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 밥값

[허상문의 에세이로 읽는 세상] 밥값
  • 입력 : 2019. 05.22(수) 00:00
  • 김경섭 기자 kks@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어머니는 생전에 입버릇처럼 사람은 밥값을 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당시에는 어머니가 하신 말뜻을 알 수 없었지만,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면서 비로소 그 깊은 뜻을 조금씩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동물의 세계를 유심히 관찰해보면 오직 먹고살기 위해서 싸움하고 영역 다툼을 하는 것 같다. 인간 세계도 그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물론 인간에게 먹고 산다는 문제는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유독 우리 사회에서 먹는 문제는 지나칠 정도로 강조되고 있다. 방송은 온통 '먹방'이고, 거리에서도 한 집 건너 식당이다.

사람들은 무엇을 얼마나 먹을 것인가에만 온통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무엇을 얼마나 많이 먹느냐 하는 것은 어떤 방식의 삶을 사느냐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보릿고개를 넘던 궁핍한 시절에는 한 끼를 해결하기 힘들었지만, 오늘날에는 굶어지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기름지고 값진 음식을 많이 먹는다고 해도 인간답지 못한, '밥값 못하는 사람'이 되어 살아간다면 그의 인생이 올바른 것일까.

진정으로 올바른 삶은 오직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왜 사는가 혹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가운데 생긴다. 식욕은 인간 욕망의 하나일 뿐이다. 식욕도 부와 권력과 명예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다르지 않다. 먹으면 먹을수록 무언가 새로운 것을 당겨오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불필요한 욕망의 사슬을 끊어내어야 건강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언론매체에서는 하루가 머다 하고 온갖 비행과 비리에 연관되어 잡혀가는 사람들 모습이 등장한다. 그들은 그야말로 밥값을 제대로 못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인도의 성인(聖人)으로 불리는 간디는 소식주의자로 유명하다. 그는 왜 그렇게 적게 먹었을까. 적게 먹는 사람이 적게 욕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게 먹는 사람은 탐욕의 싹을 미련 없이 잘라낸다. 건강한 삶이란 불필요한 욕망이 아니라 올바른 삶의 의지와 방식에 달린 문제이다.

우리의 인생 배낭은 누가 대신 짊어지고 갈 수 없는 자신이 끝끝내 짊어지고 가야 할 가장 소중한 짐 보따리이다. 이 배낭에 사람들은 온갖 물건을 가득 채우고 살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배낭을 얼마나 가득 채우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으로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가벼운 배낭일지라도 올바르고 정의로운 물건으로 채워진 배낭을 지고 살아가는 것이 가치 있는 인생행로라 할 수 있다.

나의 존재는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나의 존재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인생에서 올바른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다. 올바르게 산다는 것은 그야말로 밥값을 하면서 인간답게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어제와 다른 존재의 의미를 찾고, 오늘과 다른 내일의 시간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인생 최고의 날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다. 모두 밥값을 하면서 인간답게 제대로 살아야 한다.

<문학평론가·영남대교수>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422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