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49)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1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49)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1리
사방이 평화롭고 혼백이 후손을 지켜주는 ‘선비마을’
  • 입력 : 2015. 07.21(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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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바다에서부터 오름들로 이어지는 풍광속에 펼쳐진 삼달풍력발전기(위). 노인회관 옥상에서 내려다 본 마을 전경(아래).

웃어른을 섬기는 등 ‘세가지’ 통달을 목표로 삼았던 곳
자연경관 뛰어나 주변엔 일출랜드 등 유명관광지 많아
최근 2년새 예술인 등 50가구 귀농… 주민과 상생 표본
마을전체 오픈갤러리로 만들겠다는것이 마을의 미래상



나지막한 본지오름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면 참으로 평화롭다. 멀리 바다와 삼색 깃발처럼 드러나는 자연의 상징 메시지가 있다. 활처럼 굽은 능선을 따라 촘촘하게 들어선 봉분들. 삼달리 공동묘지다. 세상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묘지가 또 어디 있을까? 엉뚱하게도 살아있는 필자가 죽은 자들을 부러워했다. 북서풍을 막아주는 지형 덕에 안온하고, 삶을 살았던 마을을 항시 바라보며 혼백들이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것 같은 기운이 감돈다. '저분들이 항시 후손들을 바라보고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삼달1리 사람들은 아닐까 흐뭇한 미소가 일었다. 마을공동체란 이렇게 세대와 세대가 이어지는 시간성을 보유한 존재이리라.

삼달1리는 바닷가와 인접한 삼달2리에서 북쪽 2㎞ 정도에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다. 북동쪽으로는 독자봉을 경계로 신산리와 접하고, 통오름을 경계로 난산리와 접하며, 남산봉을 경계로 성읍리와 접한다. 본지오름을 경계로 신풍리와 접하고 있는 오름들 사이에 펼쳐진 마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옛 지명 와겡이. 조선 초기부터 한자 표기로 와강(臥江)이라고 불렀다. 마을 어르신들에게 연유를 물었더니 처음 마을이 형성된 '더러물내(川)'의 형상을 따라서 지어진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렇게 부르다가 마을 이름이 삼달리로 바뀐 것은 정조 때 사헌부 장령 등의 벼슬을 지냈던 강성익 공이 양반이 사는 마을 이름으로 적당하지 않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바꿨다.

떠오르는 해처럼 눈부신 일출랜드 입구 능소화.

유교적 사고방식으로 조정에 높은 벼슬까지 지낸 양반이라 마을 이름에도 공동체 규약과 같은 훈육적 요소를 투입한 것으로 보인다. 삼달(三達)이라 함은 세 가지를 통달해야 하는 목표를 이르는 것. 셋을 연결하여 풀어내면 '규율이 없으면 조정이 무너지는 것과 같이 웃어른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 마을은 있을 수 없다. 세상에 대한 보은과 백성을 위함이 오직 덕에서 나옴이니라.' 대대로 선비마을의 명성을 이어온 것은 태어나 자라면서부터 마을공동체의 명칭을 통하여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자세를 교육 받았기 때문. 노인회관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이렇다. 남다른 교육열로 각계각층에 삼달리 출신 인사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마을 이름에서 오는 자긍심과 무관하지 않다는 설명.

자연자원이 풍부하다. 미와연못, 너부못, 용오리못, 수어못, 막굴, 문괴굴, 오미동산 등 경관적 가치를 증폭시킬 요소들이 많다. 관광자원으로 유명한 일출랜드와 김영갑갤러리는 올레3코스와 함께 삼달1리를 찾게 하는 중요한 포인트다. 특산물은 감귤과 무, 고사리를 꼽을 수 있다. 마을 공동체의 대표적인 자원은 20만평이 넘는 마을공동목장과 여기에 들어선 풍력단지, 마을창고갤러리와 마을유통센터가 있다. 자연친화적인 마을 분위기와 좋은 인심에 매료된 귀농인구가 최근 2년 사이에 50가구 정도가 들어와서 살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는 문학과 예술 등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서 마을 장기 비전으로 삼고 있는 '문화마을 삼달1리'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마을 면적 12.13㎢ 전체를 오픈갤러리로 만들겠다는 당당한 포부를 가진 마을이다. 단순하게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마을이라고 생각했다가 지역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크게 놀랐다는 사람들이 많다. 농사와 예술이 어떠한 지점에서 연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가장 품격 높은 관광객을 맞이하는 길이라 여기고 있었다. 농경을 토대로하는 마을공동체 붕괴를 막기 위해 관광객도 수준을 따지겠다는 자존심. 그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마을 삼달1리에 예술인들이 찾아가 살고 싶은 것은 당연한 귀결이리라.

강동훈 이장

강동훈(55) 이장이 밝히는 가장 중요한 마을 현안은 마을공동목장에 대한 활용 극대화 방안이었다.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삼달풍력단지 지역이 그 곳이다. "마을공동체정신의 발원지는 공동목장입니다. 후손으로서 부가가치 높은 마을 사업을 전개하여 조합원들에게 더 큰 이익을 돌려드릴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다양한 각도에서 위치적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했다.

30년 뒤 여성노인회장을 꿈꾸는 김미선(50) 부녀회장은 "청년회와 부녀회노인 인구가 60% 넘는 관계로 노년이 가장 아름다운 마을을 추구해야 합니다. 저희들 또한 노인이 될 것이니까요." 그냥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아니라 무밥과 같은 향토음식을 삼달1리의 먹거리 대표브랜드로 만들어서 일하는 노년을 준비하겠다는 것이었다. 김홍표(43) 새마을지도자의 생각은 상대적으로 젊고 활기찼다. "결국은 관광자원화 되는 마을에서 승부가 날 것입니다. 글로벌 감각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어떤 마을 사업을 하더라도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견문을 넓히고, 치밀하게 준비하는 작업이 마을공동체의 미래를 책임질 저희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너털웃음 속에 어떤 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김영갑갤러리 입구 간판조형물

역대 이장이기도 한 강한진(66) 개발위원장에게 30년 뒤 삼달1리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했다. "확신하거니와 우리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마을사업이 번창하고 성공하여 밖에 나가서 살고 있는 주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다시 돌아와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땅을 팔지 않고 있어야 합니다. 돌아와 살 곳이 없는 고향은 이미 고향이 아니니까 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동묘지라는 본지오름 남쪽 풍경.

오직 자식의 성공을 위하여 일생을 살았던 지금의 삼달1리 노인들이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모두 성공해서 떠나버린 삼달1리는 누구의 것일까. 조상 대대로 살아온 마을이 새로운 이주민들과 융합을 통하여 어떤 형태로 발전하게 될 것인지. 분명한 것을 보았다.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삼달1리의 야심찬 노력들을.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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