 거친오름을 오르는 길. 거친오름은 이름과 달리 탐방로가 잘 정비돼 있어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전망대에 서자 오전 안개에 가려 보지 못했던 모습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제주 시내와 앞바다까지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시야가 달콤한 결말을 맛보게 했다.

정은주(여행작가)
가을비 속에서 진행된 이번 에코투어는 제주 숲이 가진 다양한 매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안개와 비가 오히려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했고 숲길에서 마주친 작은 생명들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글 정은주(여행작가)>
■기사제보▷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