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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아픔을 넘어 미래로
[제주4·3 70주년 아픔을 넘어 미래로-13 / 제2부 완전 해결을 위한 과제] (5)불거진 미국 책임론
미군정, 사건 발발과 진압과정에 직·간접 개입
이윤형 기자 yhlee@ihalla.com
입력 : 2018. 07.31. 2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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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 미군 정찰기가 촬영한 제주시가지. 점선 안에 항공촬영한 정찰기 그림자가 보인다. 이 사진들은 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소장돼 있다.

정부 보고서에도 미 책임 언급
자료 발굴 통해 규명 지속해야
미국·유엔 책임있는 조치 촉구
범국민 10만인 서명운동 나서

일제강점기 이후 해방공간에서 벌어진 4·3은 본질적으로 미소로 대변되는 냉전질서의 시작과 한반도의 분단체제와 맞물려 있다. 게다가 4·3 당시는 미군정기에 해당한다. 미국은 4·3의 발발과 전개과정에 깊은 연관이 있다. 이는 4·3이 암울한 과거에서 벗어나 완전한 진상규명과 이를 통한 진정한 화해와 상생, 치유의 길로 나가기 위해서 반드시 짚고 가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그동안 4·3은 진상규명 과정에서 일부 의미있는 진전을 이뤄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3의 완전한 청산은 갈 길이 멀다. 특별법 개정뿐만 아니라 미군정의 책임부분 규명이라는 쉽지않은 장애물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제주비행장에 도착한 미군정 수뇌부.왼쪽 두번째가 군정장관 딘 소장이다.

4·3의 발발과 전개과정에 미군정이 개입됐음은 도처에서 드러난다. 미군정은 4·3이 발생하자 제주도령을 공포해 타 지역과의 해상교통을 완전 차단하고, 미군함정을 동원해 해안을 봉쇄했다. 또한 우익청년단에 의한 오라리 방화사건을 빌미로 딘 군정장관 등 미군 수뇌부는 무장대를 총공격해 제주사건을 단시일내에 해결하라고 경비대총사령부에 명령했다. 이로 인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유혈충돌로 치닫게 된다.

제주도에 파견된 미 고문관이 경비대 장교와 함께 작전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미군정은 제주도에서 5·10선거가 무산되자 미 6사단 예하 광주 주둔 제20연대장인 브라운 대령을 제주지구 미군사령관으로 파견해 현지의 모든 진압작전을 지휘, 통솔하도록 했다. 브라운 대령은 "사건 원인에는 흥미가 없다. 나의 사명은 진압뿐이다"라며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초토화작전으로 가장 많은 인명피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주민 집단희생기(1948.10~1949.3월)에도 미군정은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 1948년 8월15일 미군정이 끝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됐지만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은 여전히 미군에게 있었다.

이는 1948년 8월24일 이승만 대통령과 주한미군사령관인 하지 장군 사이에 체결된 '한미군사안정잠정협정'에 따른 것이다.

제주농업학교에 들어선 미59군정중대 본부 건물 사이로 성조기가 휘날리고 있다.

정부 진상조사보고서에서는 미군정의 책임과 관련 "4·3사건의 발발과 진압과정에서 미군정과 주한미군사고문단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 사건이 미군정 하에서 시작됐으며, 미군 대령이 제주지구 사령관으로 직접 진압작전을 지휘했다. 미군은 대한민국 수립 이후에도 한미간의 군사협정에 의해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계속 보유하였고, 제주 진압작전에 무기와 정찰기 등을 지원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책임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다"고 언급하고만 있을 뿐이다. 미국의 사과 등 그에 따른 후속조치 등은 외면하고 있어 진상보고서의 한계가 아닐 수 없다. 4·3사건의 전체적인 모습도 드러나지 않았다.

70주년을 맞이한 제주4·3의 완전한 해결과 치유를 위해서는 당시 미군정의 역할과 책임 부분을 규명하는 일이 불가피하다. 이를 위해서는 4·3에 대한 미국의 직접 책임을 규명할 수 있는 자료 들을 발굴하는 작업 또한 지속돼야 한다.

그동안 4·3에 대한 미국정부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제기돼왔으나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그렇지만 70주년을 계기로 제주4·3유족회 등 관련 단체들이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4·3유족회와 4·370주년기념사업회 등은 지난해 10월부터 미국의 책임을 묻고, 미국과 유엔의 책임있는 조치를 촉구하는 범국민 10만인 서명운동에 나서고 있다. 4·3유족회에 따르면 서명운동에는 지금까지 7만8000명이 동참한 것으로 집계됐다. 머지않아 1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4·3단체뿐만 아니라 도내외 시민사회단체가 참여 미국의 책임부분을 수면 위로 드러내 공론화 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르다.

이에 대해 양윤경 4·3유족회장은 "서명이 10만 명을 넘기면 한국정부와 미국정부, 유엔에 서명부를 제출, 책임있는 조치를 촉구해 나갈 계획"이라며 미국책임을 묻기 위한 국제연대에도 나서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미국의회를 방문할 당시 NGO만으로는 역할에 한계가 있는 만큼 한국정부와 제주도, 도의회, 평화재단 등이 공식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얘기했으나 (정부 등은) 여러모로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다"며 "미국 문제를 빼버리고 4·3의 완전한 해결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자문위원=문성윤 변호사·박명림 연세대교수·박찬식 제주학센터장·양윤경 4·3유족회장

특별취재팀=이윤형 선임기자·표성준 차장·송은범기자

미국학자들이 바라본 4·3 미국 책임론
브루스 커밍스 "미국 책임 막중… 희생자들에 사과"
존 메릴 "미군고문들 대학살 막기 위해 노력했어야"


제주4·3사건과 관련한 미국의 책임 부분에 대해 4·3을 연구해온 대표적인 미국 학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6·25 한국전쟁의 발발배경과 4·3등을 다룬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으로 잘 알려진 세계적 석학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그동안 4·3과 관련 미국의 책임이 있다며 수차례 언급했다.

그는 지난 해 6월 제2회 4·3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돼 제주를 방문 "4·3 당시 미국이 한국군의 작전 통제권을 갖고 있었던 만큼 미국의 책임이 막중하다"고 말했다. 4·3으로 인해 수많은 도민이 희생당하는 과정에서 미국 측의 책임도 크다는 것이다. 또한 "아름다운 섬에서 전후 세계 최초로 자결권과 사회정의를 위해 싸운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 미국의 힘을 보여준 사례가 바로 4·3사건"이라며 "이에 대해 미 정부가 언젠가 책임을 질 것이라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미국인으로서 이 비극으로 인해 희생된 제주도민들께 진심어린 사과를 드린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그는 2016년 10월 열린 제6회 제주포럼에서는 "4·3당시 주민 수만 명이 학살당한 배경에는 미군정의 정책 실책이 자리잡고 있다"고 했다.

존 메릴(전 미국무부 동북아실장)은 1980년 하버드대에서 '제주도 반란'(Cheju-do Rebellion)이란 석사학위 논문을 발표하면서 미국에서 4·3연구의 효시가 된 학자다. 그는 제6회 제주4·3평화포럼에 참석차 제주를 방문 '제주4·3사건'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미국의 책임 문제에 대해 "1948년 5월10일 남한에서의 단독선거를 지지하고 지원하기로 미국이 결정한 것이 4·3사건의 가장 근접한 원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군정 아래의 남한에서 우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제주 4·3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미국의 고문들은 도처에 존재했는데, 이들은 이 대학살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했습니다."라고 미국의 연관부분을 거론했다.

정부 보고서에도 언급됐듯이 4·3 당시 미군은 고문자격으로 진압작전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주민집단학살이 벌어진데 대해 미국은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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