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2일, 해군 제7기동전단의 주력 함정들이 부산을 출항해 제주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하 제주해군기지)으로 부대 이전을 했다. 당시 필자는 제7기동전단의 전단장이었다. 기지 내부는 막바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 흙탕물로 가득했고, 기지 외부는 반대시위자들의 펄럭이는 깃발과 함께 공사를 즉각 중단하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강정마을에 해군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현수막이 강정마을 입구에서 우리 해군 장병들을 맞이했다. 당시 참담한 심정을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후 해군지휘부와 역대 전단장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불신과 갈등의 골이 그만큼 깊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필자는 전역을 하고 다시 제주에 와서 보니, 제주해군기지 상황은 초기에 비해 다소 나아지긴 했으나 본질적인 갈등은 계속되고 있었다. 민간인 신분이 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지켜보며 안타까움만 더해 갔다. 그러나 다행히 올 봄에 갈등 해결의 단초가 만들어지는 긍정적인 상황이 전개됐다. 제주 출신이 해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됐으며, 문 대통령이 신임 총장에게 "제주해군기지 도민과 잘 소통해 달라"고 당부 하신 것이다. 우리의 기대와 바람은 생각보다 빨리 이뤄졌다.
지난 8월 31일,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이 제주해군기지의 유치와 건설 추진과정에서 강정주민들에게 불편과 갈등을 초래한 것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2007년 제주해군기지의 강정마을 유치가 결정된 지 약 13년 만의 일이다. 강희봉 강정마을회장은 "해군참모총장의 사과로 그동안 우리 가슴에 쌓아두었던 응어리가 완전히 풀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과거에만 머물러 있으면 후손들에게도 우리와 같은 아픔을 물려주는 우를 범할 수 있기에, 용서는 하되 잊지 않으면서 미래로 나아갔으면 한다."고 화답했다. 너무나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한 번의 사과와 수용으로 그동안 지속돼 온 갈등의 골이 치유될까?
갈등의 치유는 지금 부터가 시작이다. 강정 주민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정부와 해군의 역할이 크다.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하면서 정부와 해군이 강정마을에 약속했던 지역발전사업들과 이번 상생발전협약서 체결 시 논의된 주요 관심 사항들을 적극 추진하고 모든 사업들이 잘 마무리될 때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제주도청과 도의회 역시 모든 사업들이 원만히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또 해군과 마을 주민은 물론 찬성했던 사람과 반대했던 사람들이 서로 만나 진정으로 소통하면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희망찬 미래로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적극 시행해야 한다.
강정마을회장은 "그동안 못했지만, 앞으로는 강정주민들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해군 장병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국민의 존중을 받지 못하는 군은 존재 이유가 없을뿐더러 전투에 나가서도 승리할 수 없다. 해군이 강정마을 주민들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는 첩경은 꾸준히 진정성을 보이는 것이다. 10년 넘는 갈등을 치유하는데 또 다른 10년이, 어쩌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본연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면서 주민 곁으로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해나가길 당부한다. 해군참모총장과 강정마을회장의 대승적 결의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서로 어깨동무하고 환하게 웃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남동우 제주대학교 교수·예비역 해군 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