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병의 목요담론] 매처럼 매섭게 세상을 누비기 위해선

[김완병의 목요담론] 매처럼 매섭게 세상을 누비기 위해선
  • 입력 : 2020. 11.26(목) 00:00
  • 강민성 기자 kms6510@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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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웬만한 경승지는 인산인해이다. 몸살 날 지경이다. 오죽하면 한라산 등산을 예약 탐방제로 재가동할까. 해안절벽이 위치한 곳도 그렇다. 사실 해안절벽은 제주의 텃새인 매의 번식지이다. 매들이 떠날까 봐 걱정이지만 매는 늘 단단하게 마음을 다지고 있다.

시기적으로 겨울 철새들이 방문할 때다. 반면 매는 긴장할 때이다. 올여름, 번식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매들은 이번 겨울을 잘 버텨내야 한다. 겨울 철새들이나 사람들만큼이나 서로의 애증 관계를 잘 관리해야 한다.

올봄과 여름에 섭지코지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보통 매는 깃털 색이나 몸매를 보고 성숙도를 판별할 수 있다. 3월 매 한 쌍이 짝을 맺었는데, 암컷이 수컷보다 성숙한 개체였다. 알을 품기 시작하더니, 거의 일방적으로 암컷이 품고 수컷은 게을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닌 게 아니라 큰일이 터졌다. 알을 품은 지 20여 일 전후로 암컷이 둥지로 돌아와 알 옆에 앉아 엎드렸는데, 이후 깨어나지 않았다. 수일을 기다려도 결국 일어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후 수컷이 알을 품는 가 싶더니, 혼자 감당하기 힘들었는지 알을 깨버리고, 둥지를 떠나버렸다. 이윽고 수컷은 둥지 주변에서 기회를 노리던 다른 암컷과 짝을 짓고는 다른 위치에서 알을 품기 시작했다. 불행하게도 이번에도 번식에 실패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몇 번을 방문했지만, 7~9월에 매들이 섭지코지 주변에서 보이지 않았다. 안타까웠다.

그러다 이달 초에 섭지코지를 둘러봤다. 순간 ‘케, 케, 케’하는 소리가 들렸다. 매가 경계하는 소리였다. 선돌 바위에 매 두 마리가 나타났다. 육안으로 봐도 성숙한 한 쌍의 매였다. 번식 실패를 겪은 부부인지 다른 곳에서 이곳으로 이동해 온 쌍인지는 확실치 않다. 분명한 것은 매 부부가 내년 번식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암수가 한 지역에서 겨울을 지내는 것은 세력권을 형성하여 지키는 것이다.

제주 동쪽의 섭지코지, 성산 일출봉, 두산봉, 우도봉 등 4곳이 매에게는 핵심적인 번식 세력권이다. 새끼를 키워낸 어미와 태어난 새끼들 간에 경쟁이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매 부부는 겨울 내내 영역으로 들어오는 경쟁자를 물리쳐야 하며, 사람의 접근에도 반응을 보인다. 이때부터 매는 서로의 부지런함과 용감성을 눈여겨보면서, 부부로서의 신의를 시험하는 것이다.

꽤 오랫동안 매 부부를 지켜보니, 이번에는 무사히 새끼들을 키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장담하지 못한다. 아직은 따뜻하지만, 앞으로 닥칠 매서운 악천후, 경쟁자들과의 영역 싸움, 서로에 대한 배려와 배신 등 극복해야 것이 한둘이 아니다.

세계인의 관심 속에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코로나19 사태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두 후보 간의 싸움은 맹렬했고 매몰찼다. 더 좋은 곳을 차지하기 위한 공정한 다툼은 야생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상식이어야 한다. 경쟁은 가장 아름다운 민주주의 가치이며, 승복은 더 멋진 행복이다. 제주의 매는 텃새이지만 텃세를 부리는 데 익숙하지 않고 불복하지 않는다. 누구든 언제든 쟁쟁 상대이기에 늘 준비된 자세로 세상을 맞이한다.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자신에게 닥칠 난제를 지혜롭게 해결할 줄 알아야 번식 성공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더 멀리 여행 가고 싶겠지만, 준비된 자만이 매처럼 매섭게 세상을 누빌 수 있는 것이다.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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