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두 질문 속 오래고 깊은 사랑에 대한 기록들

[이 책] 두 질문 속 오래고 깊은 사랑에 대한 기록들
한강의 『빛과 실』
  • 입력 : 2025. 05.09(금) 02:30
  • 박소정 기자 cosorong@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한라일보] "생명은 살고자 한다. 생명은 따뜻하다. // 죽는다는 건 차가워지는 것. 얼굴에 쌓인 눈이 녹지 않는 것. // 죽인다는 것은 차갑게 만드는 것. // 역사 속에서의 인간과 우주 속에서의 인간. // 바람과 해류. 전 세계를 잇는 물과 바람의 순환.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다, 부디."

작가 한강은 제주4·3을 소재로 한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는 동안 사용했던 몇 권의 공책들에 이런 메모를 했다고 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인 '빛과 실'에는 '소년이 온다' 이후 7년 만에 나온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게 된 작가의 이야기가 담겼다. 2017년 12월부터 2년여 동안 제주에 월세방을 얻어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한 작가는 "바람과 빛과 눈비가 매 순간 강력한 제주의 날씨를 느끼며 숲과 바닷가와 마을 길을 걷는 동안 소설의 윤곽이 차츰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며 "'소년이 온다'를 쓸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학살 생존자들의 증언들을 읽고 자료를 공부하며 언어로 치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잔혹한 세부들을 응시하며 최대한 절제해 써갔다"고 회고했다.

한강이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펴낸 첫 신간 '빛과 실'에는 산문과 시 등 12편의 글이 실렸다. 이 중 3편은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과 관련된 글이다.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인 '빛과 실', 수상소감 '가장 어두운 밤에도', 스톡홀름 노벨박물관에 찻잔을 기증하며 남긴 메시지 '작은 찻잔'이다. 여기에 기존 문예지에 발표된 5편의 시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펴낸 직후인 2022년 쓴 산문 '출간 후에'가 실렸다.

더불어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북향 정원', '정원 일기', '더 살아낸 뒤' 등 3편의 산문도 담겼다. '북향 정원'은 네 평짜리 북향 정원이 딸린 집에서 정원을 가꾸며 겪은 일을 다루고, '정원 일기'는 일기 형식으로 변화하는 식물들의 모습을 기록한다. 산문 중간중간 정원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실었다. '더 살아낸 뒤'는 그의 삶에 글쓰기가 어떤 의미인지 표현한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 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 사랑이란 무얼까? /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 아름다운 금실이지."

책의 맨 마지막 장에는 작가가 유년시절에 쓴 시를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이 담겼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라는 두 질문 사이의 긴장과 내적 투쟁이 글쓰기를 밀고 온 동력이었다고 믿어 온 작가는 여덟 살에 쓴 이 시를 언급하며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라고 자문한다. 문학과지성사. 1만5000원. 박소정기자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292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