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이야기-물의도시, 서귀포] (1)프롤로그

[제주의 물이야기-물의도시, 서귀포] (1)프롤로그
물길 품은 도심 ‘물의 도시’, 서귀포의 또다른 브랜드
  • 입력 : 2022. 04.22(금) 00:00
  • 박소정 기자 cosorong@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원도심 동서로 정방폭포·천지연 품어
400여년 전엔 인공수로 만들어 활용
도심 외곽 효돈천·강정천 등 즐비
국내외 도시들 앞다퉈 물프로젝트
도심 물길따라 정체성 회복 차별화
서귀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몇해 전 중국 태항산 트레킹을 다녀오던 길에 잠시 머물렀던 도시 제남시를 기억한다. 제남은 산동성의 성도. 드넓은 호수와 72개가 넘는 샘이 있어 예부터 물의 도시, 샘의 도시라 불리는 명소다. 청나라 때 최성기를 이룩한 건륭황제가 반한 곳이라며 '천하제일천(天下第一泉)'이라 치켜세우는 샘도 있다. 샘 주변에는 능수버들이 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실개천 같은 수로는 도시 곳곳을 감싸돈다. 샘물을 테마로 한 이색정원도 널려 있다.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청량제와도 같다.

제남시 뿐이겠는가. 세계 곳곳에는 자칭 타칭 물의 도시가 넘쳐 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탈리아 북동부 베네치아는 물론 가까이는 일본 오사카도 물의 도시로 홍보한다. 근래 들어 부산, 대구, 포천, 익산 등 국내 여러 도시들도 물의 도시 프로젝트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이 도시들은 물길을 따라 지역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며, 물산업으로까지 확장한다.

오래 전부터 제주의 '물 이야기'와 '물의 도시'를 다루고 싶었다. 현역 기자시절에도 취재 대상에 늘 물이 존재했던 것 같다. 비전공자의 물 이야기인 셈이다. 현장을 찾아다녔고 자료 조사와 많은 분들로부터 물 이야기를 들었다.

서귀포 도심과 천지연폭포로 이어지는 연외천 하류. 강경민 사진작가

20여년 전 제주의 하천과 계곡을 탐사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라산 대탐사 여정의 시작이었다. 전문가, 선후배들과 함께 5년 동안 16개 하천의 시작과 끝을 두발로 답사했다. 예부터 물 좋기로 이름난 산지천, 천지연, 정방폭포, 쇠소깍, 천제연, 강정의 진수를 이때 조금이나마 느꼈다. 과정은 고단했지만 하천 탐사가 준 보람이었다.

고대 인류 문명의 시원은 물과 함께 했다. 모든 인류의 시초에는 물이 있었다. 20세기가 석유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물의 시대다. 세계 도처에서 '물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물의 미래와 물의 세계사를 다룬 책이 홍수처럼 넘쳐난다. 미래 인류 문명과 역사를 뒤바꿀 최후의 자원은 물이다. 제주인에게도 물은 삶의 원천이자 미래가 걸려 있는 최후의 보루다.

물 이야기가 인류의 미래를 얘기하거나 걱정할만큼 거창한 것은 아니다. 물 이야기는 '물의 도시, 서귀포'로 시작할 것이다. 조선시대 정방폭포 상류의 물을 배수로로 연결해 끌어다 쓴 서귀진성의 교훈을 시작으로 동홍천(정방천) 상류 산지물, 지장샘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천지연폭포를 낳은 솜반내와 하논분화구의 연외천, 쇠소깍 하구를 간직한 효돈천, 물좋기로 이름난 '일강정' 강정마을, 중문관광단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중문천과 천제연, 예래동 대왕수천과 논짓물에 이르기까지 서귀포의 물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일본의 명품 마을 유후인, 생수의 고향 하리에, 용천수 관리의 모범 시마바라시, 중국 산동성의 성도(省都)이자 물의 도시 제남시의 '천하제일천(天下第一泉)' 사례를 들 것이다. 물의 도시를 꿈꾸고 있는 국내 여러 도시들도 살펴볼 것이다. 그런 다음 다시 물의 도시 서귀포 이야기를 꺼낼 생각이다.

제주연구원 산하 제주지하수연구센터의 박원배 박사는 든든한 동료다. 제주 용천수와 수자원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평가 받는 연구자다. 그와 함께 사단법인 제주환경문화원, 서귀포 동네책방 인터뷰와 함께 물토크와 '수수한 물프로그램'을 몇 년째 진행중이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즈음에 서귀포의 깨끗하고 시원한 물 이야기를 한라일보 독자들과 공유했으면 한다.

박 박사는 최근 동료 연구자들과 제주의 하천을 탐사하며 제주 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수자원,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스토리텔링화하는데 힘쓰고 있다. 서귀포 용천수 구술채록(2018), 물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동화책 '첨벙첨벙 물을 지켜라'(2019), 물에 대한 경험과 기억을 추적해간 '서귀포 물 이야기' 1, 2(2018, 2019), 이야기가 흐르는 조천읍 조천리 용천수 이야기(2020), 애월읍 수산, 장전, 유수암리의 물메 물길따라 흐르는 79가지 이야기(2020), 권세혁 화백의 그림책 '세미와 산물이'(2021) 등. 제주지하수연구센터와 박원배 센터장은 어르신들의 구술채록 작업과 어린이까지 배려한 동화책을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제주의 물문화를 그려가고 있다.

동홍천(정방천) 정방폭포 상류 정모시 일대. 강경민 사진작가

서귀포 물 이야기 1편은 서귀포시내를 동서로 관통하는 동홍천(정방천)과 연외천에 대한 이야기다. 그 시절 우리는 어떻게 물을 사용하였을까. 답사에 그치지 않고 현지 주민들의 구술을 채록한 것이 특징적이다. 삽화도 실려 이해를 돕는다. 책 뒷 부분에는 구술자 35인의 이름이 빼곡이 적혀 있다. 서귀포 물 이야기 2편에는 강정, 법환, 서호, 월평지역 사람들의 물에 대한 경험과 기억을 담아냈다.

어르신들이 기억하고 있는 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녹취하고 기록했다. 이렇게 채록한 기본 자료를 토대로 물을 이용한 경제활동, 때로는 물 때문에 힘들었지만 물이 주는 즐거움에 얽힌 일화, 그리고 물을 잘 쓰기 위한 지혜로운 제주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내용들을 수록했다.

박원배 박사는 동네책방 물토크에서 제주의 마을을 만든 용천수와 제주 사람들은 물을 어떻게 이용했을까, 제주 여성과 물, 공유경제로서의 물, 수도의 보급 그리고 잊혀져가는 물, 기억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한 구술 채록의 중요성에 대해 들려줬다.

"물 이용 역사 문화에 대한 기록은 기록으로 그치지 않고, 제주 물 이용에 대한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어 이야기들로 기록되고 새롭고 긍정적인 물문화로 확대되기를 희망합니다."(박원배 박사)

강시영 제주환경문화원장(전문가)

한라일보에 연재할 '물의 도시, 서귀포' 기획을 위해 제주도사진기자회장을 지낸 강경민 사진작가가 동행한다. 박원배 박사 외에도 고정군 박사(식물), 김완병 박사(조류)도 동홍천과 연외천 답사에 참여하며 도움을 줬다. 두 하천은 각각 정방폭포와 천지연폭포로 이어진다. 연중 물이 흐르는 두 하천은 서귀포 원도심을 품고 있다. 물의 도시 서귀포가 가능한 이유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고재원 원장은 400여년 전 정방폭포 상류에서 천지연 하구 인근 서귀진성까지 인공수로를 만들어 사용해 왔던 선인들의 지혜를 들려준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이 수행한 도지정기념물 제55호 서귀진지 유적 문화재 발굴조사를 통해서다. 이 때 1914년에 제작된 구 서귀읍내의 지적도가 발굴됐다. 1590년 현재 위치에 서귀진 축성 때 동홍(정방)천 하류, 즉 정방폭포 원류의 물줄기를 서귀진까지 수로로 연결한 형태가 뚜렷이 남아 있는 증거다. 서귀포 원도심 굽이굽이 구석구석 맑은 물이 흐르는 '물의 도시' 서귀포를 웅변하는 생생한 사료다. 이제 물의 도시, 서귀포 이야기를 할 것이다.

강시영 제주환경문화원장(전문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4566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