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과 그 치유의 이야기, 전 세계와 나누고 싶다"

"제주4·3과 그 치유의 이야기, 전 세계와 나누고 싶다"
한국계 미국인 영화감독 그랜트현·치유가 김희선 씨
공통 관심 '무속'으로 낯선 제주에서 같은 목표 향해
지난 3월말 다시 제주 찾아 '4·3 다큐멘터리' 스케치
"미국인, 한국전쟁도 잘 몰라… 4·3에 책임감 가져야"
  • 입력 : 2024. 04.25(목) 11:23  수정 : 2024. 04. 29(월) 08:53
  • 김지은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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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제주시 조천읍 와산리 본향당 앞에서 만난 영화감독 그랜트현 씨와 심리상담사 김희선 씨. 미국에 사는 두 사람은 '무속'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만나 '4·3 다큐멘터리 제작'이라는 같은 목표를 위해 다시 제주를 찾았다.

[한라일보] 나이도 하는 일도 달랐던 두 사람이 낯선 제주에서 마주했다. 첫 만남의 시작은 '무속'이라는 공통 관심사였지만, 이들을 다시 제주로 부른 것은 '제주4·3'이었다.

올해 3월 말 또다시 제주를 찾은 이들은 하나의 목표를 그리고 있다. 바로 '4·3 다큐멘터리' 제작이다. 미국인이자 한국계 4세인 영화감독 그랜트현(33) 씨와 미국에서 심리상담사(치유사)로 일하는 김희선(56) 씨의 이야기다.

|제주서 '트라우마 치유'를 고민하다

먼저 제주에 왔던 건 희선 씨였다. 1997년 한국에서 미국으로 터전을 옮겼던 그에게 심리학을 전공해 '트라우마 치유사'로 일하게 되면서 일종의 계기가 찾아왔다. 뉴욕에서 많은 환자를 만나며 희선 씨가 느낀 것은 트라우마의 끝 모를 고통이었다.

"자기 세대의 트라우마뿐만 아니라 그 윗세대의 트라우마가 가족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봤어요. 예를 들어 유대인 계열의 환자 중에는 자신은 전혀 그런 일을 겪지 않았는데 트라우마 증상이 있는 거죠. 알고 보면 홀로코스트(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 생존자의 2세, 3세 후손들인 거예요. 트라우마가 세대를 넘어서도 전이된다는 점에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자연스레 희선 씨는 또 다른 '치유'에 눈을 돌렸다. "서양에서의 개인 위주의 트라우마 치유 기법"에 한계가 느껴졌다. 트라우마는 한 개인을 넘어 가족, 공동체적인 치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치유사의 원형이 어디에 있을까'라고 질문하며 찾은 두 번째 행선지가 제주였다.

2019년 처음 찾은 제주에선 4·3이라는 '트라우마'와도 맞닥뜨렸다. 한국에서 태어나 30년 가까이 살았던 희선 씨이지만 난생처음 듣는 일이었다. 희선 씨는 그때 "치유사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제주는 평화의 섬이고 화해, 상생을 말하지만 아직은 이르지 않나 싶었습니다. 지금도 더 많은 치유가 필요로 하는 희생자와 그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4·3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었던 시기에 제주 무속이 치유의 힘, 공동체의 힘이 됐다는 이야기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연구를 하게 된 좋은 기회이기도 했고요."

김희선 씨가 '제주4·3 트라우마와 무속을 통한 치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설명하고 있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간 희선 씨는 2021년 다시 제주에 왔다. 본격적으로 '4·3 트라우마와 무속을 통한 치유'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서다. 그의 박사논문 주제이기도 했던 이 연구는 풀브라이트 장학금(미국 국무부 장학금)을 지원받았다. 희선 씨는 "연구 지원서에 제주4·3을 얘기하면서 미군정에 대한 책임론 등을 썼던 터라 사실 (떨어질까) 걱정했다"면서 "그런데 연구를 지원받게 됐다. 이 연구를 서포트해 준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전보다 더 열려 있고, 이런 이야기를 할 시기가 됐다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독립운동가 후손이 바라본 4·3

바로 다음 해인 2022년, 연구차 제주에 머물던 희선 씨를 찾아온 이가 있었다. 바로 그랜트 씨였다. 비슷한 시기에, 똑같이 무속을 주제로 연구하겠다는 두 사람을 풀브라이트 재단이 연결해 준 것이다. 영화감독인 그랜트 씨는 한국 무속을 주제로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사전 연구를 계획하고 있었다.

할리우드 유명 감독인 게리 로스를 '멘토'라고 가리키는 그랜트 씨는 그의 작품 제작을 함께한 이력이 있다. 미국 남북 전쟁을 다룬 영화를 만들 당시 "게리 로스 감독이 역사를 어떻게 다루는지, 자료를 얼마나 진지하게 조사하는지에 영감을 받았다"고 그랜트 씨가 말했다. 미국사를 전공했던 그는 2016년부터 영화 일을 하게 되면서, 대학원에 들어가 영화 연출을 전공하기도 했다.

희선 씨와 그랜트 씨는 제주에서의 첫 만남 이후에도 계속 인연을 이어갔다. 그러다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보자는 데에 뜻이 모였다. 처음 떠올린 주제는 공통 관심사인 한국 무속이었지만, 제주4·3과 제주의 무속을 다뤄보자는 계획으로 구체화됐다. 지난해 봄쯤이었다.

마침내 지난달 29일, 두 사람은 또다시 제주에 다다랐다. 5월 말까지 제주에 머물 예정이라는 이들은 도내 곳곳을 누비며 스케치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제작 전 사전 준비 단계이다. 그랜트 씨는 "운이 좋게도 심방('무당'을 뜻하는 제주어)을 많이 만났고, 해녀들이 작업하는 것도 담을 수 있었다"면서 "제주4·3의 1세대, 2세대 생존자의 증언을 들으며 그들의 기억에 당시 사건이 얼마나 강하게 남아 있는지 알게 됐다. 이번에 머무는 동안 최대한 많은 생존자와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그랜트 씨에게 제주4·3은 어떤 '관계'를 느끼게 한다. 한국계 4세인 그의 가족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그의 증조할아버지의 이름은 현순. 1919년 3·1만세운동은 물론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그랜트 씨에게 제주4·3은 자신의 가족사와 맞물려 어떤 '관계'를 느끼게 한다.

그랜트 씨는 제주4·3의 도화선이라 불리는 '3·1 사건(1947년 3월 1일)'을 언급하며 "(제주4·3은) 3·1운동 이후에 일어난 일이지만 두 사건이 서로 연결되면서 한(恨)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들 사건을 알아야만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아픔,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한국계 미국인인 저에게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고요. 미국인들은 한국전쟁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한국전쟁을 알기 위해서는 4·3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고, 그 이야기를 전 세계 관객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4·3 세대간 트라우마 조명… "1~2년 내 작품 완성"

그랜트 씨의 이 말은 앞으로 만들 다큐멘터리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4·3에 대해 알리는 것에서 더 나아가 4·3의 세대 간 트라우마를 조명할 예정이다. 희선 씨는 "(이번에 미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한번 추가 촬영을 위해 제주를 찾게 될 것 같다"며 "아마 1~2년 뒤에는 작품이 완성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아직은 제작 초기 단계이지만 그랜트 씨는 이번 작업에 강한 바람을 싣는다. 그는 "미국인들, 서양인들이 영화를 보고 연결감을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일종의 책임감을 갖는다면 영화가 성공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며 "4·3에 미국이 어떻게 연루돼 있는지 미국인들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희선 씨는 이번 다큐멘터리 작업을 통해 "제주 사람들이, 공동체가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데 큰 힘이 됐던 제주 무속을 소개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코로나 (팬데믹) 때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애도 없이 죽었습니다.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여러 전쟁 상황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어떻게 공동체적으로 집단적으로 같이, 서로 치유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제주의 무속, 제주의 문화가 외국인들에게도 귀감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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