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38)제주시 애월읍 곽지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38)제주시 애월읍 곽지리
책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3형제 스토리텔링’을 담은곳
  • 입력 : 2015. 05.05(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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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오름 중턱에서 바라본 마을전경(위)과 곽지해수욕장에서 과오름까지 이어지는 풍광(아래).

사질토양의 장점을 살려 양채류 농업생산성 뛰어난 농촌마을
비밀스런 시간이 숨겨져 있는 타임캡슐… 900년전 형성 추정
곽지패총으로 문화재지정지구 선정되며 40여년간 개발 제한
마을주민들이 꿈꾸는 미래상 전천후 해수욕장 조성 큰 기대


풍수지리가 일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옛날, 곽지리 지역은 신선들이 앉아서 바둑 대국을 하는 형상이라 하였다. 이름 하여 선인기국형(仙人棋局形). 기름진 농경지가 바둑판처럼 보였을까. 그렇다면 밭들에 가득한 많은 바둑돌들이 가뭄을 이기는 무기가 된다. '밭 자갈이 오줌을 싼다'는 제주 선인들의 경험은 수분을 내포하고 있는 자갈이 가뭄을 만나면 곡식에게 미량이지만 수분을 제공하기 때문. 곽지 밭 한 마지기와 다른 마을 너 마지기를 바꾸지 않겠다는 교환 논리를 가지고 자부심을 구가해온 마을이다. 지금도 사질토양의 장점을 살려서 양채류를 중심으로 한 농업 생산성이 막강한 경제적 활로를 열고 있는 곳이다. 대대로 소출이 좋은 농경지와 바다자원을 가지고 선비들의 뒷바라지를 할 수 있었기에 선비마을의 명성을 유지 할 수 있었다. 책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는 곳. 마을의 모습은 바뀔 수 있지만 그 유전자는 사라지지 않아서 지금도 현직 선생님만 7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러한 정서를 보여주는 마을 상징 문필봉이 있다. 붓이 서있는 모양을 닮은 기암괴석이 바닷가도 아니고 밭들 사이에 서 있다. 참된 선비가 많이 성장하는 이유가 '문필봉의 정기가 도와서'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땅.

선비마을의 자긍심을 상징하는 문필봉.

신상우(65) 전 이장을 통하여 설촌의 단면을 듣는다. 곽지패총이 가진 의미를 빌레못 동굴 시기와 연동하여 생각한다면 이 섬이 연륙하였던 때부터 사람이 살았던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곳이다. 글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도자기 파편들을 쉽게 밟고 다니면서도 이를 느끼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곽지리는 비밀스런 시간을 숨기고 있는 타임캡슐이기도 하다. 선사유적을 통하여 곽지리의 원류를 설명하는 것보다 혈족적 성격의 역사성이 피부에 와 닿는다. 다양한 자료를 살펴보더라도 900년 전부터 이곳에는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 시절 곽지현의 소재지였다. 농수축, 물산이 풍부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명의 속국을 자처한 조선시대의 모습과 고려시대의 모습은 달랐으리라. 독자성을 기반으로 한 교역강국 탐라의 유습이 엄존했던 시기에 곽지현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과오름에 올라서.

박재덕 이장

인재가 많이 배출되고, 경제적으로 뒤떨어질 것이 없는 마을이 발전에 있어서 더딘 이유가 궁금하였다. 박재덕(50) 이장에게서 그 해답을 들었다. "곽지패총 때문입니다. 마을 중심에 위치한 관계로 문화재지정 지구가 되는 바람에 개발의 여지가 발 묶인 지 40년이 넘습니다. 곽지패총이 없었다면 곽지리는 엄청난 모습으로 성장해 있었을 것임에도…" 울분에 가까운 절규의 이면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핵심은 이렇다. 지역민의 눈물을 외면한 행정이 법적인 정당성만 강요한 결과다. 문화재 지역이므로 어쩔 수 없다는 강변을 감수하며 살아야 하는 운명. 지역주민들은 맞대응 하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 추구권의 사각지대로 내몰 권리가 어디에 있느냐?' 패총이 지닌 강제력이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이에 상응하는 조치가 있어야 했다.

재산권 행사의 피해를 줬다면 이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패총을 관광자원화 할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었어야 함에도 법타령으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곽지리 주민들의 피해 위에 놓인 문화재행정은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선사유적이 지니는 학술적 가치를 활용하거나 박물관을 만들어서 견학이나 체험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있다. 학술적으로 유명한 곽지패총의 모습은 잡초 우거진 평범한 밭에 불과하다. 진모살이라는 모래해변에서 선사시대 인류가 조개를 캐다 먹고 남은 것이 쌓이고 쌓여 이뤄진 곽지패총. 학교 살리기를 위하여 십시일반 돈을 모아 사업을 시행하려고 해도 표본조사, 시굴, 발굴의 단계를 거쳐야 가능하다. 표본조사와 시굴에 수 천 만원을 지역주민이 감당해야 하지만 발굴에는 수 억 원이 들어가니 자포자기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는 현실. 통탄의 땅이다. 주민 피해는 안중에도 없는 문화재 행정의 대표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마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른쪽부터 큰오름, 셋오름, 말젯오름 삼형제가 모여있는 과오름.

정진숙(55) 부녀회장이 꿈꾸는 미래는 해수욕장에 있었다. 전천후 해수욕장을 만들어서 사계절, 24시간 가동되는 해수욕장을 보유한다면 경제적으로 윤택한 마을공동체 여건이 마련 될 것이라는 기대가 그 것이다. 양질의 농업 생산물이 뒷받침 될 수 있다는 현실을 바탕으로 먹거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마을만들기 전략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라도 해수욕장 용도의 다각화는 필수적이 과제라는 것이었다.

잡초에 뒤덮여 방치된 곽지패총 지역.

현태우(43) 청년회장이 73세가 되는 30년 뒤에 곽지리의 모습은 해수욕장을 중심으로 관광타운이 형성되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과오름까지 아우르는 개발 방향이 현실화 된다면 충분히 가능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10만톤 이상 되는 폐선을 곽지해수욕장 앞 바다에 가져다가 관광객을 유치 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주장에서부터 참으로 다양한 꿈을 펼치고자 하고 있었다. 건강채소를 주로 생산하고 있는 곽지리 농업 현실에서 '흙에서 뽑힌 지 3시간 이내에 상에 오르지 못하면 폐기처분 하는 매머드 관광식당을 마을공동체 명의로 법원에 등기 할 수만 있다면 마을기업의 형태는 완결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과오름은 3형제다. 큰오름, 셋오름, 말젯오름, 이런 스토리텔링이 어디 있을까. 산을 보며 자란 사람은 심성이 깊고, 물을 보며 자란 사람은 심성이 넓다고 했다. 곽지리 사람들은 둘을 모두 가졌다. 개발 방향도 그렇게 정해져 있었다. 귀감이다.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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