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114)제주시 이호동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114)제주시 이호동
소나무숲이 어우러진 해변… 자연 그대로를 간직하다
  • 입력 : 2016. 12.13(화)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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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 옥상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풍경(위)과 현사마을 포구에서 바라본 이호해수욕장 모습(아래).

59년 전 주민들 심은 소나무 남아 지금의 풍광 만들어
이호테우축제·제주해양관광레저센터 활용 등 당면과제
"포구 제자리로 돌려놓아 이호해변 옛모습 다시 찾을 것"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소나무 숲이 해수욕장 뒤를 병풍처럼 둘러친 풍광이다. 제주시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이토록 자연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해수욕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이호테우해변을 대표 이미지로 하고 있는 이호동은 이호1동과 이호2동이라는 두 개의 법정동을 합해서 이뤄져 있으며 8개의 통 37개 반으로 구성돼 있다. 이호1동은 이호주민센터를 중심으로 4개(동마을, 서마을, 중앙마을, 현사마을)의 자연마을로 이뤄져 있으며 이호2동은 신일주도로 연변과 그 남쪽 일반주거지역인 대동마을, 오도롱을 합친 마을이다.

이호테우해변 원담과 바다에 비친 햇살이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탐라순력도(1703)에 나타난 마을 표기가 독특하다. 해안과 접한 이호1동 근방은 가사포(可沙浦 가몰개), 이호2동 주변을 오등롱리(吾等弄里·오도롱)라고 표시했다. 1709년 탐라지도(耽羅地圖)와 19세기 초반 해동지도(海東地圖) 중 제주삼현도(濟州三縣圖) 등에는 오등롱리(吾等弄里·오도롱마을)와 가사촌(可沙村·가몰개마을), 가사포(可沙浦·가몰개), 백포(白浦·백개)로 표기했다. 지금의 마을 명칭인 이호동(梨湖洞)으로 바뀐 것은 일제강점기인 1913년이다. '백개'와 '감은모살' 일대와 '오도롱' 일대를 합하여 이호동으로 편제했다.

이호테우해변이라는 명칭을 증명이라도 하듯 전시된 테우.

박상주(83) 노인회장으로부터 모래해안을 가진 마을의 풍토와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해수욕장 남쪽으로 숲을 이룬 지역을 '폐동이왓'이라고 하는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저기에 원래 중앙동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어느 해인가 엄청난 바람이 불어서 모래가 마을을 덮어버렸기 때문에 마을이 있던 자리가 모래언덕이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소나무 숲이 없던 우리 어린 시절만 해도 동풍이 심하게 불면 현사동 지역으로 모래가 몰려가고, 서풍이 불면 백개 쪽으로 모래가 밀려와서 고생이 많았습니다. 모래바람 때문에 밥 먹을 때 모래 씹는 것은 늘 있는 일이었지요. 그런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살다가 1957년 3월부터 다음해 10월까지 4년생 소나무 5만 그루를 심어서 지금 보이는 것이 살아남은 것들입니다. 이호동민 전체가 출역하여 이룩한 역사적인 일이었지요. 모래언덕이라 구덩이에 흙을 날라다 넣고 심었고, 활착이 되는 3년 가까이 물을 길어다 주며 정성을 다한 결과 모래로 인한 피해를 막고 자연풍광이 일품인 해수욕장을 보유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자라는 세대들은 원래 있었던 숲으로 알겠지만 모래바람 날리던 해변 언덕을 기억하는 어르신들은 마을공동체 의식의 자랑스런 상징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김동훈 주민자치위원장

김동훈(62) 주민자치위원장이 밝히는 당면 과제는 이렇다. "생활환경의 문제가 극복되지 않으면 이호동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살려나가기 힘든 구조입니다. 우선은 항공기 소음 문제가 심각합니다. 피해보상과 같은 직접적인 해소방법에서부터 마을주민들의 일상생활에 불편이 없게 시설지원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음은 도두에 있는 하수종말처리장 냄새가 이호동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면 마을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생업환경을 보면 도시근교 농업과 수산업에 종사하는 주민이 많습니다. 이러한 위치적 강점을 살려나갈 정책적 관심이 절실한 실정입니다. 마을공동체 차원에서 2004년부터 야심차게 준비해 제주의 독특한 해양문화축제로 도민과 관광객에게 사랑받고 있는 이호테우축제가 행정지원이 해마다 계속 줄어들어 중단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제주시 당국이나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맡아 주관해주면 좋겠습니다. 특히 주민자치 차원에서 이호테우해변에 위치한 제주해양관광레저센터 건물을 활용해 사업을 하고자 해도 행정 목적 이외에는 활용이 불가능하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듣고 있는 현실입니다." 지역주민의 공동체의식과 괴리된 행정목적이 무엇인지 따지면서 분개하는 주민들이 많았다. 김영택(62) 현사마을회장은 시급한 과제로 포구 이설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지금 현사마을에 있는 동개포구는 매해 모래가 퇴적돼서 준설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포구를 서쪽 원장내 부근으로 옮기게 되면 해수욕장도 시원하게 더 넓어지고 1927년 이전까지 있었던 역사적인 원장포(遠長浦)도 다시 찾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해양레저와 관련된 욕구 등을 충족하기 위해서 이호테우해변의 영역 확대는 필수적인 숙원사업이라 하겠습니다." 원장포가 유실되면서 동쪽으로 옮겨온 것이 지금의 포구다.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아 90년 전 이호해변의 옛 모습을 다시 찾아서 그 진가를 확인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이호1동 서마을의 팽나무 아래에서 만난 듬돌.

오덕순(57) 부녀회장에게 마을공동체를 위해 전권을 가지고 100억원을 집행하라면 어떤 사업을 하고 싶은 지 물었다. "대다수 부녀회원들이 사교육에 경제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시간적인 몰입을 해야 합니다. 규모 있게 마을문화센터를 지어서 일부분을 학생들이 공부 할 수 있도록 제공되었으면 합니다." 정주 여건이 도농복합 성격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엄마들의 고충을 토로하고 있었다. 고연종(48) 서마을회장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귀향 아파트를 지어서 분양해야지요. 외지에 나가서 살고 있는 이호동 사람들이 돌아와 함께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조상 대대로 이웃하여 살아온 후손들이, 어린시절 추억을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를 꿈꾸는 것. 시대변화에 대응하는 미래 이호동의 모습일 것이다. 이호테우해변 중간 이호천 하구에 사리 때가 되면 상류에서 솟아 흘러든 담수와 바닷물이 만나는 '대물깍'이 있다. 장어가 살고 있으며 숭어가 산란하는 곳이기도 하다. 산란기인 봄, 간만의 차이가 심한 날에 밀물 따라 이곳으로 들어와 알을 낳는다. 장마철이 되면 손가락만큼 자라게 되고 장맛비에 내가 터지면 바다로 나가게 된다. 그리고 다시 봄이 되면 산란을 위해 찾아드는 순환의 세월을 품고 있다. 낭만적인 해수욕장 풍경 속에 살아 숨 쉬는 대자연의 긴 호흡처럼 이호동은 잃지 않아야 할 것을 지키며 밝은 미래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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