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밥먹엉 살아졈수광?](9)박연술 한국무용가·나무꽃대표

[예술로 밥먹엉 살아졈수광?](9)박연술 한국무용가·나무꽃대표
제주 공연자들 언제까지 '나머지' 역할 해야 하나
  • 입력 : 2017. 08.24(목) 00:00
  • 박연술 hl@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문화예술의 섬 제주에 묻다]

육지 공연자에 주요 무대 쏠려 예고·대학무용과 설치 언제쯤
연습실 등 공간 지원 확대해야 재능기부 강요 풍토 변했으면


○…춤꾼이 늘 암전된 공연장에 환한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무대에만 오르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거리로 나가 춤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이들과 대화를 나눈다.

박연술씨는 이 땅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무대에 빠지지 않는 춤꾼이다. 남영호 유족인 그는 40여년전 검푸른 바다에서 희생당한 이들의 넋을 달래왔고 세월호, 6월 민주항쟁, 김대중 전 대통령 제주 추도식 등을 찾아 위무의 춤판을 벌여왔다.

그처럼 열린 공간에서 무용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는 춤꾼들이 있지만 제주 무용계는 허약한 토대 위에 서있다. 한 해 제주에서 열리는 제대로 된 무용 공연은 손에 꼽힌다. 제주도립무용단이 일찍이 생겨났지만 제주지역 무용 분야는 오래도록 '불모지'란 소리를 들어왔다. 대학에 무용과가 설치되지 않아 지역에서 배출되는 젊은 무용인구가 없는 탓이 크다.

기획서를 쓰고 지원금을 받는 일에서 창작공연을 올리기 위해 연습실을 마련하는 일까지 무용인들에겐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오늘도 제주의 무용 꿈나무들이 자라고 있지만 이런 현실이라면 그 아이들에게 춤의 길로 어서 들어오라고 손을 잡아주기 어렵다. …○ 진선희기자



제주는 축제의 섬이자 문화의 섬이다. 겉으로 보면 그렇다. 그러나 제주 공연자들은 빈곤하다. 서울의 유명 기획자들을 모셔와 공연을 올리면 출연자들은 유명 무용단이나 가수, 배우로 채워지고 일부 구색을 맞추는 식으로 제주 예술가들이 나머지를 담당한다. 예산 역시 육지 공연자들에 배정한 뒤 남은 부분이 제주에 사는 공연자들의 몫이 된다.

어려움은 이만이 아니다. 먼저 지원금 제도를 보자. 올해 새롭게 도입된 국고보조금 통합관리시스템(e나라도움)때문에 지원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 공인인증서 발급, 신용카드와 통장 개설 등 까다로운 가입·이용 절차를 따르느라 며칠을 헤맨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작품을 위해 의상과 소품 등을 구입할 때마다 전자세금계산서를 떼서 증빙해야 하는 절차는 지원금을 포기하라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지원금을 받기 위한 기획서는 어떠한가. 노련한 기획자나 경험이 많은 큰 단체만 지원을 받고 기획이 서툰 예술가들이나 처음 도전하는 예술가들은 제외가 된다. 아니면 창작을 해야 할 시간에 증명할 서류를 준비하느라 시간을 뺏긴다.

극장은 어떤가. 지원금을 받지 못하면 전문 조명 시설과 전문 음향 감독을 쓰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소위 갖추어진 극장에 소속된 공무원들의 수고를 빌려야 한다. 하지만 기본조명만으로 공연을 하는 무대였고 리허설까지 마쳤는데 공연 도중 담당 공무원의 실수로 마이크가 꺼지는 일을 당한 적이 있다.

학교 예술강사로 활동하며 느끼는 아쉬움도 있다. 소질이 있거나 무용 전공을 지원하는 학생을 만나면 그 학생의 꿈을 키워주고 싶지만 제주엔 예술고등학교나 무용과가 있는 대학이 없다. 제주에서 무용을 배우는 초·중·고학생들은 예술고등학교나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가야 한다.

나도 어릴 때 유학을 해서 서울예고를 갔다. 타지 생활은 그만큼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제주지역의 예술고에서 수업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그만큼 무용 지원자가 많겠느냐는 점도 고려해야 겠지만 10년전부터 예술고 설립 필요성이 논의됐는데도 진전이 없다. 앞으로 다시 10년을 기다려야 하나. 답답할 뿐이다.

다른 분야와 달리 공간지원 사업 수혜 기회가 적은 점도 개선돼야 한다. 무용은 다른 어느 장르보다 연습 공간이 필요하다. 연습실이 있어야 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 개인 공간을 가지지 않는 한 비용을 들여 연습실을 빌려야 한다. 참고로 서울엔 서울무용센터가 있다. 이곳엔 예술가 입주 공간이 있고 시민을 위한 창작 공간도 마련됐다.

재능기부를 '강요'하는 풍토도 안타깝다. 지역 행사에 5~10분 출연하더라도 사전 연습은 물론 의상, 분장 등 똑같은 노력이 들어간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매번 대가 없이 예술가들의 재능기부를 바라는 건 무리다.

끝으로, 한해 제주도 전체예산의 3%인 1500억원이 문화예술 분야에 쓰인다고 들었다. 그 예산 중 얼마나 많은 금액이 배고픈 예술가들에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박연술 / 한국무용가·나무꽃대표>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597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