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자기 부모를 위하려면 하면 남의 부모를 위해야 한다'라는 제주 속담이다. 매년 맞이하는 가정의 달이지만 늘 숙연해진다. 마른자리, 진자리 가리지 않고 오직 자식의 안녕을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하듯, 이웃의 부모도 내 부모처럼 모셔야 한다. 세상살이의 모든 지혜는 부모로부터 얻는다.
새들도 어미로부터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다. 붉은 꽃을 좋아하는 동박새와 빨간 손수건을 뽐내는 팔색조 부부는 함께 나뭇가지를 모아 둥지를 만들며, 밤새도록 곁을 지킨다. 비가 오면 우산을 받쳐주고, 바람이 불면 푹신한 이불이 돼주고, 천적이 나타나면 부리가 창으로 변신한다. 둥지 속의 새끼들은 어미의 솔선수범과 살신성인의 감행을 보고서야 하늘로 날아오른다.
까마귀의 삶도 다르지 않다. 어미만큼이나 다 자란 새끼들이 어미 곁을 떠나지 않고 한 방에서 옥신각신하며 눈치를 본다. 배고픔은 참지 못하는지라 어미가 귀가한 기미를 제일 먼저 알아채려고 한다. 어미는 묘안을 발휘한다. 물고 온 먹잇감을 둥지 곁 나뭇가지에서 약 올린다. 먼저 둥지에서 탈출한 새끼들이 유리하다. 재빠르게 퍼덕인 녀석이 어미의 입안에 있는 고깃덩어리를 '어멍아' 하며 냉큼 꺼낸다. 순간 새끼가 어미에게 먹을거리를 넣어주나 착각하게 된다. 그렇게 형제들은 모두가 세상 밖으로 나와, 어미의 속마음을 헤아린다.
까마귀는 인간의 길흉을 예측할 정도로, 제주사람들에겐 애환이 가득하다. 제주 신화에도 여러 곳에서 깃털 달린 까마귀가 등장한다. 자청비의 부모도 까마귀 식구들의 아옹다옹한 모습을 부러워했고, 훗날 자청비는 까마귀의 도움으로 문도령과 백년해로를 누린다. 차사본풀이에선 강림차사로부터 전달받은 적패지를 까마귀가 잃어버리는 바람에, 까마귀가 울 때마다 모두가 제 차례인 양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적도 있다. 77년 만에 4·3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는 소식에 까마귀는 어떤 심정일까. 부모형제를 찾아 제사를 올릴 때마다 함께 울어준 까마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을까. 사실 까마귀는 까맣게 잊지 않고 대신 외쳐주었을 뿐이다. 어쩌면 부모의 억울한 사정을 자식들에게 전달하려고 한없이 소리쳤던 것이었다.
제주 사람들은 가슴에 지지 않는 붉은 동백꽃을 달고 다닌다. 이젠 서울 사람도, 코 큰 사람도, 빨간 배지를 곱게 본다. 수년간 부모, 형제자매 그리고 삼촌들이 소리없이 쓰러져갔다. 분명 끌려가는 모습은 선한데, 다시 돌아오지 못한 분들도 허다했다.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효도하고 싶어도 곁에 계시지 않으니, 눈물로 가득한 땅바닥에서 긴 세월을 보내야 했다. 억울하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으랴마는, 모두가 동백꽃보다 더 아름다운 청춘을 보냈어야 했다. 부디 차별 없고 편 가르지 않는 세상에서 까마귀만큼이나 지극정성을 다하는 자식들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시간이 흘러도 시대가 바뀌어도 사회정의는 바로 서야 한다. 부모 섬김도 그렇다. <김완병 제주학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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