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아득하게 먼 옛날 사람들이 여기에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 이름을 정하고자 했을 때, 미래를 내다보는 놀라운 예지력을 가진 분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섬머리라는 의미의 도두(道頭)라고 했을까?
1979년 공항확장공사로 많은 부분이 사라진 '몰래물'을 생각하면 섬 제주의 관문이 들어설 곳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으리라는 즐거운 신비감에 탐닉하게 된다. 도두1동, 효동, 사수마을, 신성마을, 다호마을 이렇게 다섯 마을이 모여서 도두동을 이루고 있다. 현대화된 도시 기능에 꼭 필요한 하수처리장과 위생처리장이 들어서 있고 오일장과 공항이 있는 참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닷가로 머리를 내민 도두봉에 올라서 동쪽을 바라보면 공항활주로가 지닌 탁 트인 땅과 바다 사이로 난 해안도로가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남쪽으로 보이는 한라산은 어딘가 모르게 자애로운 이미지다.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이호해수욕장 방향으로 새롭게 번창하는 도두동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도두항에는 요트들과 관광객들이 북적거려서 외국의 어느 미항을 보는 듯하다.

김기남 주민자치위원장.
1608년엔 27개 마을을 거느린 중면(中面)이라고 하는 옛 제주시 지역에 속해 있었다. 용천수 '오래물'에서 솟아나는 방대한 수량으로 볼 때, 훨씬 전인 1416년 대촌현으로 불리던 시절 이전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도두동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구전 내용이 있다. 지금은 매립된 도두동 바닷가에 '만리성'이라고 하는 큰 방파제가 있었는데, 태풍이나 겨울 파도에 유실되면 인근 마을 사람들까지 와서 복구 작업에 동참했다고 한다. 가뭄이 심하게 들어서 그 마을에 샘물이 말라버리면 마차에 물허벅들을 잔뜩 싣고 와서 물을 떠가곤 했으며 이웃마을 사람들이 평소에 베풀었던 좋은 물인심 덕분에 마을과 마을 사이 수눌음문화가 펼쳐질 수 있었다고 한다. 마을 어르신들에게서 듣게 되는 옛 도두리 사람들의 특징은 '남자들 중에 강골이 많았다', '단합심이 좋았다', '경노효친의 으뜸이었다' 등으로 요약된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마인드가 궁금해 김기남 주민자치위원장에게 도두동이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을 물었더니 파격적인 대답이 나왔다. "협상을 전제로 한 포용력입니다." 그 배경에 깔린 마을공동체의 극복의지가 함축적으로 들어있었다. 님비현상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시설들이 들어오는 과정에서 생겨난 마을주민 갈등과 피해의식을 해소하고자 성숙한 자치역량을 발휘해 협상에 나섰던 치열한 노력들이 오늘의 발전적 모습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지나온 시절, 마을공동체엔 탁월한 협상가들이 많았기에 그 결과 진취적인 방향으로 성과를 낼 수 있었다는 것.
도두동의 미래는 밝다. 부정적인 요인으로 바라볼 수도 있는 것에도 긍정적인 협상력을 발휘하는 힘을 보여줬기에 어떤 난관이 닥치더라도 극복할 수 있는 저력이 뿌리내려 있다. 매립지에 들어선 상업시설들은 공항과 항만이라고 하는 주변 여건에서 관광시장의 경제성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거주민과 유동인구에 따른 도두동이 일터인 직장인들까지 도두동의 하루는 바쁘다. 이는 시장성이 확인된 도두동의 경제 가치다. 공항과 항만은 하늘길과 바닷길을 의미한다. 하늘과 바다가 도두에서 만나니 섬머리가 될 수밖에 없다.
지난날 반농반어촌의 모습에서 급속도로 상업중심 지역의 면모로 탈바꿈되는 과정에서 도두동이 보유하고 있는 특색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거기에는 지리적 위치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러한 강점과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책적·행정적 뒷받침이 있다면 도두동은 오일장이라고 하는 전통적 상업공간과 함께 지역 자체가 관광자원이다. 도두동 주민들은 제주시가 성장 발전하는 과정에서 악취와 소음이라는 고통을 묵묵하게 감내해왔다. 단순한 보상 차원이 아니라 더 큰 비전을 통해 괄목상대한 차별적 혜택이 있어야 한다. 차별화된 실천전략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시각예술가>
아름다운 선택<연필소묘 79㎝×35㎝>
아스팔트길 옆에 집으로 향하는 좁은 폭의 경사길. 궁금했다. 계단을 만들고 대문도 멋있게 달면 위세 등등 할 것인데? 어찌하여 돌아서 가는 수고스러움을 일상으로 만들었나. 지난 세월, 도두동에 갈 때면 이 돌담으로 형성된 입구에서 깊은 감동을 받곤 했었다. 어떤 고귀한 정신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그렸다. 필자의 상상력으로 간주하기에는 있는 그대로가 너무도 구체적이다. 경사가 아주 완만해 지팡이를 짚은 노인도 걸어 올라가기 쉬운 길이다. 수도가 없을 때에는 물허벅을 진 아주머니가 올라가기에 그리 힘겹지 않은 길이다. 이곳에서 어떤 소박한 성스러움까지 느끼게 되는 이유로 돌담을 쌓듯이 정성을 다해 그린 것은 아직도 꺼지지 않은 섬 제주의 정신적인 등댓불을 바라보고 있기에 그렇다. 저 아름다운 오르막이 가진 의미를 세상에 알리고 싶은 욕구도 작용했다.
도두리라 불리던 예로부터 주변마을 사람들의 칭송을 받은 것은 '효행의 으뜸'이었다고 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길이라 여기며 그린 것이다. 효율성에 입각한 물질만능주의 시대라고 이 시대를 폄훼하는 삼인칭 관찰자들에게 아직도 남아서 그 쓰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 아름다운 길을 보여주고 싶다. 연필소묘가 지닌 질감을 통하여 돌담의 소박함을 도드라지게 할 수 있어서 다행스런 보람이다. 어떤 작위적인 상징물보다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있는 그대로의 '마음가짐'이야말로 도두동의 진정한 정신유산이다. 집주인이 허락한다면 문화재로 후세에 전하고 싶은.
용천수가 바다와 만나는 순간<수채화 79㎝×35㎝>
저 모습 또한 엄밀하게 폭포다. 높이가 1m 정도지만 그래도 정방폭포처럼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가 도두동에 있다. 냇물이 흘러와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아니라 땅 속으로 내려와 도두동 오래물에서 솟아난다. 그 용천수가 여러 경로를 거치고 복개된 면적 밑을 지나서 도두항과 만나는 상황. 수량이 거대한 폭포에서 느낄 수 있는 정도. 과연 예로부터 풍부한 물로 유명한 지역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장면이라 그렸다. 북쪽을 향하고 있기에 저녁 무렵이 아니면 태양광선을 받아 흰 물색을 표현 할 수 없어서 적정한 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과정이 이 풍경을 얻게 되는 과정이다. 물이 곧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도두동. 물과 역사의 공통점을 이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떠올렸다. 흐른다는 것. 한라산 어딘가에서 땅속으로 스며들어 오랜 시간을 밑으로 밑으로 흘러와 오래물에서 솟아나더니 다시 바다로.
땅 위에 있는 모든 물은 바다로 향한다고 하였거니와 너무나도 당연한 세상의 이치를 한눈에 목격할 수 있는 곳이 여기다. 소박한 바람이 있다면 하천 토목의 일부분으로 저 소중한 가치를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 물이 가지는 의미를 그리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것은 어떤 안타까움 때문이리라. 좀 더 멋있게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장면을 연출할 수는 없는 것일까? 막연한 애착이 생겨나게 된다.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의 양이 뒷받침되는 풍성한 발상의 에너지가 있으니. 섬머리 얼굴엔 저렇게 하얀 미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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