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학연구센터가 펴낸 '승정원일기 정조대 제주기사' 자료집
[한라일보] "탐라(耽羅) 한 섬은 아득히 천 리 깊은 바다 밖에 있어서 여러 차례에 흉황(凶荒)을 만나서, 백성들이 지보(支保)하지 못한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지난해(1792년) 가을 농사의 큰 흉년은 전에 겪어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올해(1793년) 여름 보리 또한 공참(孔慘)하니, 겨울부터 여름까지 굶어 죽은 사람이 몇천 명이나 되는지 모릅니다. (중략) 목민관은 밤낮없이 술에 취하여 백성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으니. 재읍(災邑)의 정사를 책임지게 하기가 어렵습니다."('승정원일기' 중)
230여 년 전인 18세기 후반 제주는 지리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자연재해가 발생하면서 구조적으로 식량 부족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상황에도 지방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일어나고, 재해 구휼이라는 민생 문제에서조차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문제들이 속속 드러났다. 조선 중앙 정부는 이를 감독하기 위해 어사를 파견해 다양한 위무책을 시행하며 제주인의 고통과 직면한 문제를 살펴보고자 했다.
제주학연구센터가 조선후기 정조대(1782~1794)의 '승정원일기' 속 제주 관련 기사를 발췌·역주해 최근 펴낸 '승정원일기 정조대 제주기사' 자료집에 담긴 내용이다. '승정원일기'는 조선시대 왕과 신하 간의 모든 대화와 국정 운영 상황을 날짜별로 기록한 조선왕조의 공식 기록물로, 왕실의 일상부터 국가 정책 결정 과정까지 담겨 있어 '조선왕조실록' 등과 더불어 '조선시대사 연구의 보고'로 불린다.
이번 자료집은 센터가 2017년부터 진행해 온 '승정원일기 제주기사 번역 편찬사업'의 결과물이다. 1782년(정조 6년)부터 1794년(정조 18년)까지 기록된 약 1500건의 제주 관련 기사를 원문과 대조해 충실히 번역하고 방대한 주석을 보완했다.
자료집에는 제주 삼읍(제주·정의·대정) 수령의 임명과 업무 보고를 비롯해 제주 특산물의 중앙 진상 과정, 자연재해 발생 시 중앙 정부의 구휼 정책, 제주민의 민원 처리 과정, 추자도 등 부속 섬들의 관리 실태, 유배 실태 등이 그려져있다. 특히 18세기 후반 자연재해로 인한 제주의 위기를 조선 정부 차원에서 어떻게 대응했는지 상세히 기록됐다.
임승희 전문연구원은 "정조대는 조선후기 개혁정치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로, 중앙집권적 통치 강화와 함께 지방 통치에 대한 관심도 크게 높아졌다. 이 시기 제주 관련 기록들은 중앙에서 바라본 제주의 모습과 함께 제주가 조선 국가 체제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보여준다"며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위기 상황에서 참고할 만한 값진 지혜가 기록에 숨겨져 있다"고 했다.
김완병 센터장은 "승정원일기와 같은 정사(正史) 자료는 제주사 연구의 기초가 되는 자료"라며 "이 자료집을 통해 더 많은 연구자와 독자들이 18세기 후반 제주 역사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자료집은 도내 도서관 등 공공기관에 배부된다. 제주학연구센터 누리집에서 자료를 내려받아 볼 수 있다. 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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