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20대 초반 제주에 경찰로 파견된 청년 김창열은 '사이비 경찰관'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림에 몰두했다. 그는 제주에 머무른 1년6개월여간 문인 계용묵, 화가 장리석과 홍종명 등 피난 온 예술인들과 인연을 맺으며 교류를 이어갔다.
이러한 인연은 이후 1953년 계용묵이 엮은 문학지 '흑산호'로 이어진다. 김창열은 이 문학지에 제주에서의 체험을 담은 '종언', '설계도', '동백꽃' 등 시 3편과 표지화를 발표한다. 그의 시에는 전쟁과 분단의 상처, 제주의 자연에 투사된 슬픔과 분노가 담겨 있으며, 표지화는 현재까지 알려진 김창열의 가장 이른 시기의 미술작품으로 그의 예술 여정의 출발점을 보여준다.
'물방울 화가' 김창열 화백(1929~2021)의 젊은 날 제주에서의 삶과 예술활동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이 이달 9일부터 선보이는 특별기획전 '우연에서 영원으로: 김창열과 제주'이다.
이번 전시는 김창열이 6·25전쟁을 계기로 머물게 된 제주에서 펼친 문학·미술 활동과 이후 전쟁의 참혹한 경험을 예술로 승화시킨 창작 여정에 주목한다. 1950년대 제주 시기를 기점으로 전쟁의 상처와 물의 기억을 토대로 문학과 미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한 독창적 미학을 조명한다.
전시는 그가 제주를 기억하며 제작한 '물방울(제주도·2003)'을 출발점으로 파리, 뉴욕, 서울, 제주로 이어지는 여정으로 구성된다. 미술관 측은 "그의 창작의 토대가 되는 물의 기억이 추상미술과 초현실주의로 수렴되는 과정을 집중 조명한다"며 "어린 시절 맹산 강변과 제주 바다에서의 수영 경험이 훗날 물방울 회화로 이어지는 예술적 원천이 됐음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전시에서는 아카이브 자료를 활용한 AI 영상을 통해 김창열의 제주 시기를 체험할 수 있으며, 지난해 김은자 여사가 기증한 뉴욕 시기 작품 3점도 처음 공개된다. 전시는 내년 3월 2일까지 미술관 제2·3전시실에서 이어진다.
전시와 연계한 특별강좌도 마련된다. 제주문학 연구가이자 문학평론가인 김동윤 제주대학교 교수가 '김창열 작가의 제주 시기와 예술활동'을 주제로 이달 19일 오후 4~5시 강연을 연다.
한편 평안남도 출신인 김 화백은 한국전쟁 당시 제주에 머문 인연으로 2013년 제주도에 60여 년간 그려온 시대별 대표작 220점을 기증했다. 이를 계기로 제주도는 2016년 9월 제주시 한경면 저지문화예술인마을에 김창열미술관을 개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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