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 하늘을 훨훨 나는 솔개가 아름답고 / 꾸불텅꾸불텅 땅을 기는 굼벵이가 아름답다 / (중략) / 붉은 노을 동무해 지는 해가 아름답다 / 아직 살아 있어, 오직 살아 있어 아름답다 / 머지않아 가마득히 사라질 것이어서 더 아름답다 / 살아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살아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중)
한국 대표 시인 신경림(1935~2024). 지난해 작고한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은 이 시의 제목처럼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였다. 도종환 시인은 시 해설에서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그 존재 자체로 아름답다고 보는 것이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유한한 존재라서 아름답다고 전한다"며 "유한하다는 것을 슬퍼하지 말고 유한한 것 자체를 받아들이고 긍정하며 수용하는 시인이 생의 마지막에 보여준 자세가 남아 있는 우리들에게 주는 마지막 말이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이 문구는 고(故) 신경림 시인의 1주기를 맞아 나온 유고 시집의 제목으로 이어진다. 이번 시집은 그가 작고 전 마지막으로 펴낸 '사진관집 이층' 이후 11년 만에 나온 신작이다. 잡지·신문 등에 소개된 일부 시를 제외하고는 생전 발표하지 않은 그의 유작들이다. 시인의 아들이 아버지의 원고를 정리했고 도종환 시인과 출판사 창비가 이를 분류해 엮어냈다. 삶과 죽음, 사람과 자연 등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특유의 포근한 언어로 풀어낸 60편의 시가 담겼다.
1956년 등단 이후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결같이 세상에서 소외된 이들의 애환을 어루만지며 노래해 온 그는 한국 문단의 대표적인 '민중 시인'으로 손꼽힌다. 농민들의 한과 고뇌를 담은 첫 시집 '농무', 서민의 삶의 애환과 사랑을 담은 '가난한 사랑 노래' 등 수많은 시를 남겼고, 암으로 투병하다 지난해 5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이번 시집에서도 '해질녁', '별을 찾아서', '월야', '살아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등 가려진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지켜온 그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시들이 담겼다. 또 '고추잠자리', '다시 길로' 등 고단한 삶 속에서도 긍정하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시들도 실렸다.
제주를 다룬 시 '제주, 이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꿈이여'도 실렸다. "어떤 거센 비바람도 이겨내는 / 잠녀들의 물질과/ (중략) / 어떤 고됨도 아픔도 이겨내는 / 어멍들의 밭갈이와 / 하르방들의 피와 땀이 온통 하나가 되어, // 마침내 이 섬은 이 나라에서 / 가장 깊은 뿌리가 되었으니, / 가장 아름다운 꿈이 되었으니."
한편 이번 유고 시집과 함께 시인의 첫 시집이자 시집 시리즈 창비시선 1호인 '농무' 특별한정판도 펴냈다. 창비는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가 시인이 남기고 간 불꽃이라면 '농무'는 그가 평생 추구해 온 시의 뿌리"라고 했다. 창비.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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