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70)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70)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절경인 비양도와 옥빛 해변을 품은 풍경화 같은 마을
  • 입력 : 2015. 12.22(화)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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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협재해수욕장에 이는 파도는 바로 앞에서 자태를 뽐내는 비양도를 더욱 아름답게 한다(위). 관광산업 영향으로 빠르게 변모해가는 마을 전경(아래).

770여년전 설촌… 애향심 깊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사는곳
‘오름’과 ‘굴’ 등 볼거리가 탁월한 제주섬 서쪽 최고 관광지
협재해수욕장은 CNN이 ‘한국의 아름다운 절경’으로 꼽아
주민들 "주변관광시설과 연계된 야간관광 프로그램 절실"



마을 노래가 있었다. 광복 이전에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노래가사다. 가난한 농부의 자녀들이 야학당에 와서 함께 부르며 애향심을 키웠으리라. '조선반도 극남단 제주 협재리 / 경치 좋고 화려한 이곳이로다 / 동남에는 높고 높은 한라산이요 / 서북에는 넓고 넓은 맑은 바다라 / 북편에 우뚝 솟은 장한 비양도 / 용맹하다 북풍한설 막아서 있고 (중략) 재암굴 속 솟아나는 샛굴물은 수만인의 남녀노소 목욕통이요 / 명사중에 솟아나는 맑은 통물은 수백호의 좋은 인심 기려 마시네.' 마을공동체에 대한 자긍심 교육을 통해 애향의 가치관을 불어 넣어주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지금의 이기주의적 현실을 부끄럽게 하는 격세지감이다.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CNN이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절경 중에 협재해수욕장이 전국의 쟁쟁한 절경들과 함께 소개된 적이 있다. 비양도와 어우러진 옥빛 바다색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으니 당연하다. 상명리 지경인 느지리오름에서 바라보면 참으로 오묘하게 포근하다. 바다에 떠있는 비양도가 모든 시각적 모티브를 제공하는 마을. 섬에서 섬을 바라보는 즐거운 경험을 관광객들에게 제공하는 협재해수욕장은 매력 만점 해변이다.

제주관광의 역사속에서 도민 스스로 개척한 정신적 자산으로 평가되는 한림공원.

제주국제공항에서 일주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32㎞ 지점에 위치한다. 동쪽은 옹포리, 서쪽은 금능리, 남쪽은 상명리와 월림리가 이웃해 있다. 마을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면 관광자원 덩어리다. 재암천과 세심천,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는 소천굴과 한림공원 안에 있는 쌍용굴 등 지질학적 가치를 지닌 곳에서부터, 개척정신을 발휘해 황무지를 아름다운 관광자원으로 탈바꿈 시킨 한림공원까지 마을 전체를 돌아다니다보면 끌리는 곳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외지인들이 많이 들어와 관광숙박시설들을 지어 영업을 하고 있다. 투자 가치가 높다는 의미일게다. 장승일(75) 노인회장이 전하는 설촌의 역사는 77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挾才라는 마을 명칭은 인재들의 영향력이 두루 펼쳐진 마을이라는 유교적 이상을 담고 있다. "옛날에는 모래밭이 많았지요. 척박한 땅을 이겨내는 방법은 오직 하나였어요. 부지런!" 가장 존경받는 부자는 '부지런 부자'라는 제주인들의 정신적 요소를 가득 담고 있는 운명적인 마을이다.

느지리오름에서 북쪽으로 난 아름다운 내리막길.

협재해수욕장을 향해서 완만하게 흘러가는 땅의 흐름 위에 숲과 밭, 목초지들이 절묘한 농로들을 경계로 짜임을 형성하고 있다. 해안선을 따라서 조상들이 붙여 놓은 이름들이 정겹다. 서근케, 용다리개장, 큰고자오, 수루미알, 속바지, 가망탱이, 구덕천이, 정기리성창, 메치물, 고사리빌레 등등. 여기에 작고 소담하게 지명표지석이라도 놓여져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양도에서 바라보는 협재리는 협재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비양도보다 아름답다. 해안에 닿아 부서지는 파도들과 멀리 한라산에서 이어지는 오름들을 풍경화의 중간 지점에 넓게 펼쳐서 그려 넣을 수 있으니. 단순하게 해수욕장 모래에 국한 할 것이 아니라 해변 전체를 하나의 자원으로 바라보는 의식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고순철 이장

고순철(58) 이장이 밝히는 협재리의 당면 과제는 "마을회 차원에서 얻을 수 있는 소득의 중심에 협재해수욕장이 있습니다. 여름 한 철 반짝 특수를 빼고는 이렇다 할 경제적 보탬이 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사계절 관광자원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행정적 지원이 체계적으로 이뤄졌으면 합니다. 특히 야간관광자원화를 견인 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한 실정입니다." 주변에 수많은 관광숙박 시설이 들어선 현실에서 소박한 야시장을 겸비한 야간이벤트를 지속적으로 펼칠 수 있도록 한다면 마을공동체가 적극 나서서 농외소득 향상에 도움이 되겠다는 것이다. 협재리의 토지를 외지인들이 많은 부분 보유하고 있기에 조상 대대로 살아온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건 마련이 필수적이다. 관광자원을 많이 보유하였다는 자부심 이면에 깔린 주민들의 불만은 외지인들이 들어와서 돈을 더 많이 벌고 있다는 것이다. 마을 어르신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공동체 사업을 하고자 해도 땅이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농사를 지어도 인건비를 건질까 말까 한 현실에서 농민들이 가진 토지를 많이 팔아버린 결과다. 최근 몇 년 사이 한 해에 100명 이상의 이주민들이 들어와 살면서 인구는 증가하지만 마을주민들과 손잡고 마을회라는 범주 속에서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모습까지는 도달해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제주 속담에 '놈 싼 불에 바릇 잡는 사름'들은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이 마을을 가꾸어온 주민들은 소외감을 느낄 정도라고 하니 심각한 문제다. 지역주민들이 화려한 관광산업의 이면에서 그림자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정책적 실천 방향 마저도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협재리와 같은 제주의 보배는 빛을 잃어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자본가의 돈벌이에 활용되는 협재리의 풍광과 농업경관들을 바라보면서 활로를 찾고 있지만 쉽지가 않다고 한다.

마을회관 앞 잔디밭과 숲에서 주민들의 자긍심과 결의가 보인다.

매 해 겪는 다급한 현실은 주차문제와 도로여건이었다. 협재해수욕장 개장 시기에 벌어지는 차량들의 뒤엉킴을 익히 잘 알고 있으면서도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미리 내다보지 못했다면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마자 대책을 내놓을 수 있어야 협재리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시킬 것이 아니냐고 따지고 있었다. 단순하게 마을 이기주의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제주섬의 소중한 가치를 극대화 시키기 위한 노력의 범주에서 바라봐야 한다. 30년 뒤를 이야기 하고 있었다. 지금 협재리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지금 협재리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의 치열한 노력으로 이룩한 성과를 유산으로 물려받아서 당당하게 할아버지 세대가 불렀던 협재리 마을노래를 부를 수 있어야 한다. 협력 앞에 불가능은 없으니까.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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