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34)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34)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제주의 보석… 에메랄드 빛 바다와 오름 '환상 조화'
  • 입력 : 2015. 03.31(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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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덕 해변과 마을 전경(위)과 포구에서 바라본 서우봉(아래).

풍부한 바다자원·농경지 바탕 전국 리 규모서 인구 가장 많아
경관·투자가치 높아 경제 활발
서우봉 둘레길·제2콘도지구 등 누적된 숙원사업들도 관심 필요
주민들 스스로 경제 활성화 위해 제주 최고 체류형 관광지 다짐



먼저 비취빛 바다가 떠오르는 마을이다. 방대하게 펼쳐진 고운 모래가 바닷물과 만나 빚어내는 광선의 환희. 부지런한 파도가 눈부시게 넘실거리는 곳. CNN이 선정한 아름다운 해수욕장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해변이 주는 느낌은 대단하다. '덕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뜻을 가진 마을이다. 그래서일까 서우봉이 동쪽에 후덕하게 자리하고 있다. 넓은 농경지와 풍부한 바다자원이 토대가 되어 대대로 이웃들과 정을 나누며 살아왔다. 전국에서 리 단위로 가장 인구가 많은 곳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농촌지역 웬만한 읍면 인구보다 많은 6144명. 물론 행정적인 자료다. 실재로는 더 많은 사람이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각 구장들이 실질적인 역할을 하는 다섯 개의 구로 이뤄졌다. 지금도 계속해서 대형 숙박시설이 지어지고 있는 것은 투자 가치가 얼마나 높은 곳인 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해수욕장 개장 시기에 반짝 특수가 아니라 그 경관적 가치가 사계절 관광지로 발전하고 있다는 의미도 되고.

서우봉 산책로 입구에 있는 갈매기 조형물.

김병석(86) 전 노인회장이 설명해주는 설촌유래는 비분강개에 차 있었다. "후한서에 기록된 주호인들이 살던 시기부터 함덕은 물류와 교역의 중심지였다. 1237년 여몽연합군이 함덕으로 들어와 초토화시켰기 때문에 그 이전의 역사는 모두 불타버린 비운의 마을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함덕이라는 탐라의 중심지에 집결한 병력과 경제적 상징성을 치지 아니하고서는 삼별초의 지배력을 무너뜨릴 수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제주섬 역사에 있어서 함덕이 지닌 중요성을 역사학자들이 애써 외면하는 것이 아니냐." 지명과 관련해 바닷가에 위치한 '감녕개' 수군과 관련된 감영에서 유래하였음을 강조하였다. 전략적 요충지였다는 것이다. 탐라시대 함덕지역이 위상을 보여주는 것은 이 다섯 개의 지명으로 파악해보자고 주장했다. 성문의 이름이 지명으로 남아있는데 동문이었던 '새날문' 서문이었던 '금성문' 남문이었던 '마령문' 북문이었던 '놉양문' 그리고 '병문'. 합하여 다섯 개의 문을 가진 하나의 읍성이었다는 것이다. 지명 간의 거리를 보면 지금의 제주목 규모와 견줄 만하다. 동시대에 타 지역에 있었던 읍성과 비교연구를 한다면 쉽게 풀릴 방정식을 문헌이라는 문자의 옥에 빠진 학자들이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 한반도를 지배하던 왕조들의 시각으로 파악 할 수 없는 탐라국의 어떤 부분이 있을 것이다. 여몽연합군에 의해 참혹하게 도륙 당하던 탐라인들, 그분들의 입장을 교육받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해안도로의 흐름을 굴절시키는 'ㄷ’자형 포구.

'함씨 할망'의 미담은 대대로 주민들의 공동체의식을 관통하는 질긴 끈이다. 그 옛날, 해변 형구조가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가려면 돌아서 반나절이 걸렸다고 한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던 인근 국밥집 함씨 할망이 지혜를 냈다. "150보가 되는 여기에 돌다리를 놓아야 하니 돌덩이를 들고 와서 빠트리면 술이든 국밥이든 한 사발을 주겠다." 흉년에 그냥 밥을 나눠준 것이 아니라 배고픈 동네 사람들의 자존심까지 어루만지며 7년동안 꾸준하게 돌을 쌓게 하여 다리를 만들어서 쉽게 건너다닐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함씨 할망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함덕이라는 마을 명칭에 끼친 영향도 크다고 한다.

김성만 이장

김성만(58) 이장이 밝히는 함덕의 당면 과제는 마을 규모만큼이나 크고 굵직하다. 1구 쪽 포구문제다. 해안도로를 통하여 관광차가 지나다가 이 포구에서 'ㄷ'자 형태를 만나기 때문에 꺾을 수 없어서 골치를 앓고 있다. 행정지원이 절실하다. 이외에도 서우봉 둘레길 사업 완료, 제2콘도지구 등 누적된 숙원사업들이 수두룩하다. 마을 덩치가 커서 이장의 어깨가 무거웠다. 김재관(59) 4구장이 설명하는 함덕 발전 전략의 중심에는 서우봉 서쪽 바닷가 인근 1만평 정도의 마을 소유 부지에 숙박시설 건설이 있었다. 마을공동체가 자체개발하여 그 수익으로 주민 복지사업에 나서자는 것.

마을부녀회 김원희(54) 부회장의 주장은 진솔하다. "마을공동체에서 운영하는 기업형태의 대규모 사업장이 있어야 한다. 회원들의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맞벌이 부부가 많은 농어촌 현실에서 마을공동체의 발전적 역할이 무엇인 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임석중(41) 청년회장에게 함덕리의 당면과제를 물었다. "마을 규모와 주민 수에 비해서 복지관이 너무 협소합니다. 마을공동체 각 구성 조직이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는 대규모 종합복지관이 절실하지요."

김성추(83) 노인회장이 113세가 되는 2045년의 함덕리를 설명해달라고 했다. 대답은 의외였다. 현재의 자연 그대로 유지되어 있을 것. 힘든 도전임에는 틀림없다. 개발 욕구를 다스리는 일이니. 공감은 하면서도 이해관계와 마주하면 흐트러지기 쉬운 이 유혹들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문제와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해수욕장을 끼고 즐비한 숙박업소들.

다시 김병석 어르신의 주장으로 돌아가 생각하면 함덕의 미래가 보인다. 탐라시대 이전부터 섬 밖 세상과 교역을 하던 중심지였기에 개방적인 사람들의 땅이다. '외방 사람 들어가서 돈 버는 함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배타성이 설 자리가 없는 곳이기 때문에 마을이 번창하고 또 번창했다는 것이다. 국제화시대, 제주인이 필요로 하는 의식구조의 산실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 함덕리의 미래는 주민들이 이구동성으로 설명하는 '제주 최고의 체류형 관광지'가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 스스로가 개척하게 될 마을기업의 형태를 통하여 주민들의 일자리를 어떻게 확대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옛 영광은 미래에 있다. 쉬지 않고 달려가겠다는 주민들의 의지가 파도치는 함덕리다.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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